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에 가면, 영화를 보게 된다. 도서관에 가면, 책을 보게 된다. 미술관에 가서도, 전시된 작품을 볼 뿐이다. 영화관과 도서관과 미술관의 환경이란 사실 그 모든 ‘작품들’을 위해 구성된 곳이기 때문이다. 영화관에서는 영화에 집중할 수 있으면 된다. 도서관에서도 책에 방해만 안 되면 그 뿐이다. 미술관 역시 작품들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구조여야 한다. 그러나 어떤 미술관들은 이런 기본조차 지키지 못한다. 조명도, 습도도, 온도도, 구조도 작품을 감상하라고 만든 곳이라 말하기에 너무 불합리하다. 전시를 취재하기 위해 방문했던 어떤 공간들도, 작품을 감상하는 곳보다는 방문을 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질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자연스레 파주에 위치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을 떠올리게 된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작품을 감상하기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동시에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작품이 되는 공간이다. 이곳은 대지면적 1,400평에 연면적 1,100평의 지상 3층 지하 1층으로 이루어진 미술관으로, 다양한 크기의 여러 전시 공간이 하나의 덩어리로 구획되어 있다. 이곳은 건축가 알바루 시자가 설계해 잘 알려졌다. 그는 ‘모더니즘 건축의 마지막 거장’이라 불리는 포르투갈의 건축가로서, 외형적 화려함보다는 사용자를 배려한 기능을 추구한다고 평가 받는다. 포르투 세할베스 현대 미술관, 아베이루 대학교 도서관, 리스본 엑스포 파빌리온을 비롯, 국내의 알바루 시자 홀, 아모레 퍼시픽 연구원 등을 설계하기도 했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건축물의 부드럽게 파고 들어가는 인상적인 곡선을 만나면, 왜 이 건물이 ‘시자의 고양이’라 불리는지 깨닫게 된다. 노출 콘크리트 형식의 외관은 무엇이 진정한 노출 콘크리트 형식인지 잘 나타내는 듯하다. 뮤지엄을 찾아가 처음 만나게 되는 곳은 바로 카페와 북앤아트숍이다. 카페와 테라스에서는 커피, 제철 과일로 만든 생과일 주스와 빙수 등 식음료를 즐길 수 있고, 숍에서는 열린책들과 미메시스가 출간하는 책, 디자인 굿즈들을 보다 할인된 가격에 만날 수 있다.
 

 

 ⓒ박기일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상업적인 전시공간을 내세우지 않는다. 화려하고 그럴싸한 전시로 방문객을 유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건축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 되고, 건축이라는 작품은 또한 전시되는 작품들을 놀랍도록 주목하게 만들어준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에서 주목할만한 요소는 바로 ‘빛’이다. 해가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채광이 달라지는데, 모든 작품은 천장에서 들어오는 빛을 통해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작품들은 이에 따라 빛을 받을 수 있는 구조로 유연하게 구성되어 있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지난 2월 6일부터 이라는 이름의 소장품전을 열고 있다. 큰 주제는 두 개다. 작가들의 시선이 머무는 지점, 그리고 작가들의 관점에서 나타나는 세계. 미메시스 아트뮤지엄을 찾는 이들은 작가들의 관점과 시선을 통해 이전에 느끼
지 못했던 것들을 느끼고 체험해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강석호, 권영성, 김성국, 김중만, 김효숙, 민병헌, 박기일, 우정수, 이세헌, 이슬기, 이지영, 장재민, 제여란, 최윤희, 최은정, 홍순명 작가 등 미메시스가 소장하고 있던 다수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김효숙 작가는 완성된 구조물보다는 부유하는 도시의 구조물을 중첩된 유기적 공간으로 표현해 여러 프레임을 쌓아 형상화한다. 복잡한 그의 작업은, 복잡한 도시의 겉모습과도 많이 닮아 있다. 생명력 없이 인공적인 인물과 부유하는 건축 자재는 작가가 어린 시절 참여했던 <해체되어 가는 건축물>에서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세계는 시각적으로 느낄 수 없는 것들로 차 있고, 이 세계를 가장 근접하게 표현하는 것이 작가의 목표다.

 

 

 

최은정 작가는 가장 비현실적인 인공의 풍경화를 그린다. 언뜻 보면 도시 설계 같기도 한 작품은 나무와 식물의 다채로운 구조물과 어우러진 익명의 풍경. 이것이 최은정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작가는 말한다. “내가 화면에 구성하는 공간은 우리가 그 안에 살고 있는 공간도, 멀리서 바라보는 풍경도 아니다.” 작품에서 드러나는 동적인 구도와 휘황찬란한 색은 이질적인 듯 하나 작가만의 조화로운 기준을 완성시켰다.

 

 

박기일 작가의 작업은 흥미롭다. 환영(Illusion)을 만들어내는 창(Window). 회화에 대한 전통적 개념은 작품의 주된 소재가 된다. 그의 작품은 그림이라는 프레임 속 프레임으로, 현실과 이상을 분리하거나 대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이미지인지, 어디까지가 일상이며 또 욕망의 대상인지는 관람자의 시점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조금만 걸어가면 권영성 작가의 독특한 세계관을 만날 수 있다. 그는 주변의 사물을 소재로 가상의 지도를 만들 어내는데, 복잡한 세계를 단순화해 현실의 풍경과는 또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그는 최근 ‘그래프’라는 소재를 통해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데, 그는 이 작업을 ‘풍경화’라 칭했다. 작가가 보는 세계가 사물에서 공간으로 넓어지며 보다 더 많은 것들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인지 모른다. 그는 비물질적인 것을 수치화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의 작업물을 천천히 살펴보면 냉담하기보다는 감정적으로 그가 이입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계단을 거듭 올라가고 나면 장재민, 우정수 작가의 작업이 보인다. 장재민 작가는 채도를 덜어내고 갈색과 회색으로 세상을 보는 작가다. 거친 붓질은 그만의 풍경화를 그려내는 훌륭한 도구가 된다. 그만의 풍경화는 그가 그린 풍경의 장소를 잊게 하고, 새로운 장소를 만들어낸다. 우정수는 사회의 단면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묘사하는 작가다. 거대한 서사시 같은 그의 작품 속에는 책, 원숭이, 도깨비, 난파선 등 기괴한 상황들이 등장하는데, 우리와 상관 없을 것 같은 소재들로 사회의 현실을 보여준다.
 

 

 

 

이세현 작가는 산수화를 활용, 그가 경험한 현실 속 이미지를 그린다. 그가 그린 붉은 그림은 낭만적이라기보다는, 현실적이다. 과거 산수화가 작가의 유토피아를 보여주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 반대편에는 이슬기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일상의 사물이 지닌 맥락을 변형해 새로운 정체성을 찾게 하는 작업이다. <이불 프로젝트 U>란 이름의 이 누비이불 작품은 한국의 속담을 기하학적 무늬로 도상화한 것이다.
 

 

 

퇴장로가 따로 없는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올라왔던 길을 그대로 걸어 내려가게 하며 작품들을 한 번 더 마주하게 한다. 새 걸음과 헌 걸음이 교차하는 이 교차로에서 관객은 작품의 의미를 한 번 더 발견하게 된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앞으로도 다양하고, 깊이 있는전시를 통해 관객을 찾을 것이다. 여유가 된다면 파주 출판 단지의 멋진 갤러리로 와 작품을 보고, 또 건축을 즐겨보자. 다른 미술관에서 보지 못했던 재미를 발견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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