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트

공백과 무한의 패턴

 

Ⓒ Oskar Zieta - 3+ shelving plate pack

 

도트 무늬는 같은 크기의 원이 규칙적인 간격으로 배열된 패턴을 의미한다. 흔히 여성복, 아동복, 장난감이나 가구, 도자기 등에서 장식적인 요소로 활용되며, 의류와 제품에 밝고 명랑한 이미지를 주고자 할 때 주로 사용한다. 도트 무늬는 다른 패턴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194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크게 유행하여 패션계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았으며, 시간이 지난 지금은 복고적인 분위기를 표현할 때에도 많이 볼 수 있다. 이번 아이엑스디자인의 1월호 오브제에서는 우리 주변에서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패턴 중 하나, 도트 무늬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 Form us with Love - BAUX-Tiles

 

도트 무늬가 지금처럼 밝은 이미지를 얻게 된 것은 1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과거 서구 문화권에서 도트 무늬는 오히려 금기시되는 경향이 있었다. 중세 시대 유럽의 기술로는 일정한 크기와 간격의 규칙적인 도트 패턴을 만들어낼 수 없었다. 때문에 패브릭 위에 표현할 수 있는 도트 무늬는 불규칙적이고 비정형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불규칙적인 도트 무늬는 천연두, 페스트 환자의 발진을 연상케 했다. 이처럼 도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르네상스 시대까지 이어진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오셀로에서는 데스데모나의 도트 무늬 손수건이 비극을 이끄는 주요한 소품으로 등장한다.

 

Ⓒ HAY - Pinocchio Multi Colour

 

한편, 비서구권에서 도트 무늬를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 달랐다. 과거의 아프리카에서는 도트 무늬가 마법과 남성의 정력을 상징하는 무늬로 사용되기도 했다. 당시의 의상이나 장식물에는 다양한 크기의 크고 작은 점으로 수놓은 도트 무늬가 널리 유행했고, 도트가 작고 밀도가 높을수록 마법적인 힘이 강하다고 생각했다. 이외에도 도트 무늬는 불교와 힌두교, 이슬람 종교의 디자인적 요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Scholten & Baijings - HAY - DOT Chair

 

Ⓒ Saba - Baby Geo

 

도트 무늬는 전염병 환자의 발진처럼 부정적인 이미지를 연상케하며 금기시되든지, 아니면 마법적이거나 종교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도트 무늬는 언제부터 우리에게 발랄함과 사랑스러운 패턴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을까?

 

ⒸNichetto Studio - Fish skin on the roof

 

Ⓒ Lorenz-kaz - Opto folding screen

 

19세기 말, 체코슬로바키아 보헤미아 지방에서 탄생한 폴카 댄스는 유럽의 사교계를 중심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폴카 춤은 남녀가 짝을 이루어 추는 4분의 2박자의 춤으로, 단조로운 베이스음 위 코드의 반복으로 리듬이 만들어진다. 경쾌하고 리드미컬한 스텝으로 폴카 댄스를 추던 무용수들은 그 리듬을 닮은 도트 무늬 원피스를 즐겨 입었고, 지금도 서구권에서는 도트 : Ⓒ Patricia Urquiola - Kartell - 무늬를 Polka Dots라 부르고 있다.

 

Ⓒ Studio Sebastian Herkner - Collection for Nya Nordiska

 

또한, 이 시기에는 기계를 이용해 규칙적인 도트 무늬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시장은 유례없는 도트 무늬에 대한 수요에 대처할 수 있었다. 당시 젊은 여성들은 너나할 것 없이 세련되고 사랑스러운 도트 무늬의 옷을 입었고, Polka Dots 외에도 아주 작은 점과 같은 물방울 무늬의 핀도트(Pin Dot), 동전만한 크기의 코인도트(Coin Dot), 여러 컬러의 도트를 사용한 콘페티 도트(Confertti Dot) 등이 체계적으로 정리됐다.

 

Ⓒ K8 on Unsplash

 

ⓒ Kusama Yayoi

 

일본의 설치미술가 쿠사마 야요이는 현대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 중 하나다. 쿠사마 야요이는 백인 남성이 주도하는 뉴욕의 팝아트 씬에서 ‘도트’ 패턴을 활용한 인상적인 작품들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쿠사마 야요이는 어렸을적 부모님의 육체적인 학대로 정신질환과 강박증을 앓았는데, 이로 인해 쿠사마 야요이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물체 위에 도트 무늬가 새겨진 것 같은 환각을 보게 됐다. 이 환각은 곧 그의 작품으로 이어져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구축하게 했다. 쿠사마 야요이의 작업은 일본뿐만 아니라 상하이, 서울, 마카오, 타이베이, 뉴델리에 이어 뉴욕, 워싱턴 DC, 시카고, 로마 등지의 미술관에서 전시되며 강박과 환영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이를 예술로 승화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 Rhiannon Taylor - TRIBE Perth Media Imagery

 

도트는 점이다. 기하학의 관점에서 점은 모든 도형의 궁극적인 구성 요소다. 점은 가장 단순한 도형으로, 넓이도, 길이도, 크기도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위치만 지정되어있다. 때문에 수학자들은 점이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에든 다다를 수 있는 '공백'과 '무한'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우리가 바라보는 모니터와 인쇄물 역시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세한 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수한 점들이 모여 글자와 그래픽을 만들어내고, 우리는 그 점에서 의미와 상징을 읽어내며 울고 웃는 것이다.

 

Ⓒ Samuel Accoceberry - SB26 / Moon collection

 

공백과 무한의 패턴, 도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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