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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

ⓒ Marcel Wanders - Baccarat 체크 Checkered, Checkerboard 인간이 처음으로 토기를 굽고 표면에 빗살 무늬를 새긴 이래, 우리는 여러 가지 무늬로 주변의 사물, 공간을 장식해왔다. 기하학적이거나 자연의 현상을 닮은 수많은 무늬들 중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무늬로 ‘체크무늬’를 꼽는다. 체크무늬는 서로 다른 색의 사각형, 선이 반복적으로 교차하며 규칙적인 패턴을 이루는 무늬로, 소재와 넓이를 가리지 않고 전 세계 어디에서든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체크(Checkered, Checkerboard)’라는 이름은 서양식 장기놀이의 일종인 체스에서 유래했다. ⓒ Doshi Levien 체크무늬가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영역은 패션 산업이다. 누구라도 옷장 속에 체크무늬 셔츠, 체크 스카프, 체크 넥타이 등 적어도 한 가지 아이템은 가지고 있다. 패션의 세계에서는 타탄(Tartan), 플레이드(Plaid), 깅엄(Gingham), 아가일(Argyle) 등 사각형의 크기나 색상, 선의 두께 등으로 구분되는 무수히 많은 체크 패턴이 있다. 이외에도 약간의 변주를 준 다양한 패턴의 체크무늬가 매년 개발되고 있으며, 일부 유명 패션 브랜드는 그들만의 고유한 체크 패턴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현대 사회에서 체크를 한 번도 입어본 적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체크무늬는 대중적이고 익숙하다. 그런데 우리는 대체 언제부터 체크무늬 옷을 입기 시작했을까? 1978년, 타클라마칸의 유적을 연구하던 고고학자들은 한 고분에서 미라를 발견했다. Cherchen man이라 불리는 이 미라는 타탄체크의 레깅스와 트윌 튜닉을 입고 있었고, 갈색 머리에 키가 컸으며 코가 긴 코카시안으로 추정됐다. 타탄체크의 역사와 보존을 위한 단체, Scottish Tartan Authority의 Brian Wilton은 Cherchen man의 복식으로 보아 그가 3,000년 전 스코틀랜드인의 조상일 것으로 판단했고, 추후 DNA 테스트 결과는 그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미라가 입고 있던 타탄체크 레깅스는 비록 인류 최초의 체크무늬 의복은 아니지만, 현존하는 체크무늬 의복 중 가장 오래된 유물이다. 그리고 이 발견은 스코틀랜드인들이 이미 3,000년 전부터 체크무늬를 패션 디자인에 활용했다는 증거가 된 것이다. 스코틀랜드인들은 오래전 부터 씨족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전통적인 체크무늬를 보유하고 있었고, 각 씨족의 문장 대용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 Amit Geron, Pitsou Kedem Architects - In praise of shadows 체크무늬의 장식적 효과는 여러 공간과 사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흑백의 체크 패턴 타일은 고전적인 바닥 장식으로, 클래식하고 중후한 분위기를 연출하거나 벽, 천장보다 바닥에 힘을 실은 공간을 완성하기도 한다. 15세기 유럽에서 유행하던 흑백 체크의 바닥은 주기적으로 시즌과 오프시즌을 반복하다가 최근에도 다시 등장해 상업 공간이나 가정집의 주방을 장식하고 있다. 동일한 규격의 벽돌이나 유리, 자기를 이용해 공간을 장식하는 방식은 손쉬우면서도 여러 곳에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체크무늬는 바닥 이외에도 건축물의 외벽, 담벼락, 실내 공간의 벽체까지 공간 곳곳에 사용된다. ⓒ Antonio-Alcantara ⓒ Ace Avenue - ARFLEX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벽을 바라보며 문득 두려운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인간은 근본적으로 ‘공백의 공포’를 벗어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여러 무늬들 중에서도 체크무늬를 특히 더 사랑하는 것일 수 있다. 상하, 좌우의 비율이 완벽한 체크무늬는 비어있는 공간을 채워 공포감을 없앨 뿐만 아니라 피장식물(被裝飾物)에 안정감과 잘 정돈된 이미지까지 부여하기 때문이다. ⓒ Hastens 체크무늬를 뜻하는 영어 단어 Checkered는 ‘가지각색의’, ‘변화가 많은’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이 두 사전적 의미는 체크 패턴의 가시적인 특징으로 인해 쉽게 유추할 수 있다. 한편, 상징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체크무늬는 이중성(Duality)을 의미하기도 한다. 흑색과 백색 등 서로 다른 컬러가 대조되는 것이 체크 패턴의 골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중적’이게도, 체크무늬의 이런 특징으로 인해 서로 다른 성질의 것들이 한데 모여 이루어내는 ‘조화’를 뜻할 때도 널리 사용한다. ⓒ Normann Copenhagen - Brick 미국의 시인 Henry Wadsworth Longfellow는 우리의 삶을 체크무늬에 비유했다. 밝은색, 어두운색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체크무늬가 희비가 교차하는 인생과 닮았다 여긴 것이다. 우리의 인생을 닮았기에 우리가 더욱 사랑하는 무늬, 체크다.

