훌륭한 비즈니스야 말로 최고의 예술 -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정태봉
 
흔히 ‘디자이너’라고 하면 왠지 비즈니스적인 요소를 배제한 채 감성적이고 독특하며 개성 강한 옷차림을 즐기는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사실 디자이너란 누군가가 그의 디자인을 알아봐 주고 그에게 값을 치름으로써 생계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볼 때 비즈니스맨이며, 사업가적 안목을 지니고 있어야 생존할 수 있는 직업이다. 팝아트의 거장 故 앤디 워홀은 ‘훌륭한 사업이야말로 가장 뛰어난 예술이다.’라는 말을 남긴 적이 있다. 수익을 창출한다는 비즈니스 마인드와 예술적인 감수성, 일견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면면이 고루 갖춰진 CREF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정태봉은 앤디 워홀이 남긴 이 말에 가장 어울리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기자가 만난 정태봉은 탄탄한 실력과 디자인을 대하는 순수한 태도, 그리고 사업을 대하는 냉철함을 모두 지녔으며, ‘재미있는 디자인’을 통해 ‘재미있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다커 사옥)
 
(로커스 사옥)
 
Q. CREF와 그 디자인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한다.

A. 디자인 / 인테리어 설계회사 CREF는 2000년대 초반에 내가 중고 가구점에서 2만 5천 원 주고 구매한 책상 두 개, 개인용 컴퓨터 한 대로 시작한 회사다. 학교에 다닐 때부터 항상 내 사업을 빨리 시작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고, 남들보다 두 배 더 빨리 회사를 키우려고 잠도 덜자고 닥치는 대로 일을 했었다. 물론, 덕분에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고 비싼 수업료를 치르며 14년간 사세가 많이 커졌다. 우리의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사명을 CREF로 만들게 된 계기를 우선 밝히고 싶다. CREF라는 이름은 디자인이라면 당연히 창의적이고 신선해야 하기 때문에 영단어 Creative에서 앞 세 글자를 따왔고, 그 뒤에 내가 디자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재미(Fun)’의 F를 붙였다. 창업을 준비하던 당시, 사명에 대해 고민하던 중에 평소 좋아하던 디자이너 필립 스탁(Philippe Patrick Starck - 1949.1.18 ~ : 프랑스의 산업디자이너)의 인터뷰 기사를 접하게 됐다. 그의 작업이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디자인 안에 내포된 유머러스함, 위트와 센스 등이 있을 텐데, 나 역시 디자인을, 나아가 인생을 즐겁게 바라보려는 성향이 있어서 그가 추구하던 디자인과 나의 디자인관이 어느 정도 일치하는 점이 있었다. 그래서 즐거운 공간, 위트 있는 디자인을 펼치고자 사명이 CREF가 되었고, 아직까지도 우리의 디자인은 즐거움과 유쾌함을 공간에 풀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Q. CREF는 오피스 인테리어 전문기업으로도 알려져 있다. 오피스 인테리어가 상공간, 주거공간 인테리어와 다른 점은?
 
A. 나도 회사 초창기 때는 병원, 카페 등의 상업공간과 주거공간 프로젝트 등 가리지 않고 모두 해봤지만, 어느 시점부터 오피스 인테리어에 좀 더 집중하게 됐다. 사무공간 프로젝트와 다른 프로젝트들 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주체에 있는 것 같다. 가령, 주거공간의 경우 명확한 주체가 있다. 집의 주인과 가족 구성원. 그들이 어떤 공간에서 살고자 하며, 그들을 위해 어떤 편의적 기능을 제공할지가 기본이 된다. 그리고 상업공간에는 주인이 있으며, 매장을 방문하는 불특정 다수가 불규칙적으로 공간의 주체가 된다. 상업공간 디자인은 매장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클라이언트의 목적과, 그들이 타겟으로 하는 방문객들의 특성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을 하게 된다. 그런데 사무실은 굉장히 다르다. 회사에는 회사의 대표가 있고, 대표가 바라는 회사의 사무실 분위기가 있다. 그러나 대표보다도 더욱 밀도 있게 공간에 녹아들고, 오랜 시간을 머무르며 실제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이들이 바로 근무자들이다. 대표나 임원진들의 의도와 근무자들 하나하나의 편의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주거공간이나 상업공간과는 다르다. 그 외에도 단순히 사용자만 놓고 볼 것이 아니라, 사무공간 역시 어떤 경우에는 상업공간처럼 대외적으로 보여지는 이미지와 회사의 정체성을 명시해주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사무공간 디자인 작업은 타 공간 작업과 시작점부터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캐시슬라이드 사옥)
 
(캐시슬라이드 사옥)
 
Q. 프로젝트와 클라이언트를 대하는 태도는?
 
A. 분야는 다르지만, 나는 故 스티브 잡스를 존경했다. 그가 입버릇처럼 뱉던 말 중에 ‘어떻게 다를 것인가’에 대한 부분도 많이 고찰했다. 우리의 클라이언트는 IT, 소프트웨어, 게임개발사에서부터 화장품, 엔터테인먼트까지 다양하다. 보통 오피스 디자인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전에 우리 외에도 최소 다섯 개 이상의 디자인 스튜디오와 경쟁하게 된다. 그리고 솔직히 우리는 타 회사보다 저렴한 비용의 디자인 회사는 아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라이언트들이 약 90~95% 확률로 우리가 작업한 공간에서 일하고 싶어 하시는 까닭은, 우리의 기획이 설득력 있고 그만한 가치를 인정한다고 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클라이언트가 어떤 회사인지, 어떤 성향이고 업무 패턴은 어떻고 어떤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변화하기를 원하는지, 그리고 이것만큼은 정말 아니다 싶은 것들은 무엇이 있을지 짚어낸다. 이런 연구를 기반으로 우리가 제시하는 것은 단순한 사무실 디자인이 아닌, 공간 디자인을 통해 기업 문화를 개선하고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디자인한 공간이 클라이언트의 회사와 매치됐을 때 어떤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을지 비전을 제시한다. 이런 부분이 클라이언트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가는 것 같다.
 
