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범건축사사무소 이성범 소장 ⓒ김고운
화담재 ⓒ고영성

 

건축가는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구현하는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 특정 공간을 점유할 수 있게 그 배경을 제공하는 사람이다. 한편으로는,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제안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뒤로 한 발물러나 있어야 한다. 건축가는 그들의 배경을 만들어줄 뿐 결국 그 공간을 채우고 최종적으로 완성에 이르게 하는 것은 공간을 영유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건축가는 땅과 사람 간의 관계를 맺어주는 일종의 조력자다.

 
화담재 ⓒ고영성
화담재 ⓒ고영성
화담재 ⓒ고영성

Q. 이성범건축사사무소와 화담재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나는 공공성을 기반으로 다양한 스토리를 담아낼 수 있는 건축 방식을 찾으려 한다. 많은 사람들이 건축을 어떻게 경험하고 영유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대중이 건축에 편하게 다가설 수 있는 구체적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최근 완공된 화성 주택 '화담재'는 꽃과 나무를 담는 집이라는 의미로 작게 분할된 단독주택 필지에 지어진 건물이다. 외부에서 보이는 거대한 볼륨을 만곡된 입면을 통해 최소화하면서 안으로 마당과 중정을 만들어 대지 배면의 숲을 건물 안으로 끌어들여 외부와 대비되는 안락함과 소박함을 보여주는 집이다. '화담재'는 건축을 전공하고 과거 시공에 몸담았던 이력이 있는 클라이언트의 개인 주택으로 프로젝트 진행 자체가 독특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클라이언트는 건축 설계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어 설계자의 의도를 존중하고 최대한 계획을 구현할 수 있게 많은 노력을 해주었다.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오롯이 클라이언트의 관심과 믿음으로 진행되었던 프로젝트다.

 

Q. 화담재는 건축의 내외부, 입면의 재료의 대비가 특징적인데 디자인 의도가 궁금하다.
클라이언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프라이버시였다. 이런 경우 담으로 건물 내외부를 완벽히 차단하여 닫혀 있는 형태로 설계할 수 있지만 우리는 외피의 유선형 곡면을 통해 가로변에서의 시선과 소음을 차단함과 동시에 시각적 재미를 주면서 뒤쪽 산의 풍경을 보일 듯 말듯 노출하는 흥미로운 형태의 볼드한 입면 디자인을 계획했다. 두 번째로 클라이언트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뒤쪽의 산이었다. 그 주변의 건축물들은 이런 훌륭한 자연 경관을 활용하지 못하고 단지 산을 볼 수 있는 작은 창을 두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러나 나는 높은 담이나 작은 창이 아닌 피벗 힌지 도어를 활용해 개방적 구조를 두고, 필요시 여닫을 수 있게 설계해 산이 마당으로 그대로 관입될 수 있도록 자연스럽고 안락한 공간으로 디자인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작업에서 기단을 자주 사용한다. 건축물의 형태를 디자인할때 전체적인 비례를 잡아주는 단단한 기단의 느낌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 건축물에서도 깬 벽돌로 쌓은 기단이 땅을 견고하게 받쳐주고, 그 위에 완만하게 하늘로 솟구치는 지붕의 형태로 극적인 대비를 주었다. 이를 통해 건축물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에게도 재미를 줄 수 있는 요소를 만들고자 했고 클라이언트의 요구와 건축가로서 선호하는 건축적 표현이 만나 공간적으로나, 재료적으로 대비가 강한 양면성을 지닌 주택이 탄생했다.

 

화담재 ⓒ고영성
화담재 ⓒ고영성
화담재 ⓒ고영성
화담재 ⓒ고영성

 

Q. 화담재는 대지의 형태가 부채꼴 모양에 북향의 집으로 집의 독특한 배치와 향, 디자인에 대해 설명을 듣고 싶다.
남쪽에 마당, 북쪽에 집을 배치하는 많은 주택단지에서 낮 시간에 블라인드를 치고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마당을 활용하려는 의도로 설계되지만, 실제로 가족이 모이는 저녁 시간에는 마당을 활용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다. 이 집의 디자인은 이러한 문제점에서 시작되었다. 결국 클라이언트와 나는 남향이나 북향이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에 의견이 일치했고 대지 안에 건축물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쾌적한 공간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집은 남쪽의 창을 배제했지만, 마당을 감싸 안는 동그란 형태와 중정을 통해 충분한 빛이 내부 공간으로 유입될 수 있게 설계했다. 주 출입구에 있는 작은 중정은 부족한 빛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고, 클라이언트는 마침 직사광선보다는 은은한 빛을 원했다.