블루

: Ⓒ Daniel Von Appen 파랑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컬러다. 같은 파랑을 보고 누군가는 시원함을, 누군가는 차가움을 읽어낸다. 누군가는 어렸을 때 보았던 맑은 바다의 색을 떠올린다. 어떤 이는 외로운 파랑새를 발견하고, 또 다른 이는 이 색을 통해 깔끔하고, 단정해 보이고자 한다.각자의 이야기와 생각을 읽어낼 수 있는 색깔이기 때문일까. 많은 연구에 따르면 블루는 보편적으로 인기있는 컬러다. 심지어 ‘빨강’과 ‘황금’으로 상징되는 중국에서도 파랑은 가장 인기 있는 컬러로 꼽힌다. (중국 인민 대학 부설 여론조사연구소 조사, 1996.) 많은 이들은 파란색을 선호하는 이유를 자연과 닮은 빛깔에서 찾는다. 푸르디 푸른, 맑은 날의 하늘 색, 투명하게 맑은 바다의 색이며 우주 저편에서 바라본 지구의 색. 자연에서 우리가 두려움과 경외심, 안정감을 느끼듯 블루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 색에서 차가움을 보지만, 동시에 이상(理想)을 만난다. : Ⓒ Norman Copenhagen 역사 속에서 블루는 어떤 의미였을까. 고대 로마 시대, 파란색은 야만의 상징이었다. 로마에게 파란색으로 치장하고 과시하는 북방 민족은 공포로 다가왔다. 심지어 로마에는 이 푸른색을 일컫는 단어조차 없었다. 그저 전장 위에 썩어가는 시체에 남은 시퍼럼이었을 뿐. 그러나 10세기 이후, 이 푸르름은 성모의 옷을 칠하는데 쓰이며 성스러운 색상으로 여겨지기 시작했고, 청교도의 시대로 넘어 와서는 프로테스탄트 윤리를 새파랗게 상징하기 시작했다. 이는 후대의 언어습관에도 남아 청교도 법을 의미하던 Blue-Law는 엄격함을 상징하게 되었다. : Ⓒ Coco Capitan 근대로 넘어오면, ‘파랑’은 훨씬 더 다양한 상징으로 기능하게 된다. 블루칼라(Blue Collar)는 생산직, 서비스직 노동자를 일컫는 명칭으로, 그들의 푸른색 작업복으로부터 비롯됐다. 청바지가 본래 노동자의 작업복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래서일까. 파랑색은 곧 전문가의 색, 신뢰의 상징이 되었다. 우리는 첫 미팅 자리에서 ‘전문가처럼 보이고 싶으면 푸른 계열의 셔츠를 입어라.’ 같은 조언을 흔하게 들을 수 있다. 삼성과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HP와 IBM 등 기업이 아이덴티티 컬러로 파란색을 택하는 경우 역시 이와 연관되어 있다. : Ⓒ Marcel Wanders 블루칼라가 비사무 노동자를 의미하지만, 역설적으로 정치에 있어서는 그와 반대편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우파(右派)를 뜻한다. 17세기 영국에서 군국주의적 보수주의자들이 창당한 토리당(TORY)이 블루 컬러를 전략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붉은색의 공산주의 진영과 대립하는 푸른색의 이미지는 냉전시대를 거치며 더욱 확고해졌다. 마가렛 대처 또한 이런 전통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파란색을 상징처럼 점유했다. : Ⓒ Norman Copenhagen 대중문화 속 파란색은 어떨까?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건 파란색이 가진 우울함이다. 이는 블루스(Blues)라는 이름의 장르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흑인들이 받던 핍박과 차별을 드러냈던 음악은 이후 록, 메탈, 재즈, 힙합 등, 현대 대중음악의 시초가 되었다. 블루스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장르는 아마 리듬앤블루스(rhythm and blues)일 것이다. 흔히 R&B로 불리는 이 장르는 국내외 대중음악 팬들에게 아직도 많은 사랑을 받는 장르다. : Ⓒ Abdellatif Kechiche, Blue is the Warmest Color, 판씨네마 제공 파랑을 그저 우울함으로 보지 않으려는 시도 또한 있었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Blue is The Warmest Color)]가 그렇다. 파랑은 이 영화에서 정말, 가장 따뜻한 색으로 그려진다. 고등학생 아델이 파란 머리를 가진 엠마를 만나며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단지 사랑 이야기는 아니다. 이들이 만나고, 지치고, 헤어지고, 가슴 아파하는 모습들을 구질구질하지만 밀도 높게 보여준다. 파란색은 이들의 머리로, 또 옷으로 마음을 나타내는 미장센(Mise-en-Scène)이 된다. 이 영화는 파랑을 사랑의 색으로 그려냈다. : Ⓒ Scott Webb 지금까지 역사와 문화 속에서 파란색이 어떤 컬러로 인식되어 왔는지를 살펴보았다. 블루는 때로는 우울이었고, 때로는 안정이었다. 때로는 누군가를 불안하게 하는 색이었고, 누군가에게 편안함을 주는 색이었다. 블루는 때로는 충성심(true-blue)을 의미했고, 가끔은 엄격함(blue law)을 의미했다. 종종 에이스(blue-chip)를 의미했고, 어떤 때에는 새로운 시장(blue ocean)을 뜻했다. 파란색은, 그저 파란색이 아니다. 파랑 그 자체보다 훨씬 많은 의미를 품고 있다.

