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아모레퍼시픽의 창업자 서성환 선대 회장이 수집한 미술품을 기반으로 출발했다. 1979년 태평양박물관을 시작으로 2009년에는 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 Amorepacific Museum of Art)으로 명칭을 바꾸고,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아우르는 미술관으로써 전시와 연구, 출판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2018년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예술'이라는 인류 공통의 언어로 작가와 관람객이 소통하는 다양한 공간을 갖춰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 본사에 새롭게 문을 열었다. 지하 1층에 마련된 전시실과 지상 1층부터 3층까지 이어진 아트리움은 지역사회와 문화로 소통할 수 있도록 공간을 조성했다. 1층에 위치한 미술관 로비와 뮤지엄샵, 전시공간 'APMA캐비닛', 전시도록 라이브러리 'apLAP(Amorepacific Library of Art Project)' 등을 통해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다채로운 즐거움을 선사한다. 마치 또 하나의 예술 작품 같은 아모레퍼시픽 본사는 영국의 세계적인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작품으로, 관람객은 이곳에서 한국과 세계의 작품이 만나 공존하는 새로운 전시를 감상할 수 있다.《APMA, CHAPTER THREE》는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며 활발한 활동을 선보이고 있는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로, 2019년 2월 첫 현대미술 소장품 특별전《APMA, CHAPTER ONE》과 2020년 7월 고미술을 다룬《APMA, CHAPTER TWO》에 이은 세 번째 소장품 특별전이다. 이전 전시에서는 1979년 태평양박물관 개관 이후 역사를 함께한 소장품을 소개했다면, 이번에는 기존에 공개되지 않았던 현대미술 소장품을 중심으로 관람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각 작품의 특성을 극대화하여 심도 있게 감상할 수 있도록 색다른 공간을 구획한 것은 물론, 전시실 외에도 미술관 곳곳에 작품을 설치해 뜻밖의 만남을 유도했다.


  Ⓒ 아이엑스디자인 - APMA, CHAPTER THREE 展


  Ⓒ 아이엑스디자인 - APMA, CHAPTER THREE 展

1전시실에서는 회화와 현대 공예를 한 공간에 전시하여 두 장르 간의 조화를 모색했다. 벽면에는 각기 다른 서사를 담은 회화를, 중앙에는 목공예 작품을 배치했다. 제니퍼 바틀렛의 정방형 금속 패널 회화부터 두터운 물감으로 화면의 입체감을 극대화한 켈리 페리스의 그림, 새로운 재료와 기법으로 끊임없이 실험하는 스털링 루비의 콜라주 회화까지 폭넓은 유형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아미시(Amish) 전통 공예와 퀄트를 접하며 자란 스털링 루비는 회화와 조각 작업에 콜라주, 도예 등 공예적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작가는 자신의 콜라주 작업을 '부정한 결합'이라 칭하며 캔버스 위에 표현주의와 미니멀리즘, 유동성과 정체 등 상반되는 개념을 충돌시키고 서로 어울리지 않는 형상, 기법, 재료 간의 조화를 이루어 낸다. 전시실에서 만나볼 수 있는 <창문. 솜사탕.(WIDW. FAIRY FLOSS.)>은 연작에 속한다. 서로 다른 두 공간이 부딪히는 일종의 경계인 창문은, 그 자체가 '부정한 결합'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최근 작가가 현시대의 사건들을 생각하며 마음속에 그린 장면이기도 하다. 높이 3.3m, 폭 2.5m에 이르는 화면에 물감과 판지, 천 등의 재료가 결합된 콜라주의 색과 질감에서 강한 에너지를 느껴볼 수 있다.


  Ⓒ 아이엑스디자인 - APMA, CHAPTER THREE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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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전시실에는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 두 명을 소개한다. 입구로 들어서면 화려함 뒤에 인간의 절망과 한계를 안고 있는 이불 작가의 조각들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불 작가는 영화, 문학, 근대건축,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영감을 얻어 퍼포먼스, 영상, 설치, 회화에 이르기까지 여러 장르의 작품을 선보이며 미술의 형식적, 서사적 확장을 이뤄왔다. 특히 신체나 건축물 등 개인과 사회의 구조적 시스템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욕망과 그에 대한 좌절을 작품으로 표현한다. 작가는 1990년대 후반 일본 만화에서 모티프를 얻어 <사이보그> 시리즈를 제작했으며, 기술의 발전을 통해 완벽함을 얻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에 대해 탐구했다. <사이보그 W7>은 그중 일곱 번째 작품으로 여성의 몸과 기계 장치가 결합된 혼성체다. 기술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만들어진 이 불멸의 존재는 당당한 전사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머리, 팔, 다리 일부를 잃어버린 불완전한 형태에서 비롯되는 상실감은 이상과 현실의 부조화를 나타낸다. 전시실 가장 안쪽에 자리한 최우람 작가의 키네틱 조각 <울티마 머드폭스>는 작가가 제작한 첫 기계 생명체 작품이다. 기계 생명체에 부여된 학명과 탄생 비화를 작품과 함께 감상하며 관람객은 작가가 그리는 신비로운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 아이엑스디자인 - APMA, CHAPTER THREE 展

