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개’ 캐릭터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짱구는 못말려] 속 귀여운 흰둥이? [검정 고무신] 속의 땡구? 누군가는 [리그 오브 레전드] 속의 나서스나 [플란다스의 개] 속 파트라슈를 떠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스누피를 빼놓고 ‘개 캐릭터’를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스누피는 알아도 [피너츠]는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일지도 모르겠다. [피너츠(Peanuts)]는 찰스 M. 슐츠가 1950년부터 2000년까지 신문에 연재한 네칸 만화로, 무려 75개국 2,600개 매체에 연재되었다.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태어난 찰스 슐츠는 어린 시절부터 만화가가 되길 원했다. [타임리스 토픽스 Timeless Topix]에서 만화 레터링 작업을 시작한 찰스 슐츠는 모교인 Art Instruction Schools에서 강의를 하며 [피너츠]의 모델이 되는 Charlie Brown과 Linus Maurer 등을 만나게 된다.
[피너츠]는 찰리 브라운과 루시 반 벨트 등 어린 아이와 찰리의 반려견인 비글, 스누피의 일상으로 채워진다. 따뜻하고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은 독자들에게 묘한 울림을 준다. 찰리 브라운은 평범한 이들의 상징이다. 매번 실패를 거듭하지만 결코 좌절하는 법이 없다. 스누피는 찰리의 반려견이지만 의사, 변호사, 전투기 조종사로 변신해 많은 일을 해결하는, 평범한 이들의 판타지에 맞닿아 있는 캐릭터다. 서로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이들은 부딪히고, 서로를 감싸 안는다. 독자들이 [피너츠]에서 따뜻함을 느끼는 이유다.
Special Exhibition of Charles M. Schulz Museum
롯데뮤지엄이 기획한 이번 전시는 달착륙 50주년을 기념해 1969년 찰리 브라운과 스누피의 달 탐사라는 역사적 사건을 되새기기 위해 개최되었다. NASA는 달 표면에 발을 내딛는 역사적 순간을 맞이하기 전 최종 리허설로 아폴로 10호를 먼저 쏘아 올린다. 토머스 스태포드, 존 영, 유진 서난은 그들이 타고 갈 아폴로 10호의 콜 사인을 정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이에 토머스 스태포드는 달 곳곳을 탐사(snoop around)하고 연구하기 위한 임무에 어울리는 콜 사인으로 ‘스누피’를 선택했다. 사령선의 이름은 유진 서난이 존 영에게 붙여줬던 별명인 ‘찰리 브라운’이 되었다. 작가는 훗날 그의 캐릭터들에게 일어난 가장 특별한 사건으로 바로 이 아폴로 프로젝트를 꼽는다.
뿐만 아니라 스누피는 나사의 세이프티 마스코트이기도 했다. 1967년 우주비행사 3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폴로 1호의 비극적 화재는 직원들의 사기에 큰 타격이었다. 나사는 이후 안전 의식을 높이고 책임감을 키우기 위한 안전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 중, 나사 유인 우주 센터 공보실 부실장 앨버트 찹(Albert M. Chop)은 나사의 세이프티 마스코트로 스누피를 제안한다.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캐릭터인 스누피를 채택한다면, 사람들이 우주 계획에 더 친근감을 느끼고, 보다 신중하게 작업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결과 1968년 3월 우주비행사 스누피 프로그램이 공식 채택되게 된다.
Contemporary Art and Snoopy
어둡고 신비로운 우주 공간을 헤쳐나간 뒤, 스누피와 현대미술의 만남을 감상할 수 있게 된다. 홍경택, 이동기, 강강훈, 옥승철, 노상호 등 다양한 작가들의 참여로 스누피는 새롭게 다시 태어났다. 극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의 영역을 넘나드는 회화의 변주 속에서 재탄생한 스누피에게는 어떠한 틀도 주어지지 않는다. 스티키몬스터랩이 작업한 조형물을 지나가면 국내 현대 미술가들이 대거 참여한 공간을 만나게 된다. 노상호 작가가 유화와 수채화 물감으로 제작한 두 작품은 여러 이미지를 조합, 한데 섞은 새로운 상상력을 보인다. 권오상 작가는 사진과 조각이라는 서로 다른 매체를 혼합해 작품세계를 펼쳐왔다. 작가는 아들이 다니는 어린이 집에서 보내준 사진을 바탕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찰리 브라운과 함께 모인 어린이들의 모습은 우리를 동심 속으로 데려다 놓는다.
다음 공간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홍승혜 작가의 작품이다. 스크린 속, 픽토그램으로 단순화된 스누피가 움직이고, 그 앞에선 사각형 픽셀로 제작된 스누피 피규어가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홍경택 작가의 작업도 눈여겨볼만하다. David Bowie의 Space Oddity의 한 소절을 인용한 는 화려한 색감과 기하학적 패턴 안에 캐릭터를 배치, 우주의 모습을 생동감 넘치게 담아냈다. 이동기 작가의 도 흥미로운데, 이 작품에는 다양한 이미지가 중첩되어 있다. 김홍도의 <씨름>에 등장하는 춤추는 소년부터 오륜기,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인 아토마우스 등 다양한 이미지가 만나 인류 역사의 크고 작은 흐름을 보여주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박승모 작가는 인물, 오브제를 알루미늄 와이어로 감싸 새롭게 탄생시킨다. 와이어로 만들어진 스누피의 형상은 스누피가 무중력 상태의 달 위를 걸어가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같은 공간에서는 그라플렉스(Grafflex)의 작업을 만나볼 수 있다. 애니메이션에서 차용한 캐릭터, 단순한 도형을 굵은 선으로 그려 심플하며 유쾌한 이미지를 창조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그라플렉스 신동진 작가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스누피를 재해석한 4연작을 그려냈다.