빨강

Ⓒ Normann Copenhagen - Form Table Cafe 빨강 피, 불, 사랑과 분노의 색 빨강은 우리가 색(色)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연상되는 컬러다. 빨강은 인간의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빛, 가시광선 중 가장 파장이 길기 때문에 우리의 시각이 가장 잘 반응하고 쉽게 눈에 띈다. 이렇게 눈에 잘 뜨인다는 특징과 더불어, 자연 속의 빨간 물질들은 피나 불처럼 강렬한 인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생명, 식욕, 사랑, 섹스, 뜨거움, 정열, 분노, 광기, 공포, 그리고 경고와 금지에 이르기까지 인간 사회 속의 강렬한 여러 관념, 현상,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빨간색을 칠해왔다. 인간은 약 10만년 전부터 골수에서 추출한 지방과 붉은 황토(산화철)를 빻고 섞은 빨간색 합성 물감으로 스스로를 표현하고 장식에 활용했다. 그리고 빨강은 우리의 몸에 피가 흐르고 하늘 위 태양이 타오르는 한 앞으로도 강렬한 상징성을 품은 채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을 것이다. Ⓒ Normann Copenhagen - Geo Series ‘빨강’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물건이 있는가? 어떤 이는 사과를, 어떤 이는 빨간 하트를 연상하거나 소방차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빨강이 인간 사회에서 품는 상징성은 크게 보면 두 가지 빨간 물질, 현상을 뿌리로 두고 있다. 바로 우리의 몸을 흐르는 피와 뜨겁게 타오르는 불이다. Ⓒ Normann Copenhagen - Dustpan & Broom 고대 이집트에서는 피(血)가 단순히 우리의 몸을 이루는 체액일 뿐만 아니라 생명의 본질, 또는 생명 그 자체로 여겨지기도 했다. 때문에 피의 색인 빨강은 오늘날까지도 ‘생명의 색’으로 간주된다. 빨강을 생명의 색으로 보는 견해는 자연스럽게 음식을 먹거나 종족을 보존하고자 하는 모든 생명의 원초적인 욕구 - 식욕과 성욕(혹은 사랑의 감정)을 자극하는 컬러로도 쓰인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패스트 푸드점의 빨간 로고, 혹은 빨간 인테리어 디자인은 고객의 식욕을 자극하고자 하는 컬러 활용의 기술이며, 붉은 입술, 그리고 그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빨간 립스틱’은 여러 예술 작품, 미디어에서 남성의 성욕을 자극하는 심벌로 활용되곤 한다. Ⓒ OFFICIAL - Robert Yu - Civitas Capital Group 우리는 사회적인 통념상 빨강 계통은 뜨거운 색, 파랑 계통은 차가운 색으로 바라보며 여러 색채에 온도감을 부여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회 시스템에서 온수는 빨간색으로, 냉수는 파란색으로 표현한다는 것을 보면, ‘빨강은 뜨거운 색’이라는 인식이 인간 사회에서 얼마나 광범위한 지배력을 가졌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인식은 모든 대륙을 통틀어 불(火)에서부터 기인했다. 한편, 이 ‘빨강은 뜨거운 색’이라는 견해와 빨간색이 가진 자극적인 특징이 맞닿아 우리는 정열, 흥분, 분노, 광기를 표현할 때에도 빨간색을 활용한다. Ⓒ Fabien Verschaere, Red Fish, 2019, acrylic on paper, 42x29.7 cm 현대 사회에서는 흔히 볼 수 있지만, 과거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족, 권력자들만 빨간 옷을 입을 수 있었다. 우선 섬유를 염색하는 빨강 염료가 무척 비쌌으며, 제조 과정 또한 복잡했고, 그 외에도 지배층이 사회의 위계질서를 강화하기 위해 계층에 따라 입을 수 있는 옷의 색에 제한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빨강은 18세기 프랑스 혁명을 기점으로 혁명, 노동자들의 단결, 나아가 사회주의를 상징하는 색이 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에서는 한때 빨강이 암묵적으로 금기시된 적도 있다. ⒸSong Ji Yoon, reddish background_oil on canvas 150x174cm 2015, Lee U Gean Gallery Ⓒ Congy Yuan 한편, 안전색채(安全色彩, safety color)로써의 빨강은 그 우수한 시인성으로 인해 금지, 경고, 위험을 의미하는 신호에도 많이 쓰인다. 초록, 노랑, 빨강 중에 가장 눈에 잘 띄는 신호등의 빨간 신호는 차량, 보행자 모두에게 ‘정지’를 의미하며 보는 이들에게 경계심을 불러일으킨다. 빨간색의 ‘출입 금지’, ‘미성년자 관람 불가’ 표지도 마찬가지로 강력한 경고, 금지를 의미한다. 같은 이유로 소방과 관련된 구조물, 설비 역시 빨간색이 근본이 된다.사람들이 어떤 개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은 언어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우리말에는 새빨갛다, 불그죽죽하다, 벌겋다 등 빨강을 표현하는 수십 가지 형용사가 있다. 또,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터무니없는 거짓을 일컬어 ‘새빨간 거짓말’이라 한다. ‘혈기왕성하다’는 표현은 영어로 ‘red-blooded’다. Ⓒ BD Barcelona - Dalilips 홍등가(紅燈街), Moulin Rouge(물랭 루주: 빨간 풍차를 장식한 파리의 댄스홀, 극장) 등 빨간색으로 성적인 암시를 은유하는 단어들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빨강은 강렬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컬러다. 그 존재감으로 인해 우리의 언어 속에도 빨강은 깊숙이 자리했다. 많은 학자들은 빛과 어둠, 즉 흑과 백 이후에 가장 먼저 이름 지어진 색채를 빨강으로 보고있다. Ⓒ Daria Nepriakhina 사랑과 분노, 권력과 저항, 위험하고 매력적인 아이러니의 컬러, 빨강이다.

키친웨어

“식사하셨어요?”부터 “밥은 먹고 다니냐,” 또 “밥 한 번 먹자.”는 말까지. 한국어 화자에게 ‘밥’은 상대의 안녕을 묻고 기약하는 하나의 인사가 된다. 밥과 음식을 우리는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야 흔하다. 동네 허름한 백반 집부터 그럴 듯한 인테리어의 레스토랑, 동네마다 하나씩은 있는 패스트 푸드점까지. 요즘은 멀리 나가지 않고도 다 배달이 된다. 그러나 일상 가장 가까운 곳에서 우리를 ‘밥’과 쉽게 만나게 해주는 곳은 바로 주방일 것이다. 주방만 있다고 밥이 만들어지나, 아니다. 불이 있어야 하고, 음식을 만들고 먹을 수 있게 돕는 도구가 있어야 한다. 바로 키친웨어(Kitchenware) 말이다. 키친웨어는 좁게 보면 나이프, 포크, 스푼, 팬과 냄비 등을 뜻하지만, 넓게 보면 주방에서 쓰이는 조리도구와 식사 도구의 총칭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최초의 키친웨어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이 오브제의 시작은 최초의 요리에 맞닿아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지난 2004년에는 약 79만년 전의 아슐기 유적에서 인류가 불을 사용해 요리를 한 흔적이 발견된 바 있다. 이때 사용된 화덕, 혹은 막 조리되어 뜨거운 요리를 꺼내기 위해 사용된 도구들이 바로 일종의 ‘키친웨어’였을 것이다. 요리와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 키친웨어의 역사이다 보니, 키친웨어의 역사는 자연스레 주방의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 고대에는 땅에 나무를 쌓아 놓고 불을 붙였고, 그곳이 바로 주방이 되었다. 중세 시대에는 불 위에 금속 가마솥을 매달아 조리를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요리에 필연적이었던 문제인 그을음과 연기는 16세기에 굴뚝이 생겨나며 해결되었다. 주방의 디자인, 또 조리도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스토브(Stove)’의 발명이었다. 1735년 프랑스 디자이너 Francois Cuvilliés의 발명은 요리에 투여되는 노동과 드는 시간을 혁신적으로 줄여주었다 스토브의 도입으로 인해 프라이팬과 냄비는 현대적인 모습, 즉 평평한 바닥과 손잡이를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주철, 구리 등이 당시 프라이팬을 만드는 주재료였으며, 현대로 와서 이는 대부분 알루미늄, 스테인리스강이 차지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포크와 나이프, 스푼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나이프와 스푼의 등장은 음식을 먹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으므로, 상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 할 수 있지만, 포크는 꽤 이질적인 면이 있다. 실제로 포크는 이 세 가지 커틀러리(Cutlery) 중 가장 나중에 등장한 것이다. 15세기 중엽까지는 포크로 찍을 음식 자체가 없었다. 농노들이 먹을 것이라고는 묽은 죽과 빵이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소수의 이탈리아 귀족들이 비싼 옷을 더럽히지 않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도구가 필요했고, 그게 바로 포크였던 것이다. 그러나 ‘신이 주신 음식을 손 이외의 도구로 먹는 것은 불경’이라는 종교적 이유가 더해져, 이것이 테이블 위에 일상적으로 놓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주방도구의 발전, 식사도구의 발전은 곧 요리의 발전이었다. 키친웨어가 없더라도, 일정 수준의 ‘요리’는 분명 가능했을 것이다. 사람은 어떻게든 허기를 채우며 살아 왔으리라. 그러나 요리가 단지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을 넘어 이제 인간의 혀를 매혹하고, 또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키친웨어의 눈부신 발전 덕에 가능했다. 믹서기와 에어프라이어, 전자레인지와 식기세척기까지. 칼럼니스트 Bee Wilson은 그의 저서 [Consider the Fork]에서 궁극적으로 포크의 발전 덕에 요리의 발달이 가능했다고 주장했을 정도다. “우리가 한 시점에 소유한 도구들은 절대적인 의미에서 반드시 음식을 더 맛있게 만들고 삶을 더 편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명이 있는만큼 암도 있다. 많은 역사학자와 사회학자들은 주방도구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1920년대 이후의 여성들이 요리를 포함해 가사에 드는 시간이 늘 일정하다는 역설을 이야기한다. 요즘의 예를 들자면, 에어프라이어의 등장은 예전 같으면 밖에서 사먹었을 튀김류의 음식을 집에서도 만들게 했다. 이는 결국 에어프라이어를 위해 재료를 사고, 음식을 만들고, 이를 정리하는 시간이 들기 때문에 도구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요리에 드는 시간이 줄지는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어쩌면 키친웨어의 역사는 이렇게, 요리의 역사에 비해 대단하지는 않아 보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의의 는 있다. 키친웨어가 없는 삶이란 정말 원시의 그것과 다를 게 없을 것이므로. 팬이나 냄비가 없다면 사람들은 동물을 불 구덩이에 구워 맨 손으로 뜯어 먹어야 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키친웨어는 우리에게 좀 더 위생적인 식사와 다양한 요리를 선물해 주었다. 오늘 먹는 저녁에는 당신 앞에 놓인 도구들이 무엇인지, 얼마나 소중한지 느껴보자. 우리에게 매끼의 식사를 선물해주는 오브제, 키친웨어다.

