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쁘거나 만족스럽거나 우스울 때 얼굴을 활짝 펴거나 소리를 내다. 2. 얼굴에 환한 표정을 짓거나 소리를 내어 어떤 종류의 웃음을 나타내다. 3. 같잖게 여기어 경멸하다. ‘웃다’라는 단어를 검색했을 때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정의하는 뜻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웃음에서 단순히 기쁨과 행복만을 발견하진 않을 것이다. 웃음에는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힌 수많은 감정이 담겨 있고 그 속에 가려진 진실을 외면하기도, 또는 똑바로 마주해 서로를 위로하기도 한다. 유에민쥔이 그려내는 ‘웃음’ 역시 국어사전에서 정의하는 ‘웃음’과는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최대한 입을 크게 벌려 폭소를 터트리는 붉은 얼굴의 모습에서 유쾌한 웃음 소리가 들리기보다 공허하면서도 처량한 울음을 발견하게 된다.
유에민쥔은 1962년 헤이룽장 성 다칭시에서 허베이 사범대학 회화과를 졸업했다. 교사로 근무했지만, 천안문 사태에 혐오를 느끼고 1990년부터 화가로 등단해 현재까지 활발한 작업 활동을 선보이고 있다. 유에민쥔은 중국 현대미술의 4대 천왕(장샤오강, 왕광이, 유에민쥔, 팡리쥔)중 한 명으로 차이나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작가다. 냉소적 사실주의와 정치적 팝으로 대변되는 차이나 아방가르드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충돌과 공존으로 대변되는 20세기의 상처와 영광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인류가 지난 세기에 실험한 모든 이데올로기와 사회 구성체에 대한 반성과 비판은 유에민쥔 작품의 핵심이 된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웃음 유에민쥔의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하나같이 해맑게 웃고 있다. 이는 중국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고스란히 경험한 작가가 거대한 권력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기력하고 무능한 세대들에게 보내는 자조적이고 냉소적인 비웃음이다. 유에민쥔은 차이나 아방가르드 안에서도 냉소적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 중국 문화혁명기의 ‘홍색회화’에서 묘사된 인민들의 희망차고 결의에 찬 모습과는 반대로 그가 그려내는 인물은 모두 바보나 얼간이처럼 어딘가 묘한 위화감이 느껴진다.
한 시대를 웃다 유에민쥔은 제도의 위선과 사회의 비인간화를 고발한다. 1989년 이후 급속하게 퍼진 세계화의 물결은 중국 역시 피해갈 수 없었다. 사회주의라는 정치적 이상과 사유재산에 대한 욕망이 충돌하고 공존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유에민쥔의 냉소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동일한 존재의 무수한 자기 복제와 기이하게 웃고 있는 모습은 그의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때로는 한 점의 그림이 백 권의 책보다 강렬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며 우리에게 깨달음을 요구한다.
死의 찬미 - 죽음을 기억하고, 삶을 사랑하라! 삶과 죽음은 절대 떨어질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존재다. 태어난 순간부터 본다면 지금이 가장 늙었지만, 죽음으로부터 돌아본다면 이 순간이 가장 청춘일 것이다. 그러니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행복을 포기하지 말고, 살아있는 지금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사회의 규칙이나 억압에서 벗어나 삶의 주체로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 너무 커다란 괴로움이 당신을 덮쳤을 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는 순간이 온다면, 유에민쥔의 해골을 마주해보자. 해골의 기이한 웃음이 당신을 위로해줄지 모른다.
일소개춘 一笑皆春 - 한 번 크게 웃으니 온 세상이 봄이다! ‘일소개춘’은 중국 대리(大理)에 있는 감통사(感通寺)의 고승 단당대사(担当大師)의 선문답이다. 4천 미터가 넘는 웅장한 산맥과 샹그릴라를 품고 있는 이곳은 유에민쥔의 겨울 작업실이 자리한 곳이기도 하다. 샹그릴라는 티베트어로 ‘마음 속의 해와 달’이라는 뜻이다. 꿈과 환상이 가득한, 대자연이 살아 숨 쉬는 영원한 지상낙원을 그는 간절히 염원하고 있다. 유에민쥔이 평생에 걸쳐 도달하고자 한 곳은 다름 아닌 그의 작업실이 있는 곳, 봄 햇살에 꽃들이 만개하는 샹그릴라다. 그가 이번 전시의 타이틀을 ‘일소개춘’으로 하고 싶어 했던 이유 역시 팬데믹의 아픔과 혼돈마저 포용할 수 있는 이상향을 꿈꿨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SPECIAL ZONE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손을 통해 유에민쥔의 작품이 새롭게 태어났다. 유에민쥔의 이미지가 도예가 최지만의 흙과 불, 1,200도가 넘는 가마 속에서 도자기 조각으로 재탄생했다. 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도공과 화공의 깊은 공명을 관객들도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다. 도자기 작품 외에도 판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무수히 반복되는 유에민쥔의 작품과 복제가 가능한 판화의 매체적 성격은 쌍둥이처럼 똑 닮은 미학적 태도를 보여준다. 정통 수작업을 고집해온 판화공방 P.K STUDIO와의 협업으로 제작된 오리지널 판화는 원작에 버금가는 특별한 가치를 담고 있다.
우리는 언제 웃을까? 행복하고 기쁜 일이 있다면 당연히 소리 내어 웃거나 혹은 기쁨의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부터 행복해서 웃기보다 그냥 습관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커다란 일을 마주했을 때, 초연해지고 싶을 때, 감정을 숨기고 드러내고 싶지 않을 때 웃는 일이 더 많아진 것 같다. “그냥 웃어 넘기자”, “웃고 털어버리자” 스스로 다짐하듯 주문을 외운다. 웃을 일이 점점 줄어드는 고달픈 세상이다. 억지로 쥐어짜서 웃을 필요는 없겠지만 기쁜 일에는 자연스레 웃을 줄 알고, 좋지 않은 일이 있더라도 웃으며 극복할 줄 아는, 여유롭고 성숙한 자신이 되기를 다시 한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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