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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브릭

Casamania Lofoten ⓒ Nichetto Studio 패브릭은 면, 마, 견, 합성섬유 등 섬유 소재로 짜서 만든 모든 직물을 뜻한다. 실내에 쓰이는 가구, 커튼, 소파, 카펫 등의 제품에 쓰이며, 온화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크게 자연 섬유와 합성 섬유로 나뉘며, 자연 섬유로는 식물성 소재인 면, 마와 동물성 소재인 실크, 모직이 있다. 합성섬유로는 나일론과 폴리에스터, 아크릴이 있다. Aiayu ⓒ Jaime blanc 우리의 공간에서 가장 아늑한 곳은 어디일까요? 아무래도 침실이나, 소파가 있는 거실이 보다 많은 사랑을 받는 것 같습니다. 추운 겨울에 두꺼운 담요를 덮고 영화를 보던 기억, 해가 짧아 푸르른 아침에 침대 속에서 꼼지락거리던 기억은 나를 살아가게끔 만드는 시간입니다. 잠이 오지 않는 날엔 사랑하는 당신의 이불에 잠겨 밤새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요. 어쩐지 겨울은 가장 추운 계절이지만, 제일 아늑할 때이기도 합니다. Nya Nordiska Core Classics ⓒ You&Us 패브릭은 공간을 부드럽게 만들어줍니다. 제아무리 무뚝뚝한 오브제라도 패브릭을 씌우면 따뜻함이 흐르게 되지요. 패브릭이 우리 삶 속에서 사람과 가장 가까이 맞닿는 오브제이기 때문일 거라 생각합니다. 패브릭은 침구류, 소파, 카펫 등 다양한 컬러와 디자인으로 소비자의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합리적인 가격으로 손쉽게 교체할 수 있지요. 공간에 변화를 주고 싶을 때 내게 맞는 분위기를 효율적으로 연출할 수 있습니다. ⓒ3720 Hi Cushion Wool Flax 1 패브릭의 역사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사실 인류가 언제부터 패브릭을 만들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거미가 거미줄을 치는 것을 보거나 새가 둥지를 트는 것을 보며, 물건을 이동시킬 때 식물로 꼬아 만든 바구니를 사용했다는 이야기만 존재할 뿐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신석기 시대에 본격적으로 직물이 제직되었다고 해요. Nya Nordiska Core Classics ⓒ You&Us-1 섬유로 이용된 최초의 식물은 플랙스(Flax), 아마입니다. 다년생 아마는 선사 시대 구대륙의 여러 곳에 서식하고 있었으며, 스위스 호반 거주자들은 기원전 8,000년경에 이미 이를 사용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는 메소포타미아, 바빌로니아에서도 재배되었지만, 그중 이집트는 ‘린넨의 나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마 섬유는 견고한 것이 특징으로, 물이 닿을 때 더욱 단단해 대부분 물에 적셔 방적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습기를 잘 흡수하며, 이를 잘 발산하지요. 그 덕에 여름에 자주 쓰이는 직물입니다. Aiayu ⓒ Jaime blanc 마와 더불어 자연 섬유의 우열을 다투는 목화는 아마만큼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고고학적 연구에 의하면, 목화는 기원전 3,500년경 인도에서 직물로써 쓰였다고 합니다. 목화는 인도로부터 서양으로 전해졌습니다. 9세기경 아랍 세력이 커짐에 따라 활기를 되찾았지요. 목화를 가리키는 Cotton도 아랍어 꾸튼(Qutn)에서 유래된 말이지요. 면방직은 원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중세 유럽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어요. 또, 면을 만드는 기술은 최근 기계화가 이루어지기까지 기술 변화가 없었을 정도로 많은 손길을 요구했지요. 그렇지만 몸에 자극이 적으며 흡습성이 좋기 때문에 주로 사람과 직접 닿아있는 옷, 붕대, 침구류에 사용합니다. Nya Nordiska Core Classics ⓒ youandus 기원전 2,700년경, 중국의 공주 시링치는 뽕나무 사이를 거닐다 하얗게 보풀이 인 누에고치 하나를 땄습니다. 공주는 고치를 가지고 놀다가 실수로 찻잔에 떨어트렸어요. 이때 고치로부터 하얀 실이 함께 나왔습니다. 이것이 비단의 시작이에요. 찬란한 결을 가지고 실크 로드를 만들어낸 주인공이지요. 비단은 가볍고 부드러우며, 아름답고 눈부신 천으로 알려져 전 세계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게다가 흡습성이 좋고, 견고하며, 따뜻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고급스러운 직물로 많이 사용되고 있어요. ⓒ6010 Circus Pouf Small Large Velour 이렇듯 사람과 깊숙이 맞닿아 있는 패브릭에는 합성 섬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합성섬유는 석유나 석탄을 원료로 만들어진 것으로, 자연 섬유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견고함을 자랑합니다. 합성 섬유에서 가장 잘 알려진 나일론은 구김이 없고 부드럽습니다. 가볍고 잘 늘어나기 때문에 큰 인기를 끌었지요. 여기에 착용감을 보완한 섬유가 바로 폴리에스터입니다. 마찬가지로 구김이 없으며, 쉽게 변성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지요. 마지막으로 아크릴입니다. 울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아크릴은 주로 다른 섬유와 혼방해 사용됩니다. 보온성과 탄력성이 좋아 니트류에 적합하지요. 김리오 기자

플라스틱

Purho Tabletop ⓒ Karim Rashid 플라스틱은 가열과 가압, 또는 이 두 가지에 의해 성형이 가능한 재료 혹은 이런 재료를 사용한 수지제품을 뜻한다. 최종적인 고형이며 분자량이 많은 것을 플라스틱이라고 하지만, 거기에 이르는 제조공정의 어떤 단계에서 유동성을 가지며, 이때 성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조물주가 세상을 만들 때 유일하게 잊은 물질이라 불리는 플라스틱을 소개한다. Geo Acc Organizing ⓒ Normann Copenhagen 플라스틱은 가볍고 견고합니다. 유리처럼 투명하기도, 어떠한 색도 아름답게 발현되기도 하지요. 뿐만 아니라 합리적인 가격 덕에 우리는 매 순간 플라스틱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장단점에 대해 말이 많지만, 플라스틱의 시대라는 말은 과언이 아닙니다. 1860년대에는 아프리카코끼리의 개체 수가 급격히 감소되었던 때입니다. 당시 당구공의 재료였던 상아를 구하기가 어려워졌지요. 당구공 제조업자들은 상아로 만들어진 당구공을 대체할 만한 물질을 찾기 위해 상금을 내걸었어요. 이때 미국의 존 하이엇이 나이트로셀룰로스를 이용해 단단한 물질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천연수지로 만든 셀룰로이드, 최초의 플라스틱입니다. 그렇다면, 합성수지를 원료로 만든 플라스틱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오늘날 플라스틱은 일반적으로 합성수지를 가리킵니다. 벨기에의 베이클랜트는 1872년 독일의 화학자 폰 바이어가 페놀과 알데히드를 반응시켜 수지를 만들었다는 논문을 찾아냈습니다. 이를 주의 깊게 살피던 베이클랜트는1909년, 포름알데히드와 페놀을 이용해 플라스틱을 만들었습니다. In Use Geo Bunny Kontur Krenit Butterfly Dustpan ⓒ Normann Copenhagen 20세기는 전기사업이 큰 호황을 누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베이클랜트가 만든 플라스틱은 열과 압력으로 성형한 뒤에는 다시 열을 가해도 물러지지 않는 열경화성 수지였습니다. 가격이 합리적이며, 내구성도 뛰어났어요. 또, 전기가 통하지 않는다는 장점 덕에 각종 전자제품에 절연체로써 쓰이게 됐지요. 우리의 삶 속 가장 깊게 자리하는 플라스틱은 폴리에틸렌입니다. 독일의 한스 폰 페치만은 1894년에 디아조메탄을 발견했고, 이를 가열하던 도중 우연히 폴리에틸렌을 발명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페치만은 이 물질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렇게 폴리에틸렌은 잊혀지게 되었어요. Momento Table Lamp ⓒ Normann Copenhagen 폴리에틸렌은 1933년 ICI(영국임페리얼화학공업사)의 연구진들에 의해 새롭게 발견되었습니다. 페치만이 그러했듯이, 실험실에서 실험을 하던 중 우연히 발견한 것이지요. 이들은 수많은 실험 끝에 특허를 출원하여 공업적으로 폴리에틸렌을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플라스틱은 비닐봉지, 음료수병, 건축자재와 절연재 등 우리 생활에 간편하고 실용적인 모습으로 다양하게 녹아있습니다. Queeboo ⓒ Marcel Wanders 20세기 후반으로 들어오며, 고기능성 플라스틱은 더욱 발전했습니다. 전기가 통하는 플라스틱은 광학재료나 유기물질을 이용한 전기발광소자, 접거나 말 수 있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가볍고 투명한 태양전지의 제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 개발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공 피부나 연골 같은 인공장기 역시 플라스틱으로 개발되고 있어 의학 분야에 광범위한 활용이 이루어집니다. Daily Fiction ⓒ Normann Copenhagen Form Armchair ⓒ Normann Copenhagen 플라스틱은 우리 주변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존재하지만, 쓰이는 수만큼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플라스틱은 땅에서 썩지 않기 때문이지요. 분해성 플라스틱은 이를 해결할 방안입니다. 플라스틱이 가진 가볍고 변형이 적다는 장점을 살리고, 분해성 유기물에 의해 흙으로 돌아가는 친환경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연구를 통해 발명되는 다양한 플라스틱은 우리 삶을 더욱 건강하고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역사는 짧지만, 우리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오브제, 플라스틱입니다. 김리오 기자