바닥

ⓒEURO Ceramic - Yaki 바닥 가장 낮은 곳에서 묵묵히 우리를 받쳐주는 흔히 ‘바닥’은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된다. ‘주가가 바닥을 쳤다’던가, ‘잔고가 바닥났다’던가. 우리는 주로 ‘아래’, ‘최저’의 의미로 바닥을 사용하지만, 우리 발밑의 바닥이 없다면 서거나 앉고 걸을 수조차 없다. 우리는 종종 바닥을 무시하고 그 존재를 미처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바닥은 물리적인 관점으로 보았을 때 공간 안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침에 눈을 뜨고 침대에서 내려와 맨발을 딛으면서부터 화장실, 주방, 집 밖을 나서 대중교통, 회사, 식당 등 하루 종일 수많은 공간에 들어서며 그곳의 바닥을 밟는다. 바닥은 감히 천장처럼 높은 곳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거나 벽처럼 당돌하게 마주 서지 않고 가장 낮은 곳에서 우리를 받쳐주고 있다. 그리고 바닥은 우리의 조상이 단단한 대지 위에 두 발을 딛고 서면서부터 지금까지 오랜 세월 묵묵하고 겸손히 주어진 자리에서 맡은 바를 다해왔다. Ⓒ EURO Ceramic - Terrazzo Bucchero 초기 단계의 집은 바닥보다는 천장이나 벽체에 주목했다. 당시에는 집을 지음으로써 우리에게 직접적인 위협인 추위와 포식자, 비와 눈을 막는 것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닥은 흙, 짚, 건초 등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들을 그대로 사용했다. 우리가 바닥으로 눈을 ‘내린’ 것은 천장과 벽이 어느 정도의 발전을 이루고 나서부터다. 외부의 환경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바닥재는 질병이나 습기에 취약했고, 집을 지을 때 바닥 역시 벽체나 천장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 OOIIO Arquitectos - Casa GAS 약 5,000년 전, 고대 이집트인들은 석조 건축물을 지으면서 석재 타일에 색을 입혀 ‘모자이크’ 패턴을 최초로 사용했다. 이는 실내 공간에 별도의 작업을 통해 가공한 장식용 바닥재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 FAIRMONT QUASAR ISTANBUL 한편, 로마제국(기원전 27세기 - AD 476년)의 건축가들은 건축물의 석재 바닥 아래에 작은 공동(空洞)을 만들어 그 아래에서 불을 지피는 방식, ‘히포카우스툼(hypocaust, 하이포코스트)’을 고안했다. 이는 우리나라 고유의 난방방식 ‘온돌’과 비슷한 형태다. 세라믹 타일은 한때 로마제국의 멸망으로 수 세기 동안 제작법이 유실되었으나, 1800년대 중반 유럽에서 다시금 부활해 오늘날까지도 화장실, 주방의 바닥에 사용되고 있다. Ⓒ Estudio A0 - Casa Ortega 목재 바닥재는 중세시대 목조 건축물을 지으면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최초에는 바닥에 널빤지를 가로질러 대는 단순한 형태였지만, 곧 돌이나 금속으로 거친 표면을 부드럽게 다듬은 목재를 바닥재로 사용하게 됐다. 그 후 미려한 장식적 요소가 가미된 것은 바로크 시대(1621-1714), 예술적인 프랑스 세공과 상감 세공 패턴이 부유층 사이에서 유행하면서부터다. 당시의 장인들은 나무 조각을 손으로 깎고 끼워 맞추면서 각각의 패턴이 입체적인 대조를 이루도록 했으며, 염료를 통해 미려한 색의 차이를 뽐내기도 했다. Ⓒ PARADISE SEGASAMMY Co. Ltd 시베리아 지역에서 발견된 Pazyryk carpet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물 러그라고 알려져 있다. 카펫 역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중동과 아시아 지역 등 세계 곳곳에서 그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 페르시아 Safavid 왕조(1502-1736) 시기에는 카펫 짜는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한 시기였다. 당시의 패턴들은 오늘날에도 애용되고 있으며, 여전히 고가의 장식품으로 거래된다. Ⓒ EURO Ceramic - Yaki 우리는 모두 바닥을 밟고 있다. 그리고 지구상에 중력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앞으로도 바닥을 밟을 것이다. 지금 당신이 밟고 있는 바닥은 어떤 소재인가? 원목? 타일? 혹은 대리석이나 카펫? 현대 사회에서 집 안의 바닥재에는 수많은 옵션이 있고, 덕분에 우리가 하루 종일 드나드는 모든 공간은 각각 다른 질감과 색의 바닥으로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우리는 지난 5,000년간 집 안에 다양한 종류의 바닥재를 사용하면서 쾌적하고 아름다운 실내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 Fala Atelier - House in Rua Faria Guimarães 다양한 모습으로 발 아래에서 우리를 받쳐주는 오브제. 바닥이다.