Q. CREF 외에도 CREF SHOP, ROPE, MAYISLAND 등 여러 사업을 진행중인 것으로 안다.
 
A. 디자인, 인테리어 설계회사 CREF를 운영하면서 여러 방향성을 갖고 싶었다. 그동안 선배들의 디자인 작업을 많이 봐왔고, 디자인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것도 많이 보아왔고, 나는 디자인을 베이스로 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디자인과 연계된 비즈니스에도 늘 관심이 많았다. 설계, 디자인에서 그치는 회사보다 브랜드를, 공간을 만들어놓고 실제 운영까지 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많이 갈구해 왔기 때문에 여러 가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공간 디자인에서부터 컨설팅, CI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부분을 분할해서 경쟁력 있게 활용하고자 했다. 이렇게 ‘디자인 + 비즈니스’가 결합된 플랫폼을 만들어야겠다는 갈망 끝에 ROPE, MAYISLAND 등을 운영 중이다.
 
(한미약품 사옥)
 
(헤일로에이트 사옥)
 
Q. 정태봉 디렉터는 다른 디자이너들과 어떻게 다른가?
 
A. 회사가 성장하면서 드로잉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물론 직원이 많지 않던 초반에는 PT 준비부터 마무리 작업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다 해봤지만, 지금은 그렇게 일하지 않는다. 이제는 직원이 늘면서 단순 디자이너가 아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디자이너 직원분들의 작업에서 보완점을 짚어낸다던가, 그들이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여러 가지 방향에서 접근하려 한다. 나도 아직 빈 도면을 보면 드로잉을 하고 싶은 욕망에 설레고 벅차긴 하지만, 많이 억누르고 있다. 주변에는 나와는 다른 성향의 대표님들도 많다. 어떤 분들은 디자인에 대한 것을 대표가 되고 나서도 놓지 못하고 아직도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든 사항을 직접 다 한다. 이것은 우리가 더 잘하고 있고 그들이 고리타분하다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그저 다른 분들과 우리와의 차이점일 뿐, 어느 방식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다만, 우리는 좀 더 디자이너들의 색깔이 묻어나는 다양한 디자인을 할 수 있다. 우리의 작업은 그래서 다 다르며,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모습이 좋다. 젊은 직원들의 작업에서 추가해야 될 사항을 더하기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지워나간다. 그게 CREF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내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Q. 젊은 디자이너들은 CREF에서 일하게 되면 배울 부분이 많은 것 같다. 후배 세대 디자이너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A. 전에는 디자인을 잘하는 디자이너가 흔치 않았다. 그래서 디자인을 잘하는 디자이너는 그것만으로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 젊은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보면 다들 너무나 잘한다. 디자이너들의 실력은 상향 평준화 됐다. 한편으로는 대견스럽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다들 잘한다는 것은 디자인 실력 하나만 가지고는 경쟁력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30살 때부터 CREF를 시작해서 회사의 대표로서 많은 일들을 겪다 보니, 후배들이나 제자들이 겪지 않아도 될 시행착오를 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다. 몇 해 전, 자기 사업을 시작하고 싶다며 어드바이스를 요청한 후배가 있었다. 그런데 사업자등록증 상 소재지를 자기 집, 어느 아파트 몇 동 몇 호로 해 놓은 걸 보고, ‘한 달에 100만 원짜리 월세로라도 사무실을 얻어라’고 조언한 적이 있었다. 그때 후배가 ‘금전적으로 부담스럽다’며 어렵다고 하길래, ‘클라이언트가 너에게 일을 맡기고자 하더라도 사무실 주소가 웬 아파트로 돼 있으면 너를 믿고 일을 맡기겠냐’며, ‘그 정도 투자도 안 할 생각이면 스스로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생각은 버리고 회사로 돌아가라’는 모진 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뒤 곧바로는 아니었지만, 몇 년 후 사무실을 얻고 나서 꽤나 큰 프로젝트를 따게 된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그래서 ‘네가 있는 곳이 네가 하게 될 일의 규모라고 생각하라’고, ‘만약 더 큰 사무실로 이사를 하게 돼도 그에 걸맞은 의뢰가 없다면 내가 직접 발주하마’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사실 디자이너가 전문성을 갖추고 있으며, 그로 인해 신뢰를 줄 수 있는가 하는 부분도 클라이언트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다. 외적으로 보여지는 것도 일종의 프로정신, 믿음을 줄수 있다는 것도 디자이너로서 책임감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인 실력 외에도 간과될 수 있는 이런 부분들은 젊은 디자이너들이 미리 깨닫고, 안 해도 될 고생을 피했으면 좋겠다.
 
(에르메스 사옥)
 
(파런테즈 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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