거울

Lust Mirror ⓒ Normann Copenhagen 거울은 빛의 반사를 이용해 물체의 모양을 비추어 보는 물건이다. 우리가 속한 공간에는 크고 작은 거울이 하나씩 자리하고 있다. 크기만큼 공간을 비추는 커다란 거울부터 전구 바로 옆에서 빛을 밝게 반사하는 작은 거울까지, 시시각각 함께하며 형상을 비추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반짝이게 비추는 오브제, 거울을 소개한다 MO S17 RISING TALENT FRANCE ⓒ CLAIRE LAVABRE 거울 속 나와 눈을 마주친 적이 있으신가요? 상을 또렷하게 비추는 거울은 외형을 관통해 내가 어떠한 사람인지 알려주는 것만 같지요. 거울 속 또 다른 나는 익숙하지만 어쩐지 생경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거울을 통해 타인과 마주한 적은 있으신가요? 거울은 다른 장소에 있는 우리를 같은 공간으로 이끌어줍니다. 시야 밖의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것이에요. 이렇듯 세상을 깊게 비추는 거울은 언제부터 쓰였을까요? 또,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LEDS Clay Dressing Mirror ⓒ Maarten Baas 거울은 기원에 대해 정확히 밝혀진 바가 거의 없으나, 금속기시대 무렵 제작되었을 거라 예상됩니다. 그래서 과거의 거울은 주로 매끄럽게 간 구리나 청동으로 이루어져 있지요. 이집트에서는 고왕국 시대의 한 분묘에서 완전한 모양을 갖춘 거울이 발굴된 바 있습니다. 약간 편평하면서 대개 거울의 면이 원형인 손잡이 거울인데, 손잡이 부분은 금속이나 나무, 상아로 되어있습니다. 신을 표현한 신상과 인간을 표현한 인상, 파피루스나 로터스를 본뜬 것이 보통이에요. 그리스에서는 미케네 시대에 정교한 선각으로 장식된 상아의 자루가 달린 둥근 거울이 만들어졌으며, 주동기술의 발달로 여러 가지 복합한 디자인의 거울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특히 여성의 입상이 머리 위에 원형의 거울을 받치고 있는 모양의 경대, 정교한 부조나 은으로 상감을 한 뚜껑이 달린 거울 등은 뛰어난 작품이지요. 이들 장식은 화장도구라는 성격에서 섬세한 여성적 표현을 하는 경우가 많고, 또 관능적인 장식주제가 선택되는 일도 적지 않았어요. 이 경향은 헬레니즘기에 들어오면서 점점 더 짙어집니다. 에트루리아의 거울은 손잡이 거울이 많으며, 장식은 그리스와 공통되지만, 특히 유려한 선을 활용한 은상감의 기술이 뛰어났습니다. 로마 시대의 거울은 그리스·에트루리아의 형식을 발전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으나, 당시의 사치한 풍조를 반영해 호화로운 장식을 한 거울이 나타났습니다. 특히, 상류계급에서는 은제의 거울도 사용되었어요. Horizon Mirror Round ⓒ Normann Copenhagen 중세에는 일부 귀족계급의 용품을 제외하고는 거울이 소형으로 바뀌고 검소하게 되었습니다. 갈아서 광을 낸 금속 조각을 나무나 상아의 작은 곽, 또는 빗의 일부에 끼운 것 등 휴대하기 편리한 것이 나타났으며, 특히 표면에 기사 이야기의 장면 등을 부조한 상아제의 뚜껑 달린 거울을 귀부인들이 애용했어요. 유리 거울은 12~13세기경부터 점차 보급되어 1373년에는 뉘른베르크에서 유리 거울 직공조합이 결성되었습니다. 르네상스기에 유리제작의 중심이었던 베네치아에서는 유리판의 뒷면에 주석박을 붙이는 방법이 발명되어 이런 종류의 제품이 금속거울 대신 전 유럽에 보급되었어요.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거울은 19세기에 이르러 보급된 것입니다. 평평하고 투명한 유리판이 양산된 데다가 은도금의 새로운 기법이 발명된 것이지요. Floor Mirror ⓒ Kaschkasch 거울은 크게 평면거울과 오목거울, 볼록거울로 나뉩니다. 거울의 표면이 편평하고 매끄러운 평면거울은 모든 빛이 일정한 각도로 반사되기 때문에 실제 모습과 가장 가까운 형상을 나타냅니다. 면이 오목한 오목 거울은 빛을 모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가까이에서 보면 크게, 멀어질수록 작게 보입니다. 현미경이나 치과용 거울, 자동차의 전조등에 주로 쓰이지요. 반대로 볼록거울은 빛을 퍼지게 하므로 넓은 범위를 볼 수 있어요. 도로의 반사경이나 자동차의 백미러, 매장 구석에 커다란 거울도 모두 볼록거울이에요. Flip ⓒ Normann Copenhagen 거울은 사람의 용모를 비추어볼 뿐 아니라 무당들의 무속용품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예부터 무당들이 사용하던 세 가지 무속용품은 칼과 방울, 거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중 거울을 들여다보며 잃어린 것들의 행방을 점치기도 했지요. 지금도 무당들은 금속으로 만든 거울을 사용하며, 수호신의 신체로 인식한다고 합니다. MO S17 RISING TALENT FRANCE ⓒ SAMY RIO Lust Mirror with Circcus Pouf ⓒ Normann Copenhagen 많은 예술가들이 사랑하는 소재 또한 거울이였습니다. 러시아의 소설가 도스토옙스키의 [이중인격]에서는 거울을 통해 주인공의 또다른 내면을 만들어냅니다. 단지 상을 비추는 것이 아닌 다른 세계로서 대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거울은 대상과 대상을 연결짓습니다. 한 공간에 자리 잡아 다른 곳을 비춰줌으로써 그곳을 더욱 넓고 트여 보이게 할 뿐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비추어 자신을 더욱 깊게 알아가는 데 도움을 주지요. 사이를 연결짓는 오브제, 거울입니다. 김리오 기자