창문

: Ⓒ Pawel Czerwinsk 집을 구할 때 중요히 봐야 할 부분이 몇 군데 있다. 이를테면 방음은 잘 되는지, 물은 잘 나오는지, 교통 조건은 좋은지, 주변에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꼽자면 역시 볕이 얼마나 잘 드는 지일 것이다. 채광이 좋을수록 공간은 쾌적해진다. 충분한 채광에 필요한 것은 적당한 크기의 창(Window)이다. 적당한 크기의 창은 실내 곰팡이나 세균의 번식을 막아줄 뿐 아니라, 통풍과 환기를 통해 실내 환경 개선에도 도움을 준다. : Ⓒ FADD Architects 보안 등의 특수한 이유가 아닌 한, 창이 없는 공간은 없다. 침례교의 목사였던 찰스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은 이렇게 얘기했다. “창문 없는 건물은 집이라기보다 감옥이다. 아주 어두워서 아무도 살지 않는다.” 심지어 감옥에도 창문이 있다. “바깥에서는 70년대의 대망에 모두들 가슴이 부풀고 희망찬 설계가 한창인 모양이지만 감옥에 갇혀 앉아 있는 내게는 고속도로도, 백화점도, 휴일도, 연말도, 보너스도, 친구도 없이 쇠창살이 질러 있는 창문 하나만 저만치 벽을 열어주고 있을 뿐이었다.”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 Ⓒ Nitaprow 인류 최초의 집이었던 동굴에는 물론 창문이 없었다. 동굴은 거대한 자연으로부터 약하디 약한 인류를 보호하기 최적의 조건이었다. 좁고 작은 입구는 맹수의 위협으로부터의 안전을 가져다 주었다. 동굴 이후에는 나무로 집을 만들기 시작했다. 동굴에서 그랬던 것처럼 나무 집 위에서 모닥불을 태울 수는 없었다. 이 집에 네모난 틀(Frame)은 없었지만 마냥 어둡지는 않았다. 얼기설기 엮은 나무 사이로 빛이 조금씩 세어 들어왔기 때문이다. : Ⓒ PARALELO ZERO Architecture 건축물이 구조를 갖추기 시작하면서는 창문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창문을 만들기 위해서는 벽을 뚫어야 했고, 벽을 뚫는 과정은 지지기반이 약해진 위쪽 벽을 무너지게 만들었다. 그래서 건축가들은 창문 위에 길고 두꺼운 돌 혹은 목재로 만든 인방보를 넣어 이를 방지했다. 하지만 인방보가 길어질수록 지탱해야 할 무게도 늘어남으로 부러질 염려가 있었다. 창문의 폭은 자연스럽게 인방보의 길이에 좌우될 수밖에 없었다. 폭이 넓은 창문을 만드는 방법은 더 비싼 석재를 사용해 더 튼튼한 인방보를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가능한 건, 돈이 많은 귀족들 뿐이었다. : Ⓒ FADD Architects 네덜란드와 프랑스는 부유한 이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기 위해 폭이 넓은 창문에 더 많은 세금을 매기는, 이름하여 ‘창문세’를 신설했다. 영국에서는 창문의 개수에 따라 세금을 책정했다. 당시 유럽은 기술이 아직 발달하지 못해 유리가 대량생산되던 시기가 아니었고, 창문을 ‘많이 둘 수 있다는 것’은 즉 ‘돈이 많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윽고 귀족들은 세금을 피하기 위해 창문을 없애기 시작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창문 없는 집에 사는 이들은 우울증과 각종 전염병에 시달려야 했다. 그렇기에 창문이 잠시 사라졌던 이 시기는 오히려 ‘창문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 Ⓒ YYAA 인방보에 의지하지 않고 가로로 긴 창문을 만들 수 있게 된 건, 근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덕분이었다. 그는 벽이 천장을 받드는 구조가 아니라 콘크리트 기둥을 구조체로 삼은 ‘도미노시스템’을 제안했다. ‘가로로 긴 창’을 필로티(Les Pilotis), 옥상 테라스(Le Toit-Terrasse), 자유로운 평면 (Le Plan Libre), 자유로운 파사드(La Façade Libre)와 함께 5원칙 중 하나로 삼았던 르 코르뷔지에는 도미노 시스템과 함께 이전과는 전혀 다른 건축의 패러다임을 만들어냈고, 이는 현재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 Ⓒ 85 Design 창문 없는 공간을 상상하기 어려운만큼, 창은 우리의 언어 곳곳에 하나의 상징으로 기능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만든 OS의 이름부터 이미 ‘윈도우(Windows)’다. 창을 통해 세상 곳곳을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컴퓨터 상에서 어플리케이션을 보여주는 디스플레이 영역 또한 ‘창’이라고 불린다. 창틀(Frame)은 우리의 시야를 제한하고 창틀의 모양대로 세상을 보게 하기에,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는 현대인들이 정치•사회적 의제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본질과 의미, 사건과 사실 사이의 관계를 정하는 틀을 프레임(Frame)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 Ⓒ Daniel Von Appen 창이 없었다면 우리는 문을 나서지 않는 한 바깥의 그 어떤 것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창이 있었기에 우리는 햇빛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을 비출 수 있었고, 신선한 바깥의 공기로 공간 내부의 탁함을 정화할 수 있었다. 창문을 통해 우리는 하늘을, 바다를, 숲을, 거리를 볼 수 있다. 우리에게 자연과 시야를 선물해 준 오브제, 창문이다.

