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킬레 카스틸리오니와 타락사쿰 88’, 사진: C. 콜롬보, 아킬레 카스틸리오니 재단 제공
  

 

예술은 가깝고도 멀게 느껴지는 이야기이다. 동시대를 그려낸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면, 어떻게 이걸 이렇게 표현했지 싶다.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른 것을 생각하며, 종종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내뱉는 예술가들. 왠지 경외심이 들고, 묘한 거리감을 느낀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조차 그럴진대, 수세대를 앞서 살아간 예술가들은 더욱 멀게만 생각된다. 그러나 그 아득한 거리감을 뛰어넘는 건 쉽다. 바로 작품을 통해서다. 예술가들의 작품 속에서 우리는 전율을 느끼고, 다른 시대를 살아갔던 예술가들조차 작품을 통해서 같은 공간에 숨 쉬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탈리아 디자인의 거장 카스틸리오니 역시 좀처럼 가깝게 느껴지지는 않았던 존재였다. 아트마이닝과프로젝트 콜렉티브가 공동 주관한 이번 전시, 《이탈리아 디자인의 거장, 카스틸리오니》 展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전시를 통해서 만난 아킬레 카스틸리오니는 번뜩이는 생각과 아이디어를 가진, 조금 재치 넘치는 이탈리아 아저씨였다. 그는 난해하다기보다는 직관적이었고, 이해하기 어렵다기보다는 명쾌한 해법을 내어놓는 사람이었다. 카스틸리오니의 익살스러운 표정 뒤에 감춰진 디자인과 발명의 세계, 그가 왜 ‘이탈리아 디자인의 거장’이라고 불리는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아킬레 카스틸리오니와 형제들 

 

이번 전시는 아킬레 카스틸리오니와 그의 형제들인 라비오, 피에르 지아코모 카스틸리오니의 디자인이 지닌 현대적 가치를 재조명하고자 기획된 전시다. 밀라노에서 태어난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세 형제는 이탈리아를 넘어 전 세계 디자인 역사에서 가히 상징적인 영향력을 펼쳤던 핵심 인물들이다. 아킬레 카스틸리오니 형제는 실험적인 산업디자인을 구현하기 위해 밀라노의아티스트 스튜디오에서 공동작업을 시작했다. 큰 형 라비오는 머지 않아 시청각 및 조명 분야에 주력하기 위해 떠났지만, 남은 두 형제는 도시계획, 건축, 설치미술,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새로운 것’을 탄생시켰다. 5개의 황금콤파스상을 비롯한 수많은 수상이 당시 그들의 영향력을 짐작케 한다.

 


 

“밀라노는 위대한 ‘밀라노’이다” Milan l’é un gran Milan
 

 

이탈리아 북서부에 위치한 롬바르디아 중심 도시이자 이탈리아 경제의 중심, 세계 패션과 디자인의 중심, 바로 밀라노다. 밀라노는 카스틸리오니 형제가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자, 동시에 카스틸리오니 형제의 상징이었던 도시다. 1950년대 이탈리아, 특히 밀라노는 문화와 기술, 경제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혁신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학제 간 협업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음향업체 Brionvega는 자누소와 손을 잡았고, 올리베티는 소트사스와 함께했다. 카스틸리오니와 조명회사 Flos의 협업 역시 같은 맥락 위에 있다. 아, 밀라노 사투리로 ‘밀라노’는 도시의 아름다움과 문화, 유산을 갖춘 위대한 도시라는 뜻이란다.


 

 

 

카스틸리오니 스튜디오 The Castiglioni Studio

 

이 위대한 도시에 위치한 카스틸리오니 스튜디오는 기업과의 협업 이전에 각 형제들 간의 협업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곳이었다. 1936년 아버지 지아니노 카스틸리오니가 사용하던 작업실을 리비오가 사용하게 되었고, 이듬해 피에르 지아코모가, 1944년에는 아킬레가 합류하며 만들어진 카스틸리오니 스튜디오는 혁신을 만들어내는 곳이었다. 그러나 혁신에 골몰해 현재의 중요한 것들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도 않았다. 이 스튜디오에서 형제는 독창적이면서도 위트가 담긴 작품들로 ‘아름다운 동행’을 지속했다. 1968년 피에르 지아코모가 사망한 뒤에 이들의 협업은 끝났지만, 아킬레는 혼자 남아 2002년까지 작업을 이어갔다.