도자기

ⓒSugar and milk set, or soy and ginger set, on a light-coloured platter designed by Scholten & Baijings 원목과 유리 등 세상에는 수많은 오브제가 존재한다. 그중 하나인 도자기는 완성되기까지 수많은 손길이 닿아있는 오브제다. 도자기는 흙을 빚어 높은 온도의 불에서 구워낸 것을 말한다. 크게 1,300℃ 이하의 온도에서 구워낸 도기와 1,300~1,500℃ 사이에서 구운 자기로 나뉘며, 도기와 자기 및 사기그릇과 질그릇을 통틀어 도자기라고 칭한다. ⓒMila Bowl for Pulpo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요? 꽃은 한 철만 피어나기에 아름답다는 말도 있지만, 그럼에도 흐드러지게 핀 꽃을 보면 천천히 지길 바라는 것이 속마음입니다. 도자기는 따뜻한 것은 따뜻한 대로, 차가운 것은 차가운 대로 담아냅니다. 변화하는 것은 멈출 수 없지만 조금이나마 잡아두는 역할을 하지요. 순간이 지속되는 도자기,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요? ⓒellenbergerdesign chai teaset walnut 정착 생활을 시작하게 된 인류는 음식을 보관할 수 있는 그릇이 필요했습니다. 구하기도 가공하기도 쉬운 흙은 인류가 선택한 첫 번째 재료입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나일강 옆의 흙으로 가볍고 단단한 그릇을 만들었습니다. 이 그릇을 말려 사탕수수즙을 바른 후 600~800℃ 사이의 불에 구워서 사용했지요. 그렇지만 물이 닿으면 무너지는 것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흙이 물에 약하다는 단점은 모든 문명국가에서 극복해야 할 문제였습니다. ⓒChimney 인도네시아 소수민족으로 이뤄진 마을 바이안에서는 더욱 단단한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다른 불 때기 방법을 이용했습니다. 약 1m 높이의 둥근 담 안에 토기를 쌓아 기와로 덮고, 다시 그 위를 짚으로 덮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구워진 토기는 1,000℃까지 올라간 화덕에 쌓여 더욱 단단하고 세밀한 도기가 되었어요. ⓒChimney 사막을 오가며 무역을 하던 상인들은 어느 날 놀라운 목격을 하게 됩니다. 사막의 모래가 소다나 소금과 섞이면 녹는점이 1,000℃ 이하로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중동 지역의 사람들은 이를 이용해 유리를 발명하게 됩니다. 정제된 흙과 소다를 물에 풀어 도기 표면에 입히면, 이는 소성 과정에서 유리질로 변하게 됩니다. 비록 온도가 낮아 완벽하지 않았지만, 유약이 발명된 순간입니다. ⓒGardenias, vase 고령토는 1,300℃에서 물을 흡수하지 않는 백색의 자기로 변화합니다. 그러나 2,400년 전 은 시대 중국의 도공들은 가마 온도를 1,300℃까지 올릴 수 없었어요. 대신 중국인들은 좋은 흙을 채취하는 것부터 불순물을 걸러내는 단계까지 모든 과정을 체계적으로 확립했습니다. 흙을 빻아 물에 침전시킨 후 고운 체로 걸러낸 것을 태토로 사용했지요. 이 과정에서 자기 태토는 도기 태토보다 점성이 높아 훨씬 얇고 섬세한 성형이 가능해졌어요. 보다 높은 온도에서 견딜 수 있는 흙을 발견한 도공들은 가마 온도를 높이는 데 힘쓰기 시작했습니다. ⓒSucabaruca, color 불의 온도가 1,100℃를 넘어서자 나뭇재가 날려 그릇 표면에 내려앉았습니다. 나뭇재는 소다나 소금 역할을 하며 흙 속의 유기질을 녹였습니다. 태토와 화학반응을 일으킨 것이지요. 이를 자연유라 부릅니다. 나뭇재로 만든 자연유는 태토와 만나 완벽한 방수성을 보였습니다. 높은 온도는 유약의 화학적 변화뿐 아니라 태토의 성질 자체도 변화시켰어요. 가마 온도가 1,250℃에 오르면 흙의 성질은 액체와 고체 사이 자화에 이르게 됩니다. ⓒSucabaruca, living ⓒSucabaruca, living 1,700년 전 중국은 물을 흡수하지 않는 최초의 흙 그릇 자기, 청자를 탄생시켰습니다. 입때까지만 해도 청자는 푸른빛을 띠지 못했습니다. 청자의 발상지이자 완성지인 중국 월주는 오름가마를 만들어냈습니다. 오름가마의 완성은 청자의 완성으로 이어졌어요. 경사를 이용해 짓는 오름가마는 하나의 방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측면의 불구멍들은 가맛속 불의 상태를 조절하는 데 필요하지요. 갑발에 넣어 구워지는 청자는 산소를 차단당해 푸른 빛의 색을 띠게 됩니다. 이른바 환원작용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TAC Gropius Palazzo RORO 자연의 혜택에 힘입어 중국 북부에서도 많은 자기 생산지가 생겨났습니다. 태토 가운데 유일하게 흰색을 띠는 고령토는 접착력이 강해 희고 얇은 그릇이 됩니다. 북부의 도공들은 고령토를 자화에 이르게 하기 위해 1300℃까지 불의 온도를 올려야 했습니다. 단가마에서 온도를 높이려면 특별한 방법이 필요하지요. 가마에 불을 지피면 발생하는 상승기류가 가마 내부를 최대한 돌아 나가게 한 것이 바로 백자 가마입니다. 이로써 더 높은 온도가 발생한 것입니다. 월주의 청자가 나타나고 약 300년 후, 백자가 탄생했습니다. 이렇듯 도자기는 흙과 가마 온도에 따라 수십,수백 가지로 나뉩니다. 그에 따라 쓰임새도 다양하지요. 물을 흡수하지 않아 위생적인 도자기는 그릇, 화병, 찻잔, 식기에 주로 쓰입니다. 타일과 기와 등 공간을 이루는 오브제가 되기도 하지요. 강한 불이 도자기의 내구성을 좋게 만들어주며, 색과 형태를 보존해주기 때문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오브제, 도자기입니다. 김리오 기자