천장

Ⓒ J.C. Architecture, Siam More, Breeze Center, photo by Lee Kuo-Min 천장 머리 위를 가려 공간에 대한 주도권을 갖다. - 하늘보다 가까이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지구 위의 모든 생명체들이 바다에서부터 육지로 올라오게 되면서, 그들은 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비, 세찬 바람과 이따금씩 내리치는 천둥 번개까지 모든 고난을 온몸으로 감내해야 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주(住), 주거공간은 외부 환경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려는 필요에서 출발했으며, 동굴에서 빠져나온 우리의 조상들은 이를 위해 기둥과 벽을 세우고 천장을 만들어 하늘을 가렸다 Ⓒ ALA Architects, Dipoli, Aalto University Main Building, photo by Tuomas Uusheimo Ⓒ ALA Architects, Dipoli, Aalto University Main Building, photo by Tuomas Uusheimo 신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기 전, 하늘은 무언가 신비롭고 전능한 존재였다.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광대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해와 달을 드리우며 사냥, 채집, 추위와 더위, 빛과 어둠을 좌우했다. 이따금씩 벼락을 내리칠 때는 ‘저 위의 존재가 분노하여 우리에게 천벌을 내린다’고 인식되기도 했다. 이렇듯 초창기 우리의 문명은 ‘하늘’을 신성시하고, 우리가 감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보았다. Ⓒ Ménard Dworkind architecture & design, Miss Wong, photo by David Dworkind 그러나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에 두려움을 느끼고,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그 존재를 이해의 범주 안에 두려 한다. 이에 따라 ‘진짜 하늘을 가로막을 수 있는 우리 머리 위의 가짜 하늘’을 만들고자 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 머리 바로 위의 ‘이해할 수 있는 하늘’, 천장(天障)을 만들어냈다. 이것은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고, 그를 통해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 고공디자인, 연세 늘봄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photo by 이종덕 Ⓒ Navigate Design, Morah 초기의 천장은 움집, 통나무 집 등 바깥에서 수고하는 지붕의 반대쪽, 안쪽 면이라는 의미에 그쳤었다. 공간을 구성하며 필연적으로 생성되는 천장의 형태를 극복하고 다채로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조금 뒤, 실내에서도 위를 바라볼 만큼의 여유가 생긴 이후다. Ⓒ Photo by Vladimir Kudinov on Unsplash 중세 시대에는 종교 건축 분야에서 유의미한 발전들이 이어졌다. 중세의 성당은 무거운 석재 천장을 지탱하기 위해 두껍고 웅장한 벽을 이루었으며, 벽과 천장의 무게로 채광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 어둡고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것이 특징이다. Ⓒ Photo by bady qb on Unsplash 한편, 중세 이후 천장의 건축 양식은 격천정(格天井: 격자 모양으로 소란을 맞추어 짠 천장 장식의 방법),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벽화로 대표되는 천장화(天障畵)의 유행이나, 신성한 하늘로부터의 빛 – 햇빛이 건축물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천장을 높이고 길고 큰 창을 만드는 방식 등이 유행했다. Ⓒ Arquitetura Nacional, Estudio Pretto, photo by Marcelo Donadussi ⒸHome(2016), AD+Studio, photo by Quangdam 건축기술이 발달하면서 천장은 더욱 다채로운 형태를 띠게 됐다. 건축물은 층수를 높이며 2층의 바닥이 곧 1층의 천장이 되었다. 또한, 자연에서 하늘이 땅 위로 빛을 내리쬐듯 조명을 천장에 시공해 실내에 있을 때도 햇빛이 머리 위를 비추는 것처럼 위에서 아래로 빛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지금도 대부분 실내 공간은 우리의 머리 위에서 아래로 조명을 비추며 공간 내부를 밝힌다. 이렇듯 근현대의 천장은 외부로부터 우리를 보호함은 물론, 그 이상의 의미와 기능을 가지며 하늘보다 가까운 곳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Studio Modijefsky, The Roast Room, photo by Maarten Willemstein Ⓒ SODA Architects, BLUFISH restaurant, photo by CHEN Xiyu Ⓒ Murado & Elvira Architects, Baiona Public Library, photo by Imagen Subliminal 하늘이 흐리거나 맑거나, 밝거나 어두울 때 우리의 기분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듯, 천장도 다양한 형태로 우리의 공간에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특히 공간에서 천장의 높이가 사용자에게 끼치는 영향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 있다.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의 한 교수는 각각 다른 천고를 가진 방에 피실험자들을 입장시키고 문제 해결 능력을 실험했다. Ⓒ APOLLO Architects & Associates Co., Ltd., GRID, photo by Masao Nishikawa 두 집단 중 천고가 더 높은 방(3m 높이)에서 문제를 푼 A 표본 집단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고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한편, 천장이 낮은 방(2.4m 높이)에서 문제를 푼 B 표본 집단은 정해진 범위의 일을 꼼꼼히 처리하는 데 강점을 보였다. 많은 건축가들과 디자이너들이 그간 공간을 연출하는 방식에 있어 개방감이 느껴지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표현하고자 할 때는 천장을 높게, 아늑한 분위기나 고도의 집중을 요구하는 공간은 천장을 낮게 구성해온 의도가 실험을 통해 실질적인 효과가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DH Design Architecture Inc. Interior Design, Tutorabc Taipei Office and Experience Center 하늘이 내리는 변덕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천장을 만들고, 때로는 천장에 그림을 그리거나 창을 내는 등, 여러 방식을 통해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지게 됐다. Ⓒ OFFICIAL, Civitas Capital Group, photo by Robert Yu 우리의 머리 위를 가림으로써 공간에 대한 주도권을 가져다준 오브제, 천장이다.

