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은 본질적으로 식생활을 영위하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대화를 나누고 소통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다정하게 요리하는 부부와 식탁에 둘러앉아 화목한 시간을 보내는 가족이 주방을 상징하는 이미지인 것처럼 말이다. 오늘날 주방은 따듯하며 온화한 가정성의 상징과도 같이 여겨진다. 집의 중심부이자 일차적인 소통의 공간으로 온 가족이 모이는 거의 유일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한 세기 전만 해도 주방이 하인들만 드나드는 하찮은 공간으로 여겨졌다는 사실은 거의 잊혀졌다.

 


인류가 처음 자연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었을 때에는 주방과 침실의 구분이 없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집에 가까운 그 공간의 중심부에는 불이 있었다. 난로, 화로, 모닥불 뭐라고 부르든 공간의 중심에 불이 있었고 그 불로 요리를 하고 몸을 녹이고 불을 밝혔다. 유럽에서는 중세까지도 집안의 중앙 홀에 불을 피웠다. 하인들은 그곳에서 요리를 했고, 밤이면 추위를 피해 잠자리에 들었다. 지금과 가장 다른 것이 있다면 요리를 하던 하인들이 남자였다는 사실이다. 




사실 오랫동안 주방에서 요리를 담당했던 건 남자였다. 특히 왕실이나 귀족의 주방을 책임진 주방장과 그들이 부리던 이들은 대부분 남자였다. 17세기 들어 시민계급이 성장하면서 남자들이 의사나 법률가 같은 더 주체적이고 매력적인 직업을 찾아 주방을 떠났다. 일부 왕실과 고위 귀족의 요리를 책임지던 소수의 최고급 남자 요리사만이 주방에 남았고, 결국 주방은 음식점과 여성의 몫으로 넘어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택의 중심 공간이었던 주방은 점차 주택의 주변으로 밀려났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화재의 위험이었다. 불은 요리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주택의 중앙에 자리 잡은 모닥불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주택을 통째로 잃어야 했기 때문에, 주방은 점점 주택의 주변부로 밀려났다. 벽난로와 화로, 난로의 발전으로 체온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해진 탓도 있다.




화재에 대한 공포는 결국 주방을 집 밖으로 쫓아내게 만들었다. 귀족의 저택이나 궁전에서 마침내 주방을 따로 지어진 건물로 쫓아낸 것이다. 이런 조치를 통해 혹시라도 화재가 났을 때 다른 건물에는 피해를 주지 않을 수 있었다. 재밌는 것은 밖으로 쫓겨난 주방에서 점점 많은 일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식료품과 얼음을 저장하는 창고, 우유를 짜거나 치즈를 만드는 낙농장, 양조장, 탈곡장, 제빵소 등 실로 다양한 기능과 목적이 주방으로 집중됐고, 주방은 거의 작은 마을로 보일 정도로 커지기도 했다.




밖으로 쫓겨난, 좋게 말해 독립적인 주방은 18세기를 지나 19세기에도 여전히 집안으로 들어가지 못 했다. 특히 주인의 신분이 높을수록 주방과 저택의 거리는 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방을 지저분하고, 시끄럽고, 쓰레기가 많이 나는 곳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품격있는 자신들의 생활 공간과 주방을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편 18세기는 본격적으로 도시가 발전을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늘어난 인구에 걸맞은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웠던 도시 사람들은 마침내 주방을 건물의 지하로 쫓아냈다.




19세기까지 품격과 거리가 멀다고 여겨져 지하와 밖으로 쫓겨나기만 했던 주방은 20세기에 들어 다시 주택 디자인의 중요한 요소로 부활했다. 가장 큰 이유는 제1차 세계 대전으로 노동인구가 줄고 인건비가 올랐기 때문이다. 주방에 들어설 엄두조차 내지 않던 가정의 안주인도 이제 주방에 들어가 요리를 해야 했다. 또 다른 중요한 원인으로는 환풍기의 발전을 들 수 있다. 환풍기의 등장과 발전으로 불쾌한 음식 냄새가 집 안으로 퍼지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도시형 공동 주택을 시작으로 작은 공간 안에 주방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기에 이르러 가정부와 하인의 공간이었던 주방이 드디어 주부의 공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20세기 들어 높아진 주방의 위상은 다른 공간과 주방의 조화를 만들어냈다. 1960년대 영국에서는 예전 양식의 도시형 연립 주택을 개조하는 젊은이들이 크게 늘었다. 식기실, 주방, 식당 사이의 벽을 허물어 여러 개로 나뉜 주방 공간을 하나로 합쳤다. 바로 현대적인 오픈 플랜식 디자인의 등장이었다. 이 새로운 그러나 역사적인 공간의 구조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 가족 구성원들이 주방에 드나드는 것을 꺼리지 않게 되었으며 주방을 더럽거나 품격이 떨어지는 공간이라고 인식하지 않게 된 것이다.




“식사 공간을 종일 사용할 수 있도록 거실과 식당, 주방과 식당을 조합하는 방식의 가치를 충분히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의 디자인 브랜드 해비타트가 자신들의 주방 용품을 홍보하기 위해 사용한 문구다. 1970년대의 주방은 구조적으로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벽돌, 나무와 같은 재료로 주방을 꾸미기 시작했고, 정직하고 소박한 분위기를 풍겼다. 튼튼하고 실용적이지만 소박한 멋이 있는 식기가 인기를 끌었다.




한국에 ‘시스템 키친’이라는 개념이 처음 들어온 시기, 1980년대에 주방은 다시 예전처럼 거실과 그리고 식당과 하나가 되었다. 부유한 집주인들은 주방에 많은 돈을 쓰기 시작했다. 값비싼 가구, 주방용품과 최신 기계들은 주방에 실용성과 심미적 아름다움을 더했다. 주방은 점차 세련되고 모던해졌으며 부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많은 돈을 써서 만든 화려하고 미끈한 주방은 오히려 집주인이 요리를 하지 않는다는 상징이기도 하다. 그렇게 비싼 주방의 주인들은 보통 직접 요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주방의 최우선 가치는 실용과 효율이었다. 불을 다루고 음식을 만드는 주방은, 일종의 기관실과도 같은 곳이었다. 승객이 아닌 선원이 가는 곳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주방은 기계적이고 기술적인 작업, 요리가 이루어지는 실용적인 곳이며 동시에 온화하고 단란한 가정을 상징하는 따듯한 공간이 되었다. 냉장고에 붙어있는 가족사진과 매혹적인 향기를 풍기는 가스레인지가 바로 지금의 주방을 대표하는 장면일 것이다. 냉장고라는 실로 차가운 기계에 붙여진 행복한 가족사진이야말로 주방 그 자체다.






기사 노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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