유리

Glass Mix Motion Cristall ⓒ Normann Copenhagen-1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유리를 마주한다. 꽃을 담는 화병부터 시력의 교정을 돕는 안경, 공간 너머의 풍경을 비추는 창까지 유리는 우리의 일상을 담는다. 이처럼 쓰임이 많아 우리와 밀접하게 닿아있는 유리는 무엇이든 반영·투과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이런 유리의 특성 덕분에 우리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공간을 넘어 삶의 질을 변화시키는 오브제, 유리를 소개한다. Cognac Glass ⓒ Normann Copenhagen-6 어릴 적 눈이 나빠지기 시작한 저는 어머니와 함께 첫 안경을 맞췄습니다. 콧대를 간질이는 안경대는 불편했지만, 난시가 심했던 저는 그제서야 아름다운 것들을 또렷이 볼 수 있었습니다. 부서지는 햇빛과 빛나는 나뭇잎, 찬란한 바다까지 안경이 발명 이래 700년이 지난 지금도 사랑받는 것은 이러한 풍경을 마주할 수 있어서가 아닐까요? Mjolk Zen Han ⓒ Nichetto Studio 사실 초기 안경은 에메랄드나 크리스털 등을 볼록렌즈로 깎은 원시용 안경이었습니다. 15세기이후 산업화의 단계에 접어든 유리는 더이상 사치품이 아닌 일반 사람들에게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오브제가 되었지요. 특히,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보급되면서 나타난 현상 중 하나는 안경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각종 서적을 보기 위해 안경이 필요했어요. 인류가 자연적 시력의 한계를 넘어서 대상을 마주하게 된 것은 유리 덕분입니다. 인류는 지금까지 수차례 자연의 한계를 넘어왔습니다. 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주먹도끼부터 먼 거리를 단숨에 이동할 수 있게 만든 바퀴, 생활 습관을 바꾼 전기 등 여러 발명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켰지요. 그중 유리의 발명은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공간을 넘어 삶을 변화시킨 유리에는 어떠한 종류가 있을까요? Mr Perswall Temperature 15grader high ⓒ Form us with Love 유리는 크게 일반 유리와 무늬유리, 망입유리, 복층유리로 나뉩니다. 대중적으로 쓰이는 유리 중 하나인 판유리는 일그러짐이 없고 두께가 일정합니다. 무늬유리는 롤아웃 공법으로 제조되며, 판유리의 한쪽 표면에 요철을 넣어 여러 모양의 무늬를 음각한 반투명 유리입니다. 빛이 무늬에 따라 확산되어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분위기를 자아내지요. 두꺼운 유리에 철망을 넣어서 만드는 망입유리는 파손되더라도 파편이 흩어지지 않으며, 화재 시 연소를 방지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복층유리는 두 장 혹의 세 장의 유리를 일정한 간격으로 접착해 밀폐하고, 그 사이에 건조 공기를 봉입한 유리입니다. 단열과 방음 효과가 크며 공기층의 두께와 사용되는 유리에 따라 다양한 조합이 가능합니다. Glas Italia_Shimmer ⓒ Normann 유리는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당시 메소포타미아 유적에서 유리 조각과 유리 막대기가 발굴된 것입니다. 이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남부 바빌로니아의 왕 다르 오마르의 점토판 문서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투명한 유리가루에 다양한 물질을 섞어 채색 유약인 연유를 제조하는 방법에 대해 작성되어 있으며, 이는 당시 유리 제조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집트의 경우, 기원전 5세기경부터 본격적으로 유리의 생산이 시작됐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때에는 세계 최대의 유리 생산지로 부상했지요. 당시의 유명한 유물로는 유리 암포라를 들 수 있는데, 그것은 유리 속에 모래나 진흙으로 만든 모형을 담근 후 유리가 식어 굳어지면 모형을 긁어내는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시작된 유리는 세계 각지로 전파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유리의 중심 지역이 차츰 이동하는 경향이 나타났어요. 기원전 1세기경 로마에서는 블로잉(Blowing) 기법이 발명되었습니다. 철 파이프의 앞 끝에 유리를 말아 올려 둥글게 한 후 반대편 끝에서 입으로 바람을 불어 풍선처럼 부풀리는 방법이지요. 당시의 기술자들은 이 방법을 활용해 보다 많은 양의 유리를 수월하게 생산할 수 있었고, 다양한 유리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Glas Italia_Shimmer ⓒ Normann Copenhagen 13세기 초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며 비잔틴제국의 유리 기술자들은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정착하게 됩니다. 뛰어난 솜씨를 가진 그들은 베네치아의 상인들이 세계를 누비며 판매할 화려한 유리 제품을 만들었어요. 유리를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섭씨 500도까지 열을 발산하는 용광로가 필요합니다. 당시 베네치아 대부분의 건물은 목조로 이루어져 화재가 발생할 염려가 있었기 때문에, 베네치아 정부는 유리기술자들을 무라노 섬으로 이주시켰습니다. 14세기 초, 무라노 섬은 ‘유리의 섬’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무라노 섬에서 제작된 사치스럽고 섬세한 유리 제품은 높은 신분을 상징하는 물건이 되어 유럽 전역으로 팔려나갔어요. 그 당시의 보석인 셈이지요. Kartell Jellies Table extension ⓒ Normann Copenhagen 사실 평소에 유리를 특별하게 여기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주변에 흔히, 여러 형태로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유리가 주는 빛의 형태는 경이롭기만 합니다. 스페인에 위치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제가 머물렀던 장소 중 가장 아름다웠던 곳입니다. 자연을 반영하는 유기적인 곡선, 정교한 조각, 그중에서도 유리로 만들어진 스테인드글라스는 시간에 따라 매 순간 다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찬란하게 흐르는 빛이 쏟아져 피부에 닿던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경건하게 앉아 기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빛나는 신앙심을 보았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재료에 안료를 넣어 만든 유리나 겉면에 색을 칠한 유리를 기하학적이거나 장식적인 형태 또는 회화적 도안으로 잘라 만든 것입니다. 고딕 건축의 구조상 거대한 창을 달 수 있어 스테인드글라스가 벽화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아름다운 빛은 성스러운 효과를 주어 교회 건축에서 주로 사용했지요. Crystal Rock 2014 LASVIT ⓒ Arik Levy 이러한 역할을 하던 유리는 현대 건축에서 벽의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유리가 주철과 연철, 강철과 결합해 공장에서 생산되기 시작하며 유리 건축물이 만들어지게 되었지요. 1914년 벨기에인 에밀 푸르콜은 수직 방향으로 끌어올리는 공정을 개발해 넓은 판유리를 생산했습니다. 이로 인해 여태 건축물을 이루는 오브제와는 전혀 다른 투명함이 가능하게 되었어요. 건축가들은 보다 더 투명한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유리판의 네 모서리에 구멍을 뚫고 나사로 구조체에 달아맸습니다. 창틀이 최소화된 유리 벽을 구현한 것이지요. 이렇게 만들어진 유리 건축물은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공정함과 투명함을 반영하며, 건물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할 것입니다. 드러나지 않았던 것들을 드러내는 것은 오로지 유리만이 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김리오 기자