계단

Ⓒ Zoltan Kovacs 계단은 근대의 발명품이 아니다. 석기 시대 이후 인류가 ‘건축물’이라고 부를만한 것들을 짓기 시작하면서, 계단은 늘 인류 곁에 있었다. ‘세계 최초의 도시’라 불리는 요르단의 예리코(Jericho)에서는 무려 기원전 8,000년 경 만들어진 계단이 발견되기도 했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와 황허. 문명이 발달한 곳에는 늘 계단이 있었다. Ⓒ Yiyun Ge 인류 최초의 계단은 ‘발자국’이었다고 여기는 시선도 있다. 인간들이 계속 반복해 고저 차가 있는 한 지형을 오갔고, 그 발자국들이 모여 만든 풍화로 자연스레 계단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계단은 ‘물질적 목적을 극대화하기 위한 인공적 도구’라기보다는, ‘자연 지형에 순응해서 맞춘 노력의 산물’이다. Ⓒ Biasol 계단을 다층 건물 내외부를 오르내리기 위한 수단으로 본 ‘기능주의적 인식’은 15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 이전의 ‘계단의 역사’는 계단의 역사라기보다는, 계단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역사에 가까웠다. 고대로 돌아가 보자. 이때의 계단은 ‘하늘을 섬기기 위한 조형물’이었다. 하늘을 향해 높게 뻗어가는 계단은 지극히 종교적인 상징의 역할이었다. 바벨탑과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ziggurat)가 대표적인 예. 이런 시선은 후세에도 남아 Led Zeppelin의 ‘Stairway to Heaven(천국으로 가는 계단)’ 등 곡에 표현되기도 했다. Ⓒ Elii 중세에는 ‘나선형 계단’만이 사용되었다. 로마 문명의 쾌락주의가 점차 쇠퇴하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이 나선형 계단은 점차 거대화돼, 봉건영주들의 지위를 상징하기도 했다. 이는 움베르토 에코가 그의 저서 <기호: 개념과 역사>에서 ‘건축 기호학’에 관해 계단을 예로 들어 설명한 부분에서도 읽을 수 있다. “계단은 그 자체의 기능을 외시하며 그것을 오르는 사람의 지위를 내포할 수도 있다.(화려한 계단, 등대의 나선형 계단 등.)” 대부분 건물 외부에 자리했던 계단은, 이 시기부터 실내에 자리하기 시작했다. Ⓒ Rapt Studio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를 거치며 계단은 점차 정교화되었다. 18세기는 ‘공공성’이라는 개념의 등장으로, 공공물로서의 계단을 비롯한 건축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던 시기다. 19세기에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더 높은 건물’과 ‘더 높은 계단’을 만들어냈다. 건물과 계단이 인류가 엘리베이터에 익숙해진 후, 계단은 불편한 무언가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쉽게 계단을 대체할 것들이 이미 충분히 차고 넘치고, 계단을 오르는 일은 그에 비해 어렵고 힘든 과정이기 때문이다. Ⓒ Fala Atelier 그러나 단층이 아닌 한, 계단 없는 공간을 떠올리는 일도 쉽지 않다. 계단의 대체재는 항상성이 없고, 불안정성을 띠고 있으며 때로는 그 자체가 사고의 위험이 되기도 한다. 전력이 끊어지면 엘리베이터는 단 한 층도 오고 갈 수 없다. 때때로 낡은 승강기에는 추락의 위험까지 도사리고 있다. 계단만이 오래도록 굳건하게 그 자리에서 우리를 위, 또 아래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오늘 온종일 지나친, 또 밟아온 계단의 수를 생각해보라. 아무리 엘리베이터가 발달되어 있다고 한들, 계단 없이 살아낸 날을 단 하루라도 꼽기 어려울 것이다. 계단은 우리를 하루에도 수십번씩 위아래로 이끌며, 우리에게 더 높은 일상을 선물하고 있다.우리에게 다른 높이를 선물해 오브제, 계단이다.

Ⓒ Christian Stahl 문이 없는 공간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그 공간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 공간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그 공간은 다른 세상으로부터 완벽히 격리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문이라는 개념 없이는 공간 자체가 성립 할 수 없다. 그런 건물을 짓는 것 자체가 불가능함을 누구나 알 수 있다. : Ⓒ Biasol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을 한데 모아 우리는 의식주라고 불러왔다. 불확실한 기후와 위험한 환경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옷(衣),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적당한 먹을 것과 마실 것(食).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집(住). 집이 없다면 옷을 갈아 입을 공간도, 안전하게 식사를 즐길 공간도 없다. 또 그 집에는, 안락한 실내로 인류를 이끌고, 닫혀 있을 때는 인류를 보호해주는문이 있다. 문은 인류에게 이렇게나 중요한 존재였다. 인류 최초의 건물은 움집이었다. 선사시대의 인류는 바닥을 파 그 위에 짚과 나무 기둥을 이용해 움막을 만들었다. 출입구(doorway)는 있을지언정, ‘문(door)’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차차 이 움집에서 벗어나 나무를 조금 더 정교하게 다루는 건축이 시작되면서, 문의 역사 역시 시작된 것이다. : Ⓒ Lemur 인류 최초의 문으로 기록된 것은, 기원전 3063년경 만들어진 문이었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발견된 이 문은 153cm의 높이, 88cm의 너비로 포플러 나무로 제작되었다. 이 문은 취리히 호수(Lake Zurich)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피하기 위해 만든 집의 일부였으며, 인근에 존재했으리라 추정할 수 있는 신석기 마을(Neolithic villages)의 흔적이다. 지역에 따라 화강암, 화성암 등의 돌이 문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최초의 ‘석제문’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였던 수메르에서 기원전 2000년경 만들어진 것이 발견되었지만, 무게와 가공의 어려움이라는 특성 때문에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소재가 되지는 못했다. 문자가 생기고 건축이 보다 체계적으로 정립되기 시작한 이후에야 돌과 철, 유리와 나무 등이 공간에 따라 교차하고, 어울려가며 문의 소재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현대에 이르러서 문은 미닫이, 여닫이, 홑문, 곁문 등 고전적 형태 뿐 아니라 폴딩 도어, 자동문 등의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 Ⓒ Daniel Frank 문이 단지 ‘열고 닫는 것’의 역할만 했던 것은 아니다. 문은 상징적으로도 큰 역할을 해왔다. 솔로몬 왕은 궁전의 문을 올리브 나무로 만들어 황금을 입혔다. 왕으로서의 권위와 위세를 자랑하고자 함이었다. 이집트 무덤 속 그림에서도 문은 ‘상징적 의미’였다. 이 그림 속의 문은 당시 내세로 가는 출입구로 여겨졌다. 프랑스의 개선문은 나폴레옹이 세운 것으로, 당시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는 일종의 승전비와 같은 역할을 했다. 국내에서도 문이 상징으로 쓰인 사례가 적지 않다. 돈의문은 일제강점 당시 반일을 뜻한다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훼손되기도 했다. 문은 이처럼 때때로 공간의 주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내는 역할을 해왔다. : Ⓒ Fala Atelier 인류가 오래도록 문과 함께 해온 만큼, 문은 인류의 심리와 정신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들은 때론 환영의, 때론 경계의 대상이 된다. 문을 등 뒤에 두고 일을 할 때 집중도가 떨어진다는 연구는 문이 인간의 심리 속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 Ⓒ Biasol 언어 습관에서도 이는 드러난다. ‘마음의 문을 열다/닫다’라는 비유는 문이라는 것이 인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잘 드러낸다. 비단 한국어 뿐만이 아니다. 영어의 ‘Door of Hope’, ‘Door of Faith’, ‘Door of Love’ 등과 같은 표현 또한 그렇다. 부탁을 거절하는 행위를 ‘문을 닫는 것’에 비유한 심리학 용어를 떠올릴 수도 있다. 작은 부탁부터 시작해 긍정의 대답을 얻어내기 시작하면 큰 부탁에도 쉽게 긍정의 사인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뜻하는 풋 인 더 도어(Foot in the door) 전략, 먼저 무리한 부탁을 한 뒤, 거절 이후 원래 목표로 했던 부탁을 하는 도어 인 더 페이스(Door in the Face) 전략 등이 바로 그 예이다. : Ⓒ MiMool Arguitectura & Design de Interiors 문을 담은 표현은 인류가 문과 함께하는 한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오늘 아침 일어나 몇 개의 문을 열고 닫았는가. 얼마나 많은 문을 지나쳤는가. 헤아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인류는 그만큼 이 오브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고, 이 없이는 생존조차 장담하기 어렵다. 집과 음식, 의복 없이 생존할 수 없듯이. 문은 그렇게 우리를 공간으로 이끌고, 타인으로부터 공간을 보호하며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오고 있었다. 우리를 공간으로 이끌고, 외부로부터 지켜주는 오브제, 문이다.

