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엑스디자인 - 김정기, 디아더사이드 展
여러분은 자신이 처음으로 그린 그림을 기억하는가? 에디터는 생애 최초의 그림은 아니지만, 초등학생 때 그린 한 장의 그림을 보관하고 있다. 동그라미와 네모로 이루어진 정체불명의 사람과 하늘을 날아다니고 바닷속을 달리는 자동차, 색연필과 크레파스로 형형색색 칠해진 화려한 그림은 어느 누가 봐도 어린아이가 그린 작품이었다. 나름의 미래도시로 추측되는 그림의 전후 사정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완성한 그림을 가져와 부모님께 당당히 보여 주며 칭찬을 받았던 행복한 추억은 남아있다.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안타깝게도 그림 실력은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자신이 상상한 대로, 머릿속의 이미지를 눈앞에서 그대로 구현할 수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런 마법 같은 일을 실제로 가능케 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김정기 작가다. 그는 펜 하나만으로 드넓게 펼쳐진 새하얀 종이를 거침없이 채워나간다. 섬세하게 움직이는 손끝을 따라 새롭게 탄생하는 또 다른 세상은 매번 감탄이 절로 나오게 한다. 김정기는 기억 속 이미지를 완벽한 테크닉과 탄탄한 서사 구조로 구현하는 '라이브드로잉' 장르를 탄생시킨 세계적인 아티스트다. 그는 유년 시절 아버지가 사주신 스케치북 표지에 매료되어 만화가를 꿈꿨다. 좋아하는 만화를 따라 그리거나 가지고 싶은 물건을 유심히 관찰하고, 자신의 손으로 형상화하기를 반복하며 대상의 특징을 완벽하게 습득했다. 그는 남다른 시각적 기억 능력과 호기심을 바탕으로 주변을 머릿속에 담으며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2001년 KTF 간행물『Na』와 2002년 영점프에서《퍼니퍼니》를 연재하며 예술계에 입문했고, 네이버에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웹툰《TLT(Tiger the Long Tall)》를 선보이며 뛰어난 그림 실력과 스토리 작가 박성진의 탄탄한 이야기 전개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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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brary 기억의 라이브러리 김정기의 상상의 원천은 드로잉에있다. 유년 시절부터 그가 관심 있는 것, 가지고 싶은 물건들을 반복적으로 그리며 대상을 연상하는 연습을 거쳤고, 이를 통해 완벽한 테크닉을 구사하게 되었다. 1990년 초기 작품에서는 하나의 대상이나 인물의 모습을 여러 각도로 묘사하는 드로잉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유머러스한 표정이나 과장된 몸짓, 데포르메, 컷으로 분할된 만화적 기법은 작가가 어린시절 즐겨보던 만화《드래곤볼》,《애플 시드》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후 테라다 카츠야, 오세영의 생동감 있으면서도 현실적으로 묘사된 작품으로 인해 만화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고, 이는 작품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2001년에는 만화가로 정식 입문했으며, 네이버에서 웹툰《TLT》를 연재했다. 《TLT》는 긴 꼬리 호랑이 태호의 세계정복 일대기를 그리고 있는 작품으로, 동물을 의인화한 등장인물을 통해 비즈니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동물과 인간, 사물이 혼재하는 독특한 표현방식과 개성 있는 유머 코드는 김정기만의 독자적인 장르를 완성하는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2009년 이후에는 도시의 일상적인 모습이나 여행의 모습이 스케치북에 재구성되었다. 관찰자의 시각으로 그려낸 세계 여러 도시 풍경과 다양한 사건이 교차한 장면을 기억에 의존해 즉흥적으로 그려냈다. 이때부터 흥미로운 대상에 대한 드로잉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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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ginning of a Grand Epic 대서사의 서막 2011년 부천국제만화축제에 참여한 김정기는 완성된 작품이 아닌 현장에서 작업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부스 전면에 대형 도화지를 붙이고 평소와 다름없이 드로잉을 선보였다. 관람객들은 그 광경에 압도되어 바라보거나 가까이 다가가 질문을 건넸고, 그는 스스럼없이 대답하며 작업을 이어갔다. 유튜브를 통해 이러한 과정이 공개되었고 전 세계 아티스트들은 영상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오직 작가 자신의 기억과 직관만으로 이루어진 드로잉은 밑그림이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치밀한 묘사를 자랑했다. 