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날수록 평범함 속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가치-Super Normal-을 담는 집을 짓다. 디자이너가 집을 설계를 했다고 하면 대부분 무언가 ‘특별함’을 기대할 것이다. 디자이너가 자신의 예술적 감성을 보여주기 위한 특별하거나 대단한 무언가를 디자인한다면 결국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주거공간이란 시간이 지날수록 그곳에 사는 한 가족의 일상의 기억이 오롯이 남아야 하는 공간이다. 그렇게 시간이 쌓이는 만큼 가족의 역사가 쌓이고 그것이 한가족의 격이고 품위가 되어야 한다. 그런 평범하지만 특별한 가치가 쌓여야 하는 공간에는 세상의 물질적 가치는 의미가 없는 것이기에 디자이너가 뭔가 ‘특별함’을 보여주는 것은 덧없는 속물적 행위일 수 있다. 판교에 위치한 CASA911은 한 가족의 평범함의 특별한 가치를 만들 수 있는 절제된 미학과 생활방식을 담고자 했다. 안팎으로 ‘화려하거나’ 혹은 ‘시선을 사로잡을’ 만한 아름다움을 디자인한 공간이라기보다는 평범하고 편안해 보이는 일상적인 기억이 남을 공간을 만들려는 노력을 했다. 주거공간을 디자인한다는 것이 특별한 아름다움을 만드는 게 아니라 한가족의 생활을 편안하게 만드는 작업이며 그 가족의 화목한 시간이 쌓아 갈 수 있는 공간을 빗는 다소 밋밋하고 평범해 보이지만 진정한 가치를 디자인하는 슈퍼노말의 디자인이고 싶다. 그래서 건축의 외관디자인에서 내부 인테리어디자인까지 모든 디자인 작업을 진행하면서 평범하고 편안한 디자인-Super Normal-을 구현하려고 노력했다. 새로 신축되는 주택이지만 예전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 같은 튀지 않는 익숙함을 느끼게 하고 싶었고 새로 이사하는 집이 아닌 늘 살던 집 같은 오래된 친숙함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주택에 적용된 디자인들은 설계에서부터 마감자재, 가구 등 모든 것들을 최대한 장식을 배제하고 자체의 형태와 물성만을 중요시하려고 했다. 주택의 외관과 내부 모두 절제된 미학을 택하다 보니 직선과 사각의 면으로 된 아주 미니멀한 공간이 구성되었지만 랜덤한 방향으로 구성된 바닥재를 통해 사선을 이용한 역동성을 주어 단순하지만 무언가 묘한 매력을 만들어 내려고 했다.
 






Q. 까사911의 건축부터 인테리어까지 전 과정에 걸쳐 참여했다고 알고 있다. 처음 기획단계에서 의도했던 구상은 어떤 것이었나?

A. 처음 제가 의도했던 구상이라기보다는 아무래도 클라이언트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 지점에서 시작했다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보통 클라이언트께서 원하는 부분이 있고 제가 실현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니까 그런 접점을 찾고 그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게 디자이너가 하는 일이잖아요. 이번 클라이언트께서는 세대가 편안히 살 수 있는 주거공간을 원하셨고 제가 한 일은 그에 대한 고민을 어쩌면 대신 또 어쩌면 함께 한 거죠. 먼저, 어떤 생활이 편안한 생활인가? 라는 물음에서 그럼 편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까지 함께 고민하고 그 고민의 답을 건축적으로 또 구조적으로 만들었죠.





Q. 클라이언트와 함께 고민하고 답을 찾는 과정에서 얻은 답은 그럼 무엇이었나?

A. 까사911에서는, 일단, 가족이 사는 곳이잖아요. 가족 간에는 소통이 중요하잖아요. 또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이니까 당연히 기능적으로도 불편함이 없어야 하고요. 그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가족 간의 소통을 위해 공간과 공간을 구획하면서 열림과 닫힘이 가변적으로, 플렉서블하게 이루어질 수 있게 했죠. 또 소통이라는 게 항상 얼굴을 마주한다고 되는 건 또 아니잖아요. 독립적인 공간이 필요할 때에는 또 그럴 수 있도록 독립성도 최대한 보장했어요. 그래서 공간과 공간이 열려있기도 하고 닫혀있기도 한 가변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했어요. 층과 층의 디자인을 일관적이면서도 각자 개성 있게 연출한 것도 그런 부분이죠. 실제 사용하는 사람에 맞춘 독립적인 공간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가정, 한가족이라는, 그런 소통을 위한 열린 공간을 만들고자 했어요. 편안함뿐만 아니라 편리함을 위해서도 공간을 기획했고요. 편안함과 편리함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잖아요. 감성적으로 풀어야 하는 부분이 있고, 기능적으로 풀어야 하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그런 모든 부분을 고려해서 클라이언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서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했죠.