 

1층은 가족들이 함께하는 공간이다. 입구 반대편 날개 쪽에는 부부 침실을 두고 거실과 침실의 중간에 약간의 틈을 주어 거실에서 침실이 문 하나로 그대로 노출되는 것을 막고 여유있는 공간의 전이가 가능하게 했다. 클라이언트는 처음에 이 틈을 없애길 원했지만, 시공 후에는 만족해했다. 게다가 거실 공간의 한쪽이 오픈되어 코너가 열려 있는 구간 덕분에 공간이 더 확장되고 넓어 보이는 효과를 볼 수 있었다. 2층은 자녀들의 공간으로, 포켓 중정을 면한 작은 서재를 두어 가족들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거실에는 볼륨이 큰 가구를 놓는 것보다, 개방감과 아늑함을 주기 위해 단차를 두고 그 단을 이용해 벤치처럼 공간을 구성했다. 국내 주택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이런 선큰 리빙 스페이스는 넓은 공간보다는 좁은 공간에서 활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 주택이나 스테이에 많이 적용하는 디자인 포인트다.

 

화담재 ⓒ고영성
화담재 ⓒ고영성
화담재 ⓒ고영성

 

화담재 ⓒ고영성

 

화담재 ⓒ고영성

 

Q. 집과 스테이 프로젝트를 다수 진행했고, 스테이 역시 단기간이지만 집의 기능을 하는 공간인데 이성범 소장만의 집과 스테이 설계에 있어 차별점은 무엇인가?
기본적인 접근은 다르지 않지만, 기능성과 점유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똑같다고 볼 수는 없다. 나에게 오는 클라이언트들은 일상에서 벗어나는 공간에 대한 갈증이 있는 분들이다. 아파트나 일반적인 주택에 사셨던 분들이 여행 같은 집, 스테이 같은 집, 독특한 공간감이나 경험을 원해 나를 찾는다. 그런 분들은 처음부터 집 같지 않은 집을 지어달라고 요구하고 스테이와 같이 흥미를 유발하는 독특한 요소들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집이라는 건 오랜 시간 동안 편안함을 느끼며 삶을 영유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기능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수납이나 생활에 불편함이 없어야 하고, 아늑한 부분도 분명히 필요하다. 반면에 스테이는 그 장소를 찾아가는 여정 자체가 흥미롭고 재미있는 경험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내부 공간에서도 다양한 공간의 변주를 통해 다이나믹한 요소를 주어 하루를 묵더라도 재미를 느껴 다시 오고 싶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주택이라고 해서 너무 편안함과 기능성만으로 집의 모든 것을 표현할 수는 없다. 그 안에 느껴지는 감성적 측면의 이야기들, 공간에 따라 다양한 심리적 변화들이 있어야 집이라는 것이 완성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찾아가는 여정이 나에게는 매우 흥미롭다.

 

화담재 ⓒ고영성
화담재 ⓒ고영성
화담재 ⓒ고영성
화담재 ⓒ고영성

Q. 이성범건축사사무소의 향후 계획과 건축가로서 도달하고 싶은 최종 지향점은?
단기적으로는 호스피탈리티(hospitality) 분야에서 대체 불가한 설계사무소가 되는 것이 목표다. 현재는 사람들이 쉬고, 휴식하고, 즐길 수 있는 훌륭한 숙박 공간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나는 평소 작업을 즐기는 편인데 그렇게 일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좋은 결과들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장기적으로는 어떤 지향점에 도달한다기보다 나이가 들어서도 이 작업 자체를 즐기고 싶다. 그러다 보면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지점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건축에 있어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땅과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것이다. 건축과 땅, 그리고 그 사이 사람과의 관계 규정에 따라 건축적 가치들이 다양한 형태와 공간으로 탄생하게 된다. 나의 작업이 제각각 서로 다른 개성을 보이는 이유도 클라이언트와의 관계, 땅과의 관계를 건축을 통해 어떻게 버무리고 조율하느냐에 따른 것이다. 땅과 사람의 관계를 건축이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나의 작업에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고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건축의 시작이자 끝이다. 최근 새로운 사무소를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에 이런 나만의 철학과 생각을 구체화해 더 밀도 있는 작업을 해나가고 싶다.

화담재 ⓒ고영성
화담재 ⓒ고영성

(주)이성범건축사사무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14길 28
Web: leesungbeom.com

Email: sb@leesungbeom.com

TEL: 02-6231-7477
 

이성범 / LEE SUNG BEOM
한양대학교 대학원 건축설계 1 석사
대한민국 건축사
現) (주)이성범건축사사무소 대표
現) 삼육대 겸임교수
現) 대전시 공공건축가


대표 프로젝트
화성 화담재 / 포항 카페연일 / 해안동 주택 / 충주 마당집 / 우아한 어린이집 수상
2020 한국건축가협회 건축상 아천건축상, 한국건축문화대상 신진건축사부문 대한
건축사협회 회장상,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 준공부문 최우수상, 제주건축문화대상 특선
2021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 우수상, 제주건축문화대상 준공건축물부문 본상
2022 제주특별자치도 건축문화대상 본상, 경상북도 건축문화상 최우수상
2023 경상북도 건축문화상 최우수상, 경기도 건축문화상 사용승인부문 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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