1960년대부터 최근에 제작된 현대미술까지 폭넓은 주제의식과 양식을 세 개의 전시실에 걸쳐 소개한다. 3전시실에서는 미니멀리스트 조각가 프레드 샌드백의 설치 작품을 만나게 된다. 작가는 공간을 가로지르는 아크릴 실을 설치해 작품을 관람하는 위치와 각도에 따라 선과 가상의 면을 넘나드는 기하학적인 조각을 만들었다. 4전시실은 현대미술사의 주요 전환점들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작품들과 함께 현대미술 작가들의 실험성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미국 미니멀 아트의 선구자인 도널드 저드의 설치 작품 <무제(Untitled)>와 개념 미술가 조셉 코수스의 네온 작품 <다섯 개의 다섯 개(도널드 저드에게) Five Fives(to Donald Judd)>를 마주하게 된다. 코수스는 저드가 포스트 모더니즘 미술과 자신의 작품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작품은 저드의 작품 철학을 단어들로 표현하고자 시도한 것으로, 두 작품을 마주 보게 전시하여 작가 간의 대화를 형성했다. 이 외에도 로셸 파인스타인의 텍스트를 접목한 추상 회화 작품 <러브 바이브(Love Vibe)>, 얀 보와 양혜규 등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는 작가들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직사각형의 공간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공간 구성으로 인해 작품들의 특성을 극대화하여 체감할 수 있다.


  Ⓒ 아이엑스디자인 - APMA, CHAPTER THREE 展


  Ⓒ 아이엑스디자인 - APMA, CHAPTER THREE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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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매체의 실험성이 돋보이는 대형 작품들이 자리한 6전시실은 가장 큰 전시실로, 압도적인 크기의 공간으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관람객의 시야와 동선에 개입을 최소화하여 작품을 멀리서, 그리고 가까이서 자유롭게 감상하며 각각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했다. 독특한 표면이 각도에 따라 다르게 반사되어 무형의 빛을 새로이 지각하는 경험을 선사하는 메리 코스의 <무제(내면의 흰색 띠들) Untitled(White Multiple Inner Band)>, 흑백의 실크스크린으로 전시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아담 펜들턴의 <나의 구성요소들(These Elements of Me)> 등 국제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회화, 설치, 조각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아름다움과 그로테스크함을 동시에 지닌 모습으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피타 코인의 작품은 왁스에 담근 조화와 나뭇가지를 겹겹이 쌓아 올리는 노동집약적인 방식으로 제작한 것이다. 기쁨과 공포, 질서와 혼돈, 빛과 어둠, 부패와 재생 등 상반되는 가치들을 동시에 담아냈다. 작가는 주로 자신의 겪은 개인적 사건, 문학, 영화, 정치적 이슈에서 작품의 주제를 찾는데, <무제 #1243(단어의 비밀스러운 삶)>는 '용서받지 못한' 시리즈 중 하나로, 1992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서부극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됐다.


  Ⓒ 아이엑스디자인 - APMA, CHAPTER THREE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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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7전시실은 지난 1월 작고한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김창열 화백을 기리는 특별한 공간이다. 전시된 작품은 그의 철학이 응집된 <회귀(Recurrence)> 연작에 속한다. 1992년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할아버지에게 서예를, 외삼촌에게 데생을 배우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 해방 후 성북회화연구소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공부하고, 현대미술가협회 창립회원으로 1950년대 후반 한국의 앵포르멜 미술운동을 이끌었다. 1972년 파리 '살롱 드 메' 전시에서 물방울 그림을 첫 선보이며 호평을 받았고, 평생 물방울 작품에 몰두했다. 그는 생전 분노와 불안, 공포 등 모든 것을 투명한 물방울에 용해시켜 '허(虛)'로 돌릴 때 평안과 평화를 얻을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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