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살아있다》는 코리아나미술관과 코리아나 화장박물관의 호랑이 관련 소장 유물과 회화, 동시대 작가들의 시선이 담긴 영상, 회화 및 설치 작품으로 이루어진 특별기획전이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동명 작품에서 이름을 빌려온 전시 제목은 ‘호랑이’라는 상징적 존재에 관한 지속적인 가상의 믿음을 ‘살아있다’라는 현재형 동사를 통해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과거와 현대,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는 이번 전시에서는 액운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믿어 사용했던 호랑이발톱 노리개, 무관의 의복을 장식한 호랑이 흉배, 포효하는 호랑이의 모습을 담은 맹호도(猛虎圖), 익살스러운 호랑이 모습의 민화와 국내외 현대 작가 5인의 시선이 담긴 ‘호랑이’와 관련된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커다란 호랑이 무늬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붉은색의 덮개는 신부가 타고 가는 가마의 지붕을 덮는 용도로 널리 사용됐다. 혼례식을 마치고 신방을 치른 신부는 화려하게 꾸민 가마를 타고 남편의 집으로 향했는데, 가마의 둘레에는 흰 천으로 휘장을 두르고 지붕에는 호랑이 가죽을 덮었다고 한다. 용맹스러운 호랑이가 나쁜 기운을 막아준다고 믿어 실제 가죽을 사용했으나, 일제강점기 당시 호랑이 사냥이 급격히 증가하고 실제 호랑이 가죽을 구하는 것이 힘들어지자 호랑이 무늬가 들어가 있는 모직물 덮개로 점차 대체되었다.
 
 
▲ 은파란 호랑이발톱 노리개, 호랑이 발톱, 금속, 사직(絲織), 길이 36cm, 조선. / 코리아나 화장박물관 소장
 
조선 시대에만 있었던 흉배는 관리들의 집무복인 관복의 가슴과 등에 붙여 신분과 직위를 나타냈다. 문관은 조류(鳥類)를, 무관은 금수류(禽獸類)를 부착했는데, 호랑이는 용맹함을 상징하여 무관의 의복에 사용했다. 다채로운 색상과 패물을 사용하여 의상에 화려하고 섬세한 미를 더해주는 여인들의 장신구 노리개에도 호랑이가 빠지지 않았다. 궁중과 상류사회, 평민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사랑을 받은 노리개 장식은 금, 은, 옥, 산호 등 다양한 재료와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호랑이발톱 노리개는 호랑이발톱 두 개를 마주 보도록 배치하고 테두리를 은으로 감싸 꾸민 것인데, 호랑이발톱이 병을 막아주고 액운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믿어 널리 애용되었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호랑이의 용맹함과 날렵함이 나쁜 기운을 막아준다는 믿음 또는 염원을 가지고, 다양한 곳에 호랑이 문양을 넣거나 실제 호랑이의 일부를 재료로 사용하곤 했다.
 
▲ 소재 유삼규, 군호도 8폭 병풍, 비단에 채색, 127x441cm. / 코리아나미술관 소장
 
백남준, 호랑이는 살아있다, 비디오 설치, 싱글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LCD 모니터, 레진 구조물에 유채, 61x72cm, 13분 58초, 2000. / 개인 소장
 
공간 안쪽에서는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로 잘 알려진 백남준의 작품이자 이번 전시의 이름을 빌려온 <호랑이는 살아있다>를 만나게 된다. 새천년맞이 행사로 추진된 공연 <DMZ 2000>의 주요 섹션 중 하나로 기획됐으며, 당시에는 첼로와 월금 형태를 한 8m 크기의 대형 비디오 조각으로 설치되었다. 전시된 작품은 동일한 제목의 변주된 형태로, 북한 체제선전용으로 제작된 호랑이 다큐멘터리, 다양한 호랑이 민화 등이 편집되어 등장한다. 작가에게 호랑이는 역사적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반만년 동안 굳건하게 산야를 누비며 생존해온 강인한 생명력이자 한민족의 메타포로, 밀레니엄 세대를 맞이하는 한국인의 미래지표로 투사되었다.
 
 
옛 전통에서 살아 숨 쉬던 호랑이를 뒤로하고 새로운 공간으로 내려가 동시대 작가 5인이 바라본 호랑이들을 만나볼 차례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제시카 세갈(Jessica Segall)의 <(낯선)친밀감>은 공간을 압도하는 7m 폭의 대형 화면을 통해 수중에서 호랑이와 마주하는 한 여성의 모습을 슬로우 모션으로 소개한다. 영상 속 여성은 실제 작가의 모습으로 작품을 위해 야생동물을 다루는 훈련을 받아 미국 민간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 직접 촬영했다. 호랑이와 작가의 접촉이 일어나는 장면은 초현실적이면서도 생경한 세상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동시에 생태계 보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국 현실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이 외에도 전통적인 한국화 기법과 재료를 사용하여 어두운 숲 속에 그림자처럼 숨어있는 여러 마리의 호랑이를 욕망의 메타포로 표현한 이은실의 <삶의 풍경>, 1970~80년대 유행했던 호랑이 스킬자수 골동품을 수집해 자신만의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낸 한주예슬의 작품, 한국, 독일을 거쳐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영주의 <잃어버린 호랑이를 찾아서> 등 호랑이에 관한 현대적 관점과 작가의 개성이 묻어나는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실제로 호랑이를 마주할 경험이 살면서 얼마나 될까? 주위에서 직접 호랑이를 본 사람을 꼽아보자면 극히 드물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낯설고 포악한 야생의 맹수이건만 이상하게 우리는 호랑이를 떠올리면 마냥 무섭게만 느껴지진 않는다. 우리나라의 건국 신화인 <단군신화>와 오랜 세월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와 민화 등 다양한 작품, 오늘날 올림픽 대회의 마스코트까지. 호랑이는 수천 년의 역사를 거쳐 우리 민족의 풍습과 문화, 정서 깊은 곳에 자연스레 자리하고 있다. 신으로 받들고 제사를 지내는 신앙의 대상이 되거나, ‘호환’이라 불리며 조상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존재이기도 했던 호랑이는 때로는 미워할 수 없는 익살스러운 동물로, 혹은 민족을 상징하는 영물(靈物)로 지혜롭게 그려졌다. 이처럼 호랑이는 다채로운 모습으로 가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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