Q. 균형을 잡는 게 디자인이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디자인에 대한 평소의 철학인가?

A. 정확하게 한마디로 그게 내 철학이다, 이렇게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비슷해요. 일단은, 저는 디자이너가 예술을 하는 사람, 그러니까 무슨 조물주처럼 공간을 창조하고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고요. 디자이너는 균형을 잡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 균형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는 디자이너마다 각자 다른 고민이겠지만 저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그렇고 항상 기본을 강조해요. 기본에 충실하게, 정직하게, 지속 가능하게,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균형점이 보이더라고요. 까사911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부분, 실제 클라이언트의 라이프스타일, 공간에 담겨야 할 가치와 의미, 지역적인 조건, 법규와 제약조건들 사이에서 잡은 균형이 바로 까사911인 거죠. 또, 물론 눈으로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는 어떤 아름다움과 실제 생활에서의 기능성 사이에서도 균형점이 있죠. 그런 걸 저는 합리성이라고 말해요. 균형과 합리성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죠. 뭐랄까, 합리적인 균형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너무 보여주기식의 디자인은 좋아하지 않아요.





Q. 포트폴리오를 보면 굉장히 다양한 디자인을 해왔다. 다채로운 종류의 디자인을 추구하는 건가?

A. 어떤 분들은 그러세요. 왜 이렇게 디자인마다 다 다르냐고, 개성이 없는 건 아니냐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또 어떤 분들은, 좋게 봐주시는 분들은, 팔색조라고, 그렇게 말해주시는 분들도 계세요. 그런데 실은 제가 다양한 디자인을 했다기보다는 다양한 클라이언트를 만났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인 것 같아요. 말씀드렸듯이 저는 디자이너가 예술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균형을 잡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클라이언트의 취향에 맞게, 클라이언트의 생활방식에 맞게 디자인을 하다 보니까 다양한 작품이 나온 것 같아요. 사용자의 삶의 방향성과 진정성을 표현하는 것이 주거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하는 일은 클라이언트의 그런 부분을 실현시켜주는 거죠. 제멋에 빠져서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무작정 예쁘게만 하는 그런 게 아니고 클라이언트의 삶을 공간으로 실현시켜주는 것 그런 게 제가 추구하는 방향성이라고 할 수 있죠. 그렇다고 또 제 개성이 아예 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니에요. 제가 일관되게 디자이너로서 고집하는 것은, 좋은 자재를 좋은 곳에 제대로 쓰는 거에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비싼 것이 전부가 아니잖아요. 진짜 의미와 진짜 가치가 있는 품격있는 디자인을 하고 싶어요.





Q. 까사911을 마무리하면서 아쉬운 점은 없었나?

A. 까사911은 그래요, 단독주택이잖아요. 아파트면 아파트, 주택이면 주택, 공간마다 지나온 이야기와 미래의 스토리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특히 단독주택 같은 경우는 보통 한 집에 오랜 시간 거주하는 분들이 많잖아요. 그런 점에서 까사911은, 물론 다른 주택들도 마찬가지이지만, 흔들림 없는 집, 보이는 집이 아닌 사는 집, 가치와 품위를 가진 공간이길 바랐어요. 집과 주인이 함께 나이 먹으면서 서로 든든할 수 있도록, 현상이 아닌 가치와 의미의 일관성을 가진 공간이길 바랐는데, 아직 잘 모르겠어요. 이제는 개발되고 없어졌지만 제가 기억하는 제 고향 집은 그랬던 것 같아요. 집이 나와 함께 자라고 나와 함께 나이 먹고 그런 느낌이 있었는데, 제 작품에 클라이언트들께서 그렇게 느껴주실지 잘 모르겠어요. 아마 좀 더 오랜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겠죠 그런 건. 반쯤 기대되고 반쯤 걱정되고 그래요 그런 부분이,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분들과 집이 함께 나이가 들면, 알 수 있겠죠.











기사 노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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