Snoopy Art Figures
롯데뮤지엄은 새로운 예술적 에너지를 통해 급성장하고 있는 아트 토이 영역을 함께 돌아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플라스틱 대체 소재인 에버모인 ABS로 만든 피규어들은 각 작가들의 손을 통해 재탄생했다. 필독, 하연수, LOEY(찬열), ph-1, 노상호, 홍승혜, 서사무엘, 신모래, 김재경 등 다양한 아티스트가 참여했다. 롯데뮤지엄은 월드비전과 함께 이 피규어들로 자선 이벤트를 진행한다. 티켓박스에 비치된 응모권에 희망 입찰가를 기재하면 최고가를 응모한 관객이 이를 입찰 받을 수 있다. 수익금은 월드비전을 통해 기부된다.
Street Art and Snoopy
스누피와 거리 미술이 만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바로 지난 달 컬쳐 주제로 다뤘던 ‘그래피티’ 처럼 말이다. 정크하우스(Junkhouse)는 집을 주제로 작업을 진행하는 작가다. 그가 만든 빨간색 스누피 하우스를 지나가면 스누피를 주제로 한 거리미술이 펼쳐진다. 역동적인 형태와 화려한 색채로 꾸민 제이 플로우(Jay Flow) 작품 속 [피너츠] 캐릭터들의 우주비행은 익살스럽기까지 하다. 작가는 무중력 상태의 달 위에서 꿈을 꾸듯 자유롭게 유영하는 스누피와 우주인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어 보이는 것은 매드빅터(Madvictor)의 작품이다. 익살스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을 우주적인 이미지로 새롭게 해석해 보여준다. 스누피와 찰리 브라운 등 캐릭터는 특징이 지워지고, 새로운 색채로 분할돼 벽면을 구성한다. 색면들과 형상들이 새롭게 조화되며 미지의 우주공간, 혹은 그 너머를 여행하는 피너츠 캐릭터들이 완성된다.
Peanuts Global Artist Collective
찰스 슐츠 작가와 그 캐릭터들에 영향을 받은 세계적인 현대 미술가들은 피너츠 글로벌 아티스트 콜렉티브(Peanuts Global Artist Collective)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그 중 케니 샤프(Kenny Scharf)와 앙드레 사라이바(Andréé Saraiva)가 참여했다. 피너츠를 읽으며 성장한 케니 샤프는 문화, 지리적인 장벽 없이 모든 사람을 연결하는 가치와 감정이 담겨 있음을 발견하고, 피너츠의 캐릭터들을 3차원적으로 재해석해냈다. 앙드레 사라이바는 간결한 선으로 특유의 유머러스한 화면을 만들어냈고, 이는 피너츠 캐릭터에 자연스레 녹아 들었다. 환상적인 색채와 이야기로 재탄생한 피너츠의 인물들은 인류의 동심과 사랑, 우정을 대면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었다.
Snoopy Runway
이번 전시의 마지막 공간은 놀랍고도 특별하다. 이전에 만나지 못한 패션과 의상의 캐릭터가 런웨이 속 모델이 되어 포즈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창적인 감성에 세계적인 흐름이 접목된 스누피 인형들은 각기 창조적인 에너지를 뽐낸다. 50센티미터 크기의 옷들은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이다. 달착륙 50주년을 맞아 진행되는 전시인만큼, 디자이너와 브랜드의 면면 역시 만만치 않다. 레트로퓨처리즘(Retro-Futurism)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한 김진영, 이수연 디자이너(DEWEDEWE), 비 오는 날 아침의 감성을 풀어낸 박형준 디자이너(JD SCENTOLOGY), PVC와 코튼 소재를 사용해 만든 우주복을 뽐내는 서형인 디자이너(MAMACOMMA), 런던 패션 위크에서 선보인 2020 SS 컬렉션을 새롭게 제작한 윤춘호 디자이너(YCH)를 비롯해 총 12개 브랜드, 디자이너가 작품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앞서 소개한 작품들을 제외하고도, 신모래, 사일로 랩(Silo Lab), MLH 등 다양한 미디어 아티스트들의 작품도 전시 공간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찰스 M. 슐츠 작가는 ‘행복은 포근한 강아지’라고 이야기했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전시장 곳곳을 둘러보며 스누피와 찰리 브라운과 함께 행복에 빠지게 될 것이다. 현대미술과 패션으로 풀어낸 롯데뮤지엄의 이번 전시 속에서, 예술의 무한한 창조력과 따뜻한 감동을 경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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