 

 

 : Arco_Courtesy of Archille Castiglioni Foundation

 

창조의 과정 The Creative Process

 

무언가를 창조해본 적이 있다면 창조의 과정은 순전히 ‘질문의 과정’이란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질문을 던지지 않고는 무언가를 만들 수 없다. 카스틸리오니 형제들은 창조하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이 물건은 어떻게 쓰이지? 이 물건은 어디에 두어야 하지? 이 물건은 무엇이지? 이 작업은 어느 때를 위한 것이며 왜 필요한 것이지?”하고 말이다. 체계적 의심은 카스틸리오니가 선입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었고, 곧 그들은 ‘자유롭고 열린 마음’으로 디자인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전시 디자인 Temporary Architecture

 

카스틸리오니 형제의 이런 창작 과정이 잘 드러났던 것은 전시 분야의 디자인이었다. 건축적 요소, 환경 그래픽 사인을 융합하고, 멀티미디어 분야를 실험했던 카스틸리오니 형제는 공간 구성을 단지 미학적 작업으로 보는 데 그치지 않았다. 뭐랄까. 이는 리 ‘서사’였다. 영화의 몽타주 기법처럼 스케일과 지속 시간을 고려한 장면들, 프레임의 연속을 통해 공간 속에 만들어낸 이야기의 리듬은 당시로서는 혁신이었다. 스케일의 변화, 배선, 루트, 조명, 음향, 움직이는 요소와 알레고리, 반복, 거울, 시퀀스, 레디메이드, 반사와 환경. 지금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는 전시의 요소들은 바로 이 카스틸리오니 형제에 의해 탄생한 것이었다.

 


 

 

만화 속 카스틸리오니의 디자인 Design and comic strips
 

<디아볼리크>는 밀라노 출신의 만화가 주사니 자매(Angela and Luciana Giussani)가 집필한 만화책 시리즈로, 잔악한 빌런이 등장한다. 주사니 자매는 이 시리즈에 카스틸리오니 형제가 디자인한 아르코 램프(Arco Lamp)를 그려 넣었는데, 이 스릴러의 배경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단지 아르코 램프뿐만은 아니다. 만화 속 등장한 토이오 램프(Toio Lamp), 또 타치아 램프(Taccia Lamp) 역시 <디아볼리크>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카스틸리오니 형제의 디자인이 그야말로 시대의 아이콘이자 스타일이었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포스터의 숲 The “woods of posters”

 

밀리오레+세베르토 건축사무소는 2018년 스위스 키아소 m.a.x 박물관에서 흥미로운 전시를 개최했다. <공상가 아킬레 카스틸리오니 Anchille Castiglioni Visionario>라는 이름의 이 전시에서는 세계적인 디자이너와 젊은 인재들이 그린 포스터 24장이 소개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24장에 한국 유명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가 제작한 10장의 포스터가 더해졌다. 아킬레 카스틸리오니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는 작품을 통해 보다 새롭고 흥미로운 카스틸리오니의 면모를 읽어볼 수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은 아킬레 카스틸리오니와 그 형제들이 만들어낸 ‘혁신’을 만나볼 수 있었다. 뛰어난 관찰자이자 해석가였던 이들은 변화하는 사회적 요구를 명확히 이해하고 예측해 사회의 변화에 언제나 앞서가는 ‘트렌드세터’였다. 레디메이드, 형태와 기능의 자유로운 결합, 예상치 못한 스케일의 변화, 관람객과 여정의 중심성, 생동하는 빛의 움직임, 음향의 서사적 목소리, 알레고리, 그래픽 사인과 이를 넘는 새롭고 예측 불가능한 무언가까지. 한가람미술관의 전시 《이탈리아 디자인의 거장, 카스틸리오니》를 통해 확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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