원목

Patio set ⓒ Bertjan Pot 정성과 시간은 비례한다고 생각합니다. 애정이 있으니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지요. 원목은 오랜 시간이 필요한 오브제입니다. 작은 씨앗은 싹을 틔워 어린 나무가 되고, 어린나무는 시간이 흘러 큰 나무가 됩니다. 다 자란 나무를 베어 켜켜이 잘라 말리면 비로소 원목이 탄생해요. 세상에 같은 사람이 없듯 같은 나무도 없는 것처럼 단 하나뿐인 나무는 제각각 다른 형태를 가진 특별한 원목이 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원목은 사용할수록 고급스럽고 편안한 느낌을 주며 늘 우리 곁에 있겠지요. 오랫동안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오브제의 높은 가치를 명확하게 설명해줍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먼 미래까지 늘 우리의 공간에 속하는 원목, 진정 인류가 가장 사랑한 재료인 것입니다. Seating-Noor ⓒ SB_1 저의 부모님은 보성의 작은 마을에 시골집을 사두셨습니다. 사실, 부모님이 아니라 어머니가 사신 거라고 해야 정확하지요. 여느 어머니처럼 평생을 착한 딸로, 착한 아내로, 착한 어머니로 살아오신 어머니는 자신만의 별장이 필요했습니다. 타인에게서 쏟아지는 감정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요. 누구의 말도 누구의 행동도 겪지 않고 싶어 했어요. 그렇게 어머니는 작은 대나무 숲과 앞마당이 딸린 옛 한옥을 찾았습니다. 제 기억 속의 첫 원목은 아마 집 안 거실의 테이블이었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손이 닳도록 매만졌던 테이블, 코를 가까이 대면 나무 냄새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작은 도시의 아파트에서 낳고 길러진 제게 집안의나무란 생소하고, 낯설지만 어머니를 따라 자꾸 매만지게 되는 것이었어요. 저는 때로 말이 없는 것이 큰 위로를 준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Ton Split chairs ⓒ Arik LEVY 나무 냄새를 다시 맡게 된 건 어머니의 한옥에 들어섰을 때입니다. 꽤 오래된 집이라 서까래와 기둥, 마루는 원목으로, 벽은 황토가 발려 있었어요. 어머니는 아버지와 먼 곳으로 여행을 가듯, 드문드문 한옥을 찾았습니다. 건축을 하시는 아버지는 사람 손길이 오랫동안 닿지 않았던 한옥을 천천히 고쳐 나갔어요. 어머니가 애정하던 원목은 대부분 그대로 둔 체로 아버지는 황토를 다시 바르고, 전구를 달고, 돌을 다듬고, 부모님이 집을 수리할 때면 여느집보다 단단했을 과거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어떠한 인공적인 재료도 없던 그 옛날 어떻게 집을 만들었을까 하면서요. 어느 방향에서든 시원하게 통하는 문과 보온·습도를 조절하는 창호, 따스하고 효율성 높은 구들장까지, 한옥은 과학적입니다. 가족들이 마루에 두루 앉아 별을 세던 여름밤, 여느 날보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새삼 선조들이 현명했음을 느꼈습니다. Typecast Chair ⓒ Philippe Malouin 예부터 우리 선조들은 집안에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집안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들보부터 지붕을 받쳐주는 서까래, 집을 지지하는 기둥과 대청 바닥까지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사용했지요. 굽어진 것은 굽은 대로, 옹이가 있는 것은 옹이가 있는 대로 원목 그대로를 사용한 한옥은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냅니다. WALLPAPER ⓒ Jaime Hayon 우리의 공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원목은 언제부터 사용했을까요? 처음 인류는 집을 이루는 오브제로써 돌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기술이 부족하던 시대에 크고 무거운 돌을 원하는 곳으로 옮기는 것은 다소 벅찬 일이었겠지요. 기원전 3000년경, 고대 이집트인들은 최초로 의자와 테이블, 침대 같은 가구를 만드는 데 원목을 사용했습니다. 돌보다 훨씬 가벼워 이동하기 쉽고, 구하기도 쉬운 오브제가 나타난 것입니다. balance box group ⓒ Philippe Malouin 원목은 공구의 발달과 목재의 가공기술이 축적되며 쓰임새가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원목으로 만들어진 왕좌나 의자, 궤 등 호화스러운 장식은 모두 고대 이집트 지배층의 권위나 격식을 나타냈어요. 이들은 미라를 만든 뒤 음식, 옷, 가구를 함께 넣어 다음 세상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기원전 2000년경, 본격적으로 원목을 이용한 가구를 만들었던 그리스인들은 과거 이집트인들처럼 화려하고 장식적이지는 않지만, 단순하고 실용적인 곡선과 둥근 모서리를 적용해 인체에 적합하도록 발전시켰습니다. 커다란 변화 없이 중세 시대를 보낸 원목은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며 혁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사상 최고의 예술 시대라 평가 받는 르네상스 시대에는 균형과 조화에 중점을 두어 조각을 풍부하게 사용했어요. 뿐만 아니라 침대와 소파, 수납장 등 원목을 사용한 대부분의 가구에 우화나 신화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 넣어 화려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도록 했지요. BellLight ⓒ Sebastian Herkner 원목은 테이블, 의자, 침대, 수납장 등 여러 오브제로, 최근에는 바닥재, 벽재, 천장재, 몰딩 등 다양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원목이 가볍고 가공하기 쉬우며, 비중에 비해 강도가 크기 때문입니다. 또한, 공기 중의 오염물질을 끌어들여 공기정화에 도움을 주며, 수축과 팽창을 거듭해 실내 습도를 조절하지요. 그뿐만 아니라 소리를 흡수해 소음 방지에도 탁월하고, 특유의 따뜻하고 안락한 분위기로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는 등 다양한 순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Friends ⓒ Fuwl 나뭇결이 아름다워 의자와 몰딩재로 자주 사용되는 단풍나무는 무겁고 단단해 충격에도 큰 손상을 입지 않습니다. 착색 처리가 용이하며, 광택이 잘 나고 밝은 적갈색을 띄지요. 오크나무는 밝은 갈색으로, 몰딩재와 단판재로 많이 사용됩니다. 화이트 오크나무와 브라질리언 오크나무가 있으며 내구성이 높고 균일한 강도를 가집니다. 내후성이 뛰어난 소나무는 뒤틀림이 적고 결이 곧습니다. 예부터 한옥에 쓰이는 나무는 소나무로, 소프트우드 중 가장 강도가 높아 건축 자재로 활용했습니다. 이렇듯 많은 장점만큼 여러 종류를 가진 오브제, 원목입니다. Bedroom ⓒ John Kelly_3 김리오 기자

타일

타일(Tile)은 점토를 구워 만든 얇은 판이다. 가장 큰 특징으로는 겉이 반들반들해 수분을 흡수하지 않는다는 점인데 덕분에 청소와 관리가 쉽다는 것이 장점이다. 이런 특징에 힘입어 화장실, 목욕탕, 부엌 등에 자주 사용되며 강도와 특징에 따라 건물의 내부는 물론 외부에서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 다양한 모양과 크기, 색상을 만들 수 있어 바닥이나 벽을 장식하는 데에 많이 쓰인다. 모자이크화(mosaic 畵)의 재료로도 쓰이는데 교회나 성당, 건물의 외벽 등에서 볼 수 있다. 흔히 재료와 굽는 온도 등에 따라 도기질 타일, 자기질 타일, 석기질 타일, 유리질 타일 등으로 나눈다. 타일의 사용은 인류의 문명에 비견될 정도로 오래된 것으로 추측된다. 기원전 4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와르카(Warka)의 모자이크에서도 타일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타일은 다양한 모습과 용도로 인류와 함께해 왔다. 특히나 오래된 서양의 그림에서는 타일을 사용한 과거의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17세기 네덜란드의 풍속화가 피터르 드 호흐(Pieter de Hooch, 1629~1684)의 그림들이다. 네덜란드 중산층 가정의 일상생활을 화폭에 담았던 그의 그림들에서는 바닥을 수놓은 다양한 종류의 타일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MARVEL PRO © 유로세라믹(Euroceramic, www.eurotile.co.kr) a floor © Hotel Cort(www.hotelcort.com) BISAZZA CONTEMPORARY CEMENT TILES © Jaime Hayon MAISON © 유로세라믹(Euroceramic, www.eurotile.co.kr) Mutina Tex 010 HR © Raw Edges 기사 노일영

침대II

짚이나 톱밥을 채워 넣은 자루에서 시작된 침대는 이제 최첨단 과학 기술이 집약된 제품으로 거듭났다. 금속 스프링이 처음 사용된 19세기 이후로는 워터베드, 에어 매트리스, 라텍스, 메모리폼 등 다양한 매트리스가 발명됐다. 덕분에 요즘의 침대는 예전처럼 여러 겹의 매트리스와 담요를 사용하지 않는다. 한 장의 매트리스면 충분하기 때문에 쉽고 다양한 방법으로 침대를 꾸미거나 관리할 수 있다. 그저 매트리스 위에 씌우면 되는 화려한 매트리스 커버는 겉보기에 단순해 보이는 매트리스를 순식간에 여왕의 침대처럼 만들어 준다. 요즘은 쉽고 간편하게 여왕의 호사를 누릴 수 있는 시대다. 오래전 여왕이 누웠던 침대보다 지금 우리가 눕는 침대가 더 편안할 것이다. 그래서 침대는 이 시대의 증거다. 처음 침대가 만들어졌을 때는 지금보다 훨씬 컸다. 모닥불을 피우고 땅바닥에서 잠을 자던 이들이 처음으로 지금의 침대와 비슷한 자루를 만들어 그 위에서 자던 시절의 일이다. 적게는 다섯 명에서 열 명 정도의 사람이 한 침대를 썼다. 침대가 생기기 전부터 신분이 높은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은 서로를 보호하고 체온을 나누기 위해 함께 모여 잤고 이 전통이 침대가 생긴 이후에도 이어졌기 때문이다. 침대는 온 가족이 함께 쓰는 물건이었고 가끔은 손님들도 함께 사용하는 물건이었다. 사실 지금과 가장 다른 것은 침대의 크기가 아닌 사생활의 개념이다. 지금과는 달리 당시 유럽에서는 사생활을 존중해야 할 가치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이공 침대 © 고트레 Nick Bed © Luca Nichetto, Molteni&c dulux Colour Futures 2017 Denim Drift © akzonobel dulux Colour Futures 2017 Denim Drift © akzonobel dulux Colour Futures 2017 SHARED INDIVIDUALISM © akzonobel 기사 노일영

