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혼에 물든 날 Long Golden Day, 2000,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243.9 x 147.4 cm, 현자 리 에이브론스 소장 Collection of Hyonja Lee Abrons Location: Cayuga Lake, NY
방안에는 따스한 햇볕이 스며들고, 호수가 보이는 창문을 통해 살랑거리는 바람이 커튼을 스쳐 지나간다. 빛과 물, 바람이 어우러진 아름다움과 청량함이 느껴지는 풍경을 감상하다가, 사진이 아닌 그림이라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미국 뉴욕주 이타카를 기반으로 작업해온 앨리스 달튼 브라운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로서, 지난 50여 년간 빛을 주제로 섬세한 붓 터치를 선보였다. 사진으로 착각할 만큼 세밀한 유화 작업을 이어온 그녀는 1939년 미국 동부 펜실베이니아 댄빌에서 태어나, 뉴욕주 이타카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구름이 많은 날씨의 이타카에서 느지막이 뜨는 태양과 사물의 그림자는 작가의 예술적 영감이 되었다. 가정을 꾸린 후에도 세 아이의 블록 장난감에 비친 그림자를 모티프 삼아 부엌에서 아크릴 물감으로 작업을 이어갔다. 1970년에는 당시 예술계를 평정하던 뉴욕 중심부로 이사하면서 소호의 여러 갤러리에 전시된 포토리얼리즘 작품을 접하게 됐고, 지금의 극사실주의 화풍을 확립하게 되었다.
10월 24일 까지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인생 첫 회고전인 《앨리스 달튼 브라운, 빛이 머무는 자리》 展이 열리고 있다. 첫 회고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대규모 전시로 구성됐으며, 2-3미터 크기의 대형 유화 및 파스텔화 등 작가의 50여 년간의 활동을 총망라하는 작품 80여 점이 자리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작품들이 선사하는 고요한 명상의 순간을 느낄 수 있다.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의 도심속에 조성된 마이아트뮤지엄은 2019년 개관특별전으로 체코의 아르누보 화가인 《알폰스 무하》 展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이후 앙리 마티스 탄생 150주년을 기념한 국내 최초의 앙리 마티스 단독전과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 맥스 달튼의 국내 최초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다. 마이아트뮤지엄은 '도심 속 예술이 있는 감성공간'이라는 비전으로 다양한 콘텐츠의 전시로 미술 애호가들의 호평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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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TION 1. 빛과 그림자 Light and Shadow
첫 번째 섹션은 1976년부터 1978년까지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초기작을 선보인다. 이 곳은 그녀가 처음으로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가지고 본격적인 전업화가로서 나아가는 시기에 그려진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고갱과 세잔을 연상시키는 후기 인상주의 화풍과 추상 표현주의 등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했던 그녀는 농장과 헛간을 정밀한 기법으로 작업하며 자신만의 화풍을 확립해갔다. 건물 외벽에 묘사된 빛의 흐름을 쫓던 그녀는 같은 공간에 있는 나무의 그림자를 다르게 묘사한 <나무와 그림자>시리즈를 제작했다. 나무의 그림자를 모티프 삼아 헛간의 옆면을 수평으로 바라보고 있는 세 점의 연작 <나무와 그림자>시리즈에서는 두 건물이 만들어낸 모퉁이에 비친 그림자까지 묘사하여 모든 작품에서 그림자를 통한 빛의 움직임을 섬세하게 관찰할 수 있다. 같은 장소에서 그려진 이 작품들은 평면적인 풍경에서 멈추지 않고, 벽면을 다 채울 만큼의 거대한 스케일의 나무 그림자를 그림 전면에 드리워 관람객들에게 깊은 공간감을 선사한다. 이 작품을 바라보고 있으면 관람객은 자신이 그림자가 드리운 헛간과 나무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눈앞에 놓인 작품의 공간이 확장되어 마치 등 뒤로 더큰 공간이 이어지는 것 같은 착각에 놓이게 된다.
Ⓒ 두 건물로 만들어진 모퉁이 Co-Op Corner, 1978, 캔버스에유채 Oil on canvas, 76.2 x 121.9 cm, 작가 소장 Collection ofthe Artist Location: Cornell University Campus, Ithaca, 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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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TION 2. 집으로의 초대 Invitation to the House
두 번째 섹션은 1979년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작가가 집중적으로 탐구했던 주택을 다룬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피시바흐 갤러리와 전속 관계를 맺고, 13번의 전시를 개최한다. 점차 아이들의 양육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면서 안정적으로 작품 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앨리스는 뉴욕주 끝자락에 있는 작은 마을 웨스트필드에 위치한 '웨스트필드 저택'을 시작으로 주택소재의 다양한 작품을 그렸다.