당시 제작된 <우리는 어디론가 가고 있다>는 김정기를 만화가에서 새로운 영역으로 다가가게 했고, 현대미술에서 그의 드로잉 퍼포먼스는 '과정'의 예술로서 만화와 시각예술의 경계를 아우르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다. 김정기는 이번 전시에서 또 한 번 관객들과의 소통에 도전한다. 10m 길이의 종이를 두고 펜 하나로 작업하는 퍼포먼스를 전시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번 라이브드로잉은 작가가 2015년 '개인이 그린 가장 긴 그림'이었던 9m를 넘는 작업으로, 그 의미가 더 크다. 관람객들은 전시 기간 동안 일정에 맞춰 방문하면 작업 과정을 직접 관람하며 작가와 소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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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Journey 여행 김정기는 어린 시절부터 관심 있는 대상들을 머릿속으로 연상하며 반복적으로 그리는 연습을 거듭했다. 펜 하나만 있으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었던 그는 여행을 통해 좀 더 넓은 세상을 마주하게 됐다. 사진이나 영상으로만 접하던 것을 실제로 경험하면서 소재의 스펙트럼이 확장됐고, 표현방식도 많이 바뀌게 되었다. 여행으로 인해 기억의 자료가 더욱 풍부해진 것이다. 작가는 이탈리아, 뉴욕, 말레이시아 등 여러 나라를 여행했으며, 김정기 미술관 건립을 위해 두 달간 페낭에 머무르며 현지 생활을 스케치북에 담아냈다. 3인칭 시점으로 그려진 작품은 이국땅의 모습과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김정기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표현된 명소와 도시들은 마치 영상을 보는 것처럼 사실적이면서도 생생한 화면 구도로 그려져, 보는 이들은 작품을 감상하며 자신들 역시 여행지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여행 드로잉의 작업은 상상의 원동력이자 서사의 출발점이 된다.
Ⓒ 아이엑스디자인 - 김정기, 디아더사이드 展
Collaboration 콜라보레이션 드로잉 퍼포먼스를 통해 거침없이 펼쳐지는 김정기의 무한한 예술 세계는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라이브드로잉으로 현대미술의 영역을 넓힌 김정기는 광고, 미디어,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비롯해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 삽화, 마블과 DC, 넷플릭스, 블리자드, 다큐멘터리, 잡지, 엔터테인먼트 등 영역을 넘나드는 다채로운 협업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 아이엑스디자인 - 김정기, 디아더사이드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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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unggius> 김정기 아트 스튜디오 전시의 마지막 공간인 <@Kimjunggius>는 작가의 창작 환경을 그대로 옮겨왔다. 이 공간은 창작에 대한 그의 열의와 함께 시대의 새로운 예술을 보다 밀접하게 체험할 기회를 선사한다. 지금까지 협업한 아트 패키지 작품과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스케이트보드, 컨버스 운동화, 소품이 전시되어 있어 우리의 삶으로 확장된 예술의 모습과 무한한 가능성을 만나볼 수 있다. 관람객은 자연스럽게 작가의 공간을 경험하면서 지금 이곳에서 탄생하는 오늘의 예술을 대면하고, 일상의 다양한 면면을 흥미롭게 변화시키며 끊임없이 창조하는 작가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김정기의 드로잉은 현실과 상상을 넘나들며 새로운 내러티브를 창조했다. 세상의 모든 만물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록하고, 이를 발췌해 새하얀 도화지에 새롭게 만들어내는 모습은 마치 창조주로서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의 손이 구현할 수 있는 예술적 능력의 극치를 보여주는 그는 드로잉의 묘미와 흥미로우면서도 다양한 현대미술의 변주를 선사했다. 모든 것을 그려내고 싶다는 창작의 욕구와 사물의 이면을 향한 끝없는 호기심을 바탕으로 탄생한 김정기의 '디아더사이드'는 앞으로도 우리를 새로운 세상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 움직이는 펜의 방향에 따라 흥미롭게 전개되는,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들려줄 수많은 그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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