테이블II

의자는 핵심이다. 의자는 공간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려주고 주인의 권위를 드러낸다. 의자에 앉는 이가 공간의 주인이다. 그래서 의자는 권위적이고 이기적이다. 테이블은 다르다. 테이블은 주인이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다. 친목과 대화의 공간을 만드는 테이블의 덕목은 권위가 아닌 공유와 희생이다. 테이블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식탁이 바로 그 예다. 모든 식탁은 그래서 친목과 대화의 장이다. 다양한 크기와 높이, 모양으로 변주되지만, 음식을 나누는 모든 테이블은 기본적으로 식탁이다. 모든 테이블의 원형은 식탁이다. 커피 테이블, 사이드 테이블, 소파 테이블, 티 테이블, 콘솔 테이블 등등 세세하게 나누면 끝도 없이 나눌 수 있을 만큼 많은 분류가 있지만 결국 그 시작은 식탁이었다. 신에게 제물을 바치던 제단에 둘러앉아 혹은 둘러서서 음식을 나눠 먹던 신성한 의식이 모든 테이블의 기원이며 식탁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신에게 바쳐진 제물은 모두 가장 풍요롭고 가장 귀한 것들이었다. 그 제물을 올려둔 제단 즉, 테이블도 마찬가지였고 의식을 마친 후 귀한 음식을 먹던 행위도 마찬가지였다. CCassina Torei © nichetto studio G&R RULLI © nichetto studio Marlon and Stella Armchair © nichetto studio TA BLE HORS SERIE STUDIO MONSIEUR POUR HORS PISTES © STUDIO MONSIEUR, HORS PISTES ET FABRICE SCHNEIDER Palette table © Jaime Hayon 기사 노일영

조명2

Industrial © KaschKasch 공간 디자인에는 조명 계획이 당연하게도 포함된다. 특히 공간 연출에 있어 조명은 필수적인 고려 대상이다. 천장 한가운데 매달린 커다란 샹들리에, 식탁 위의 작은 펜던트 조명, 혹은 흔한 형광등까지 뭐가 됐든 조명은 어쩌면 환경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일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은 어떤 환경도 만들어내지 못 하기 때문이다. 조명은 우리가 사물과 환경을 인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사물의 형태와 색을 결정하는 것도 어쩌면 조명이다. 조명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조명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인류가 알게 된 지 이제 100년 정도 지났을 뿐이다. fa ndango in white © Hive, Indahdesign Chinoz © Jaime hayon Cherry © KaschKasch, Jessewchen 기사 노일영

조명

Maija © SANTACOLE 조명이라는 말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가정이나 사무실에 걸린 형광등, 거리를 비추는 가로등, 자동차의 전조등 정도일 것이다. 혹은 무대 위 스타에게 비추는 스포트라이트나 야구장에서 볼 수 있는 강렬한 서치라이트도 있을 수 있겠다. 무엇을 떠올리든, 모든 조명의 공통점은 빛이다. 빛 공해, 조명 공해라는 말까지 쓰일 만큼 지금이야 아주 흔한 것이지만, 원래 빛은 태양과 달, 별 가끔은 특이한 동식물 등에서나 찾을 수 있었던 아주 귀한 것이었다. 그래서 신(神)이나 왕(王), 선(善), 미인(美人)을 부를 때 대신 쓰이던 말이기도 하다. Parachilna © Jaime Hayon PULPO BOULE SMALL FAMILLE © Maison Objet January 2017 Lampada Hayon, Saint Louis © Jaime Hayon KURAGE © Nichetto Studio, Kasia Gatkowska DUB grau © KaschKasch 기사 노일영

수납장

Tudor Low Cupboard © Joost&Kiki, joostandkiki.nl 옷장을 뜻하는 워드로브(Wardrobe), 서랍장으로 번역되는 드로워(Drawers), 궤나 상자를 부르는 체스트(Chest), 책이나 식기 혹은 작은 물건을 보관하는 선반(Shelve) 등을 통틀어 스토리지(Storage), 수납 가구라 부른다. 이런 대표적인 가구들 이외에도 캐비닛(Cabinet), 오토만(Ottoman), 랙(Rack), 보드(Board) 등 다양한 가구를 모두 스토리지 또는 수납 가구라 부른다. 한국의 장롱(欌籠) 역시 마찬가지다. 이름과 형태는 다르지만, 목적은 같다. 수납, 보관, 저장 뭐라 부르든 결국 물건을 두는 물건 혹은 물건을 두는 기구다. IAlcor Storage Unit, Maxalto © Antonio Citterio, citterio-viel.com Job Cabinet © Studio Job, www.studiojob.be T Table by Bosa © Jaime Hayon, www.fritzhansen.com BoConcept Copenhagen wall system © Morten Georgsen, www.boconcept.com 뉴월플렉스2O 콘솔선반장 SET © Hanssem, mall.hanssem.com 기사 노일영

테이블

테이블(Table)이라는 말을 영어 사전에서 찾아본다면 놀랄지도 모르겠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네이버 영어사전에서 ‘Table’을 검색하면 5개의 명사, 2개의 동사, 376개의 숙어, 9만 개에 가까운 예문이 나온다. 그만큼 많이 쓰이고 그만큼 다양하게 쓰인다. 언어와 사상을 분리해서 여길 수 없듯 언어와 생활도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렵다. 테이블은 단어로 그리고 실제 물건으로 그만큼 우리 생활 속에서 자주 그리고 다양하게 쓰인다. 당장 눈에 보이는 테이블을 세어보자. 식탁, 책상, 티테이블, 협탁 등등 다양한 이름으로 또 다양한 모양으로 온통 주변이 테이블 천지라는 걸 알 수 있다. 기사 노일영

침대

15세기 즈음 유럽, 모닥불 주변에 모여 자던 이들이 오늘날 침대라고 부를만한 것들을 만들어 냈다. 당시의 ‘침대라고 부를만한’ 것들은 우리가 지금 쓰는 일반적인 침대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일단 훨씬 컸다. 요즘 침대는 한 명 혹은 많아야 두명이 사용하는 것을 기준으로 만들지만 당시에는 기준 인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다섯 명, 많게는 열 명 안팍의 사람이 한 침대를 사용했을 것이다. 온 가족이 함께 사용했고 종종은 손님들까지 한 침대를 사용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훨씬 불편했다. ‘침대라고 부를만한’ 것들은 사실 기껏해야 짚을 채워 넣은 자루가 전부였으니 말이다. 어떤 이들은 짚 대신 톱밥을 넣어 만들기도 했다. 기사 노일영

의자 I

의자만큼 많은 디자이너들의 관심을 받은 가구가 또 있을까? 많은, 정말 많은 디자이너들이 의자를 사랑하고 또 집착했다. 역사로 기록된 의자와 디자이너가 있었으며 한편으로는 수없이 많은 변형과 수정 그리고 재창조를 거치며 오늘까지도 사랑받는 의자와 디자이너도 있다. 임스 부부(Charles & Ray Eames)의 걸작, 임스 라운지 체어(Eames Lounge Chair)는 1956년부터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다. 할리우드 스타와 유력 인사들이 여전히 모던한 이 의자를 사용하는 모습을 영화나 미디어를 통해 종종 볼 수 있다. 오래도록 사랑받는다는 점에서 많은 디자이너가 의자를 사랑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기사 노일영