Ⓒ 어룽거리는 분홍빛 My Dappled Pink, 1992,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98.1 x154.9 cm, 개인 소장 Private Collection Location: Key West, FL
Ⓒ 봄의 첫 꽃나무 First Spring Tree, 1988,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98.1 x 142.2cm, 질과 알렉스 디미트리에프 소장 Collectionof Jill and Alex Dimitrief Location: Artist’sclosest childhood friend’s home, Ithaca,NY; tree from Washington Square Park,New York City, NY
정돈되지 않은 들판 한 가운데에 방치되어 있는 저택에 마음을 빼앗긴 그녀는 그 자리에서 스케치하고 사진을 찍었다. 이타카에서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내려앉은 고전 주택의 현관을 보며 자란 작가에게 웨스트필드 저택은 큰 영감이 되었다. 저택을 발견한 후부터 빛을 향한 본격적인 탐구가 시작되었고, 이로 인해 웨스트필드 시리즈는 작가의 예술적 커리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정표가 되었다. 서른 네점의 웨스트필드 시리즈 중 이번 전시에는 네 점이 전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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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TION 3. 여름 바람 Summer Breeze
세 번째 섹션에서는 앨리스 달튼 브라운이 2000년대부터 그려온 대표작, '여름 바람(Summer Breeze)' 시리즈를 만나볼 수 있다. 앨리스는 건물의 경계를 이어주는 공간에서 이제 실내로 이동했다. <여름 바람>은 바람에 살랑이는 커튼이 처음 등장하는 작품이다. 여름 바람 시리즈는 1995년 한 친구의 집에서 보았던 커튼이 휘날리는 풍경으로부터 시작됐다. 앨리스는 가구를 모두 배제한 집의 풍경 그대로를 <여름 바람>이라는 제목으로 그렸고, 이후에도 이 풍경을 여러 차례 다시 그리며 창가에 바람이 휘날리는 풍경을 연구했다. 여름 바람 시리즈 중, <여름 바람>만 실제의 풍경을 기반으로 한 것이며, 시리즈로 이어지는 나머지 작품은 실제와 가상의 요소가 혼재한 장면을 그려냈다. 작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반투명 커튼을 구매해 방문하는 집마다 커튼을 걸어보며 커튼과 그 공간에서 보이는 풍경을 직접 눈에 담았다.
Ⓒ 여름 바람 Summer Breeze, 1995, 캔버스에 유채 Oilon canvas, 178.4 x 127 cm, 개인 소장 Private CollectionLocation: Friend’s home, Long Island, 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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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에 물든 날>(2000)에서는 여동생의 집 베란다와 이타카에 위치한 카유가 호수 풍경을 합쳐 실제 존재하진 않지만 어딘가에 있을법한 새로운 장소를 탄생시켰다. <황혼에 물든 날>을 비롯하여 <느지막이 부는 바람> 등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아트 프린트로도 제작되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작가가 여동생 집의 넓은 통창 베란다에 커튼을 추가하고 그 후경에는 부모님의 별장이 있던 카유가 호수를 상상으로 더해 제작한 <황혼에 물든 날>. <황금빛으로 물든 커튼>과 <황혼에 물든 날, 습작>은 모두 <황혼에 물든 날>을 제작하기 위해 앨리스가 여러 차례 연습한 습작이다. 이외에도 앨리스 달튼 브라운은 2020년 말부터 세 점의 대형 신작 <정적인 순간>, <설렘>, <차오르는 빛>을 이번 전시를 위해 마이아트뮤지엄 커미션으로 완성했다. 전시공간에서는 작품을 처음 구상했던 습작과 본 작품을 함께 공개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제작된 시리즈인 만큼 앨리스 달튼 브라운이 탐구하고 있는 작품 세계가 잘 반영되었으며, 생동감 넘치는 묘사를 해내는 작가의 테크닉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작은 사이즈로 그려진 습작에서부터 대형 캔버스에 그려진 본작까지 작품의 스케일이 바뀌면서 변화하는 분위기를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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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TION 4. 이탈리아의 정취 Impression of Italy
마지막으로 네 번째 섹션에서는 2015년부터 앨리스가 작업했던 이탈리아 시리즈와 이에 영감을 주었던 과거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1994년 호지킨병 치료를 마친 앨리스는 남편과 함께 이탈리아 토스카나에 위치한 루카(Lucca)라는 마을에 거주하는 친구의 별장에 방문했고, 이탈리아의 풍경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그녀는 별장에서 보이는 풍경을 <언덕 위의 빌라 Hill Villas>(1994)로 남겼고, 매일 식사했던 마당을 배경으로 <등나무가 있는 안뜰>을 완성시켰다. <등나무가 있는 안뜰>은 앨리스가 친구의 별장에 머무는 동안 새로운 영감을 얻어 그려냈다. 그녀는 그림을 그릴 때 그곳에 있던 거대한 대리석 식탁을 제거하고 테라스의 구조와 안뜰을 채운 식물이 잘 보이도록 구도를 잡았다. 테라스 풍경에서 보이는 붉은 빛의 테라코타, 벽돌, 대리석은 전통적인 이탈리아 토스카나 건축 스타일을 대표한다. 2015년에 시작된 이탈리아 시리즈는 대부분 파스텔로 제작된 것이 특징이다. 파스텔이 주는 재질은 다소 거친듯하지만, 따뜻한 느낌이 잘 표현되어 이탈리아의 고전적인 풍경과 정취와도 잘 어울린다. 올해로 여든을 맞이한 앨리스 달튼 브라운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으며, 작품을 제작할 때마다 여러 차례의 습작을 만들어내며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로맨틱하고 청량한 그녀의 작품들과 함께 아름다운 물과 빛, 바람을 느끼며 고요한 명상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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