바퀴

Ⓒ Photo by Terry Jaskiw on Unsplash 선사시대에 발명되어 그 형태를 그대로 간직한 채 오늘날 첨단 기술 속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발명품이 있다. 바퀴는 비록 그 자체만으로 쓰이는 일이 거의 없지만, 일상 속 곳곳에 존재하며 우리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원활하게 기능하도록 돕는다. 수확물을 나르거나 거대한 피라미드를 만드는 일부터 미세한 기계장치를 구동하거나 자동차를 달리게 하는 역할까지. 바퀴는 화학 작용 속 촉매의 역할처럼 인류 산업 기술의 발전을 끝없이 도와왔으며, 중력이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영원히 굴러갈 것이다. Ⓒ Normann Copenhagen 무거운 물체는 밀 때보다 굴릴 때 마찰력이 작아지고, 이에 따라 에너지 효율이 극대화된다. 우리의 조상은 이런 점에 주목해 굴리기 좋은 원통 형태의 목재를 ‘굴림대’로 사용했다. 이것이 바로 바퀴의 원형이며, 세계 곳곳의 고대 문명에서는 구하기 쉽고 만들기도 간단한 굴림대를 통해 무거운 물건들을 나를 수 있었다. 고대 이집트인들 역시 굴림대를 통해 나일강 유역의 대리석을 옮겨 피라미드를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바퀴는 기원전 2000년,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게 되었다. 바퀴통(바퀴 축을 바퀴에 고정시키는 부분)과 테두리 바퀴를 연결하는 ‘바퀴살’이 등장하면서 오늘날에도 흔히 볼 수 있는 바퀴의 형상을 갖추게 되었다. 바퀴살로 이루어진 바퀴는 기존에 사용하던 형태보다 훨씬 가볍고 충격 완화 효과가 좋았다. 바퀴살을 가진 바퀴는 유럽, 중국 등 세계 여기저기에서 사용되었다. Ⓒ Photo by Uilian Vargas on Unsplash 바퀴는 노면과 맞닿으면서 필연적으로 마모된다. 바퀴의 마모 속도를 늦추고자 했던 노력은 기원전 100년경 켈트족이 나무 바퀴의 테두리에 철판을 두르며 시작됐다. 철판을 두른 바퀴는 더 천천히 닳긴 했으나, 딱딱한 철판이 지면의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고 화물이나 탑승자에게 고스란히 전달했다. 적당히 딱딱해서 쉽게 마모되지는 않지만, 적당한 탄성이 있어 지면의 충격을 완화/분산시킬 수 있는 물질. 바퀴에는 그런 물질을 둘러야 했다. 산업혁명은 다른 많은 것들과 더불어 바퀴의 발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848년, 고무의 힘과 탄성을 눈여겨 보던 스코틀랜드의 톰슨(Robert W. Thopmson)은 생고무를 쇠로 된 바퀴에 접목했고, 이윽고 1888년 영국의 수의사 존 보이드 던롭(John Boyd Dunlop)이 공기 타이어를 발명했다. 이런 공기 타이어, 고무 타이어를 자동차용으로 개량한 것은 프랑스의 미쉐린 형제(André& Édouard Michelin)다. 미쉐린 형제의 타이어를 장착한 차량은 자동차 경주에서 우수한 성능을 보였고, 전 세계 자동차 바퀴는 공기압 타이어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금속 휠과 휠을 감싸는 고무 타이어. 당시에 정착된 차량용 바퀴의 형태는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 Photo by Fabio Bracht on Unsplash 자동차, 기차, 손수레를 움직이게 하는 바퀴 외에도 바퀴는 기계부품 속에서 톱니바퀴로 작용한다던가, 작동 형태를 바꿔 도르래로 활용되는 등 인류의 산업 기술 면면에 흔적을 남겼다. 바퀴는 이제 인간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 되어, 부재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며 끊임없이 굴러가고 있다. Ⓒ Normann Copenhagen 스스로의 몸을 지면 위에 굴리며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오브제. 바퀴다.

보석

지표면 아래 깊숙한 곳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시간 동안 까다로운 조건의 열과 압력을 통해 희소성을 지닌 광물이 만들어진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와 아름다움, 그리고 권력의 상징으로도 받아들여진 보석은, 일반적으로 색채와 광택이 아름답고 산출량이 적어 진귀한 광물들을 일컫는다. ⓒ Photo by Carole Smile on Unsplash 그 희소성과 아름다움으로 인해, 보석은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을 물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자연스럽게도 역사 속 권력을 가진 자들은 보석을 얻기 위해 피지배자들의 노동력을 활용했고, 특히 아프리카 등 천연 자원이 보존된 지역에서는 대규모의 보석 광산이 발견된 후 식민지배나 전쟁과 관련된 피의 역사가 쓰여지기도 했다. ©Imagetoday Ⓒ Gems & Gemology Winter 2013 coverdisplays a diamond octahedral crystal in kimberlite matrix. Photo by Robert Weldon/GIA 오늘날 알려진 지구상의 광물은 3,700여 종 이상이 있다. 그러나 아름답고 희귀하여 우리가 ‘보석’으로 여기는 광물은 100종 정도에 그친다. 보석 중에는 지표면 아래에서 형성되는 광물 외에도 진주나 산호, 호박 등 유기체에 의해 발생한 물질도 보석으로 취급되며, 과학 기술이 발달됨에 따라 다이아몬드를 인공적으로 생산할 수도 있게 되었다. ©Pixabay, Bernstein-6579 한눈에 보아도 신비롭고 아름다우며 매우 희귀한 보석. 흔히 장식의 용도로 사용되는 보석에는 다이아몬드, 에메랄드, 루비와 사파이어 등이 높은 가치를 지녔으며, 세공 과정을 거쳐 장신구로 활용된다. 보석은 시대에 따라 유행하는 스타일의 세공법이 있으며, 그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형태를 가진다. 17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1919년 Marcel Tolkowsky가 발전시킨 