경험하는 바닥

침대에서 혹은 이불에서 눈을 뜨고 다시 눕기 전까지, 하루를 온전히 보내는 동안 우리는 적어도 어딘가에 닿아있다. 시선이 어디를 향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지 심지어 어떤 생각을 하더라도 결국 우리는 바닥 위에 있다. 앉고 눕고 서 있는 모든 시간을 우리는 바닥 위에서 보내는 것이다. 집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인 벽이나 천장과는 다르게 바닥이 유독 특별한 것은 우리가 거의 모든 시간을 바닥에 닿은 채로 보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닥은 만지거나 몸에 닿을 일이 거의 없는 벽이나 천장과는 다르게 다분히 감각적으로 경험된다. 같은 이유로 바닥은 가장 친숙하고 익숙한 요소이며 동시에 가장 홀대받는 요소이기도 하다. 마치 우리가 발을 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Japan Open-Air Folk House Museum © TANAKA Juuyoh 기사 노일영

살아있는 벽

살아있는 벽 - 기억과 감정, 기능의 캔버스 인류가 수렵채집을 하던 시기에는 짐승의 뼈나 나뭇가지로 뼈대를 세우고 그 위에 풀이나 짐승의 가죽을 덮는 방식으로 벽을 만들었다. 최초의 인공적인 벽은 차가운 바람과 흙먼지를 막을 수는 있었지만, 야생 동물의 공격이나 적의 습격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한 장소에 오래 정착해 살아야 할 필요가 없었던 시절에는 그것만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생존 방식이 수렵과 채집에서 농경으로 넘어가면서 변화가 생겼다. 한곳에 오래 정착해 살기 위해선 벽의 내구성이 좋아야 했고, 집 안에 잉여 생산물을 저장했기 때문에 적으로부터 지켜야 할 것이 늘었던 것이다. 취재 노일영

발코니, 베란다 혹은 테라스

마당이 있는 한국의 전통 주택을 보통 중정주택(中庭住宅)이라 부른다. 중정주택은 집 한가운데에 마당이 있는 집을 말한다. 전통 한옥의 안마당 혹은 앞마당이나 ‘ㅁ’ 자형 주택의 안마당을 떠올리면 된다. 마당을 중심으로 둘러싼 건축은 구조상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마당이 있는 주택, 집의 중심에 마당을 두는 중정주택은 한국뿐 아니라 중국, 중동 심지어 이집트와 아프리카까지 전 세계적으로 퍼져있었다. 생각해보면 예전 우리 조상들은 마당에서 참 많은 일을 했다. 마당은 때로 장독대가 되기도 했고 빨래를 널거나 김장을 하는 곳이기도 했다. 혹은 잔치를 벌이고 온갖 놀이를 즐겼던 그야말로 다재다능한 공간이었다. 기사 노일영

집안으로 내려온 하늘 ‘천장’

천장은 공간을 나누는 벽들을 모아 하나의 공간으로 마무리 짓는 건축의 마지막 요소다. 기능적으로는 직사광선, 비, 바람과 같은 하늘로부터의 위험을 방어하는 역할을 하며 공간을 쾌적하고 안정적으로 만들어 준다. 그런데 당장 집과 사무실의 천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들은 천장을 쉽게 간과하고는 한다.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질감인지 또 어떤 높이로 만들어져 있는지 잘 신경 쓰지 않기에 당연히도 잘 모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천장은 약간의 차이만으로 공간의 분위기를 크게 바꾼다.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은 물론 삶의 질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하늘로부터의 위협을 방어하는 건축 요소로서, 공간을 안전하고 아늑하게 만든 천장은 그러나 하늘의 다른 요소까지도 막아버렸다. 바로 푸른 하늘과 따듯한 햇빛, 달빛과 별빛이다. 땅과 작물, 공기만큼이나 중요한 하늘을 막아버린 천장을 사람들은 불안하게 여겼다. 공간의 안정성과는 별개로 자연이나 신(神)과의 유리감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천장에 어떤 상징적 요소도 남지 않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천장으로 유발된 이 심리적 불안함을 극복하기 위해 고대로부터 사람들은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가장 손쉬운 방식은 천장을 하늘과 닮게 만드는 것이었다. 천장에 하늘과 비슷한 색을 칠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행위부터 하늘과 닮은 둥근 모양의 천장을 만들거나 천장에 구멍을 내는 방식까지 그 표현 방법의 다양함과 관계없이 목적은 오직 천장을 하늘과 최대한 닮아보이게 만드는 것이었다. 진짜 하늘은 아니지만 진짜에 버금가는 하늘을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천장으로 하늘을 만드는 이런 행위는 방에 야광 별을 달아놓거나 태양을 닮은 샹들리에를 설치하는 요즘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천장을 뜻하는 영어 씰링(Ceiling)은 하늘을 뜻하는 프랑스어 씨엘(Ciel)에서 유해했다. 처음부터 하늘과 동일시 여겼던 고대의 전통에서 출발한 셈이다. 작가 수에토니우스는 ‘12황제 전기(The Lives of the Twelve Caesars)’에서 로마 네로 황제 시대 건축물의 천장을 천체의 운동을 모방한 둥근 천장이라 표현했다. 그 천장은 푸른색으로 칠해져있었고, 별 모양의 장식을 만들어 넣었으며 심지어 천제가 움직이는 방식으로 천천히 회전운동까지 했다고 한다. 또 중세 성당의 돔 천장은 푸른색으로 칠해져있었고 금빛 별과 태양으로 장식되어 있었으며, 르네상스 시대의 대저택에는 구름과 천사들이 그려진 천장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요즘은 천장에 구름과 천사를 그려넣거나 푸른색으로 칠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그 전통의 흔적이 남아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천장의 몰딩이다. 집이나 사무실 천장 둘레의 테두리에 둘러놓는 벽과 천장을 분리해주는 몰딩은 본디 천장에 칠해진 푸른색의 경계, 천장에 그려진 하늘 그림의 경계에 있던 복잡한 테두리의 흔적이다. 지금의 장식에 불과한 몰딩에서 천장과 벽을 분리해준다는 것 외에 어떤 의미를 더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원래의 의미는 천장에 만들어진 하늘과 현실을 구분해주고 인간의 집과 집안으로 들여온 하늘을 한계짓는 상징적인 장식품이었던것이다. 천장의 모양은 보통 다섯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다. 평평하고 곧게 뻗은 평지붕, 위쪽이 뾰족한 5각형 벽을 만드는 박공지붕, 박공지붕보다 양쪽 끝이 좁고 벽 위에 면구조가 하나 더 있는 모임지붕, 원뿔이나 원형으로 만드는 방형지붕, 한쪽으로 치우친 천장과 마름모형 벽이 특징인 외쪽지붕이 있다. 균일한 공간을 만드는 천장은 안정적이고 차분한 느낌을 주며 형태에 따라 공간을 구분해 주거나 비례감과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면적이 좁은 공간을 넓고 탁 트인 공간으로 만드는 것도 천장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러한 원리로 천장이 가진 높이 차이를 완만하게 조절해 사용자의 감각을 서서히 전환시키거나 극적으로 차이를 크게해 감각을 환기하는 장치로 쓰기도 한다. 중세에 세워진 교회나 성당은 대부분 크고 높은 돔 형태로 지어졌다. 이 크고 높은 돔 천장은 궁핍한 일상과 삶을 상징하는 어둡고 긴 복도와 함께 신자와 방문자들에게 격정적인 감동을 선사했다. 좁고 낮은 복도를 지나 거대한 공간감과 개방감을 가진 천장 아래의 홀에서 사람들이 경외감과 신성함을 느꼈던 것이다. 오늘날에는 잘 기획된 놀이공원이나 미술관에서 이런 장치를 흔하게 볼 수 있다. 2007년 미국 라이스 대학교(Rice University, Texas, U.S.A)에서 있었던 실험에 의하면 천장의 높이가 높아질 수록 공간 사용자의 창의력이 향상된다고 한다. 반대로 천장의 높이가 낮아지면 사용자의 집중력이 향상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사무실 환경 조성에 활용하는 기업들이 많다. 병원이나 상업공간에서는 공간의 목적과 사용자에 따라 전략적으로 공간을 구성한다. 구글의 본사인 구글 플렉스(Googleplex)는 직원들의 추상력과 창의력을 높이기 위해 천장을 높이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 아이를 키우고있다면 아이방을 어떻게 꾸며줄지, 어떤 아이로 키울지를 결정하기에 앞서 우선 천장의 높이를 확인해보자. 기사 노일영

