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erm LIVING - Unfold Room Divider, Dark Green

 

초록
시작과 성장, 안전과 편안함의 색

 

기나긴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산과 들에 온통 푸릇푸릇한 새싹이 돋아난다.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도 기지개를 켜고, 아이들은 새로운 반, 새로운 학교에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비록 지난 1월부터 새해가 시작되었지만, 피어나는 꽃과 돋아나는 초록의 이파리를 보아야 비로소 한 해의 시작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풀(草)의 푸름(錄)을 닮은 색, 초록은 이렇듯 온갖 동식물과 우리 인간에게 새로운 시작, 생명의 태동을 상징하는 컬러다.

 

Ⓒ Tradition - Antwerpen, Pavilion AV4

 

초록이 상징하는 새롭고 싱그러운 이미지는 곧 미숙함, 덜 익은 것과 연관되곤 한다. 고추, 사과 등의 붉은 과채는 완전히 익기 전까지 푸릇푸릇한 초록색을 띠는데, 이때 수확한 것을 우리는 ‘풋사과’, ‘풋고추’ 등으로 부른다. 나아가 경험이 적거나 어린 티가 나는 이를 두고 우리는 ‘풋내나는 애송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표현이 단지 우리나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영어에서도 풋내기(Green)나 애송이(Green behind the ears)라는 표현이 널리 쓰인다는 것을 보면, 어느 언어권에서든지 초록이라는 컬러가 에너지 넘치지만 아직 완전히 여물지 못한 느낌을 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BD Barcelona - Jaime Hayon - Showtime Cabinet

 

초록은 곧 풀의 색, 나뭇잎의 색이다. 때문에 초록이 자연과 환경을 상징하게 된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결과다. 세계의 많은 기업과 정당이 환경 보존, 친환경성을 내세우며 초록색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그린 에너지(Green Energy), 그린 경영(Green Management)이나 그린 오션(Green Ocean) 같은 추상적인 표현을 보거나 듣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녹음이 우거진 고요하고 평화로운 이미지를 떠올린다.

 

Ⓒ Monica Förster - Zero Umbrella Pendant lamp

일반적으로 교통 신호 체계에서의 초록은 안전, 허가를 의미한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초록색 신호등은 ‘가도 좋다’는 의미로 쓰이며, 보행자들과 운전자들은 이 초록 신호에 맞추어 통행한다. 안전색채에서의 초록은 안전, 구호, 대피로 등을 상징하기도 한다.

 

Ⓒ Norm Architects - Nepal Projects

 

초록은 또한 파랑과 노랑의 혼합색으로, 온도감에서는 중성색에 속하므로 격렬한 느낌보다는 차분하고 균형 잡힌 색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때문에 초록색은 심신을 안정시키거나 눈의 피로를 해소하는 데에도 많이 사용되는 컬러다. 수술실에서 환자의 붉은 피를 보며 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외과 의사들의 수술복이 초록색인 것도 이와 연관이 있으며,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거나 학습을 하며 눈의 피로감을 줄여주기 위해 아이 방의 벽을 초록색으로 칠하기도 한다.

 

Ⓒ Iona Vautrin - Mascotte - Bosa

 

중세 기독교가 검은색으로 그들의 종교적 엄숙함, 독실한 신앙심을 나타냈다면, 이슬람교는 초록을 신성시하며 사원의 돔을 초록색으로 칠하거나 초록 의복, 초록 터번을 쓰고 다녔다. 코란에서의 초록은 창조, 낙원, 또 예언자 무함마드를 상징하는 컬러다. 중동의 주요 이슬람 국가를 보면 사우디아라비아, 리비아 등은 초록색을 전면으로 내세운 국기를 사용했으며, 이란과 시리아는 국기 중앙에 초록색 무늬를 쓰고 있다.

 

ⓒ Bvlgari

 

이처럼 시작과 미숙함, 환경과 안전을, 일부 종교에서는 ‘신성함’의 의미까지 지니고 있는 초록은 아이러니하게도 ‘독(毒)’과 ‘죽음’을 나타낼 때도 사용된다. 초록색이 대중적으로 독성 물질의 이미지를 얻게 된 계기는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인공적으로 초록색 안료를 만들기 위해 독극물 제조에도 쓰이던 비소 성분을 주로 사용했다. 1775년 스웨덴의 화학자 셸레는 아비산구리를 주성분으로 하는 연두색 안료를 발명했다. 그의 이름을 딴 컬러 셸레 그린(Scheele’s green)은 곧 유럽 전역에서 인기를 끌며 벽지, 직물, 의복 등 여러 분야에서 사용됐다.

 

ⓒ La Chance

 

그러나 셸레 그린 컬러로 물들인 벽지, 의복의 미세한 비소 입자들은 공기 중으로 독성 물질을 발산해 많은 이들을 비소 중독으로 사망케했다. 한때는 셸레 그린 컬러가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주장도 제기된 바 있다. 프랑스의 지배자였던 그는 그가 가장 사랑하던 컬러인 셸레 그린의 벽지로 개인실을 도배했었고, 사후 진행된 검사를 통해 그의 머리카락에서 현대인보다 100배가량 높은 수치의 비소가 검출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19세기 말 무렵에서야 셸레 그린 염료의 생산이 중단되었고, 초록색은 사람들에게 독성물질, 죽음을 상징하는 컬러로도 깊이 인식된다. 지금도 많은 매체에서는 독극물을 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할 때 초록색을 활용하고 있다.

 

ⓒ Jonatan Pie

 

생명과 자연, 편안함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독과 죽음의 의미 또한 가지고 있는 컬러. 초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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