화려한 성취의 갤러리 거실

오래전 집의 모든 공간이 하나의 커다란 방이었을 때에는 부엌과 침실, 거실과 구분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거실에서 모든 일이 이루어졌다는 말은 부엌과 침실에서 모든 일이 이루어졌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당시에는 거실에서 불을 피우고 음식을 만들었으며 따듯한 불 주변에 집안 식구들이 모두 모여 잠을 청했다. 집이 거실이었고 모든 일이 그곳에서 이루어졌다. 때로 손님이 찾아오면 손님을 맞이하는 곳도 역시 거실이었다. 손님 역시 거실에서 함께 밥을 먹었고 그곳에서 잠을 청해야 했다. 말 그대로 다용도 거실이었던 셈이다. 17세기 즈음, 집을 여러 개의 특화된 목적을 가진 공간으로 구획하고 나누려는 시도가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다용도 거실에서 다양한 방(Room)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침실과 주방, 응접실 등 다양한 방이 다양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고, 그 와중에 우리가 오늘 흔히 거실(Living Room)이라고 부르는 공간도 나타났다. 보통 응접실이라 불리었던 당시의 거실은 지금의 거실과는 다소 다른 의미와 목적을 갖고 있었다. 다만, 적어도 겉모양은 당시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집이 여러 개의 방으로 나뉘면서 이전의 다용도 거실에서 여러 가지 공간과 기능들이 분리되었다. 침실과 부엌이 각자의 기능에 맞게 분리되어 나갔고 이어서 다양한 이름과 형태를 가진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당시의 응접실은 현대의 거실과 비슷하게 탁자와 의자가 있는, 손님과 차를 마시거나 대화를 할 수 있도록 꾸며진 공간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사람들은 자신이 머무르는 곳보다 손님에게 보여줘야 하는 공간을 꾸미는 일에 더 많은 공을 들였다. 그래서 응접실은 다른 공간보다 특별히 더 장식되었고 신경 써 꾸며졌다.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만들어진 응접실은 일종의 전시장이었다. 집안과 가장의 내력과 실력, 전통과 성취를 집약해 장식하고 치장해야 했기 때문이다. 집안의 가보를 전시하거나, 빼어난 예술 작품을 걸어놓기도 했으며, 태피스트리와 같은 장식물로 공들여 치장했다. 그런 까닭으로 응접실은 점차 집안의 바깥주인을 상징하는, 무겁고 남성적인 공간으로 발전했다. 침실이 집안의 안주인을 상징하는 여성적인 공간으로 내밀하게 발전한 반면, 응접실은 그와는 대조적인 개방적이고 화려한 공간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주택에는 응접실이나 담화실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손님을 맞이하거나 휴식을 즐길 공간이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17세기에 시작된 응접실의 의미는 바로 그곳에서 드러난다. 온종일 노동에 전념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쓸데없는, 장식과 사교를 위한 공간이 바로 당시의 거실 즉, 응접실의 의미였다. 응접실의 존재 자체가 집주인의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공간이었으며, 기능적으로 존재하기보다는 상징적으로 존재하는 곳이었다. 응접실은 곧 집안과 가장의 권위와 권력 그 자체로 여겨졌다. 이후 도시가 발전하고 저택이 아닌 주택이나 아파트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늘면서 응접실은 규모와 수가 크게 줄었다. 대부분의 도시 가정에는 하나 혹은 두 개의 응접실만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비교적 출입구에 가까워 손님을 맞이하기 편한 방 하나를 꾸미는 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값비싼 가구와 화려한 장식품들이 가득한 응접실 즉, 보다 현대적인 의미의 거실이 만들어진 것이다. 비록 그 규모와 수가 줄었지만,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공간이었으므로 당연히 크고 화려하게 꾸며졌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이르러 새로운 디자인 스타일이 유행하면서 17세기에 시작된 화려한 응접실 문화와 양식이 순식간에 밀려났다. 모더니즘이 등장한 것이다. 20세기의 현대적 주택은 실용적이고 단순한 주거용 기계에 가깝게 여겨졌다. 장식과 치장은 최소로 줄었고 기능성이 강조되었다. 화려한 실내 장식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은 놀랍게도 투명한 유리였다. 모더니즘은 풍부한 자연광을 거실로 끌어들였다. 여전히 아파트나 주택의 거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커다란 유리와 풍부한 자연광은 20세기 모더니즘의 상징인 것이다. 모더니즘의 등장만큼이나 거실을 크게 변화시킨 것은 TV의 등장이다.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꾸며지던 공간에서 TV를 보기 위한 공간으로 급격하게 그 의미가 변화한 것이다. 손님을 맞이하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차를 마시던 공간에서 지금은 TV를 보기 위한 곳, TV를 보면서 쉬는 곳, TV를 보면서 밥을 먹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 되었다. 실제로 요즘 거의 대부분의 가정에서 거실에 놓이는 의자 즉 소파는 벽을 등지고 빈 벽을 바라보게 배치되곤 한다. TV의 등장이 바꿔놓은 생활 양식이다. 서로를 향해 놓였던 의자들은 이제 동시에 같은 곳을 본다. 예나 지금이나 거실에서 가장 중요한 가구는 의자다. 의자는 휴식을 취할 때나 편지를 쓸 때 반드시 필요했고 책을 읽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등 실질적인 다양한 활동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요즘엔 거의 편하게 TV를 보기 위한 도구 정도로 취급받지만 말이다. 중세 유럽의 주택에서는 오직 집주인만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지금처럼 푹신푹신한 소파가 아니었음에도 아무나 함부로 의자에 앉을 수없었던 것은, 의자에서 하는 많은 행위들, 책을 읽는 일과 편지를 쓰는 일 그리고 휴식을 취하는 일들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8세기 들어 유행하기 시작한 푹신한 소파는 원래 아라비아에서 건너간 귀족적이고 호사스러운 사치품이었다. 17세기의 딱딱하고 불편한 의자와는 다르게 소파는 푹신푹신했고 다양한 자세로 편히 쉴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응접실에 소파를 두는 것은 좋은 자랑거리였고 재력을 가진 이들은 앞다퉈 응접실에 소파를 놓았다. 더이상 거실이 전시장이 아니고 소파가 사치품이 아닌 이제는 대부분의 집에 소파가 놓여있으며 누구나 쉽게 소파에 앉을 수 있다. 심지어 남의 집 거실의 소파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 거실의 겉모양은 예전과 비슷하지만, 의미가 달라진 덕분이다. 거실과 주방, 식당의 구분이 모호한 현대적 오픈 플랜식 주택은 1930년대에 등장하기 시작해 1950년대에 점차 일반 가정에 널리 적용되기 시작했다. 17세기에 나뉘기 시작한 다양한 방들이 다시 합쳐지는 데에는 아주 긴 시간과 다양한 기술의 발전이 필요했다. 모닥불이나 화로 대신 보일러와 라디에이터가 들어섰고 연기와 냄새를 만들어내던 주방에는 전자렌지와 환풍기가 생겼다. 딱딱한 나무의자 대신 안락한 소파가 들어섰으며, 어릿광대나 음유시인 대신 TV가 들어섰다. 거실의 다양한 변화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언젠가 지금의 양식과 문화도 바뀔지 모른다는 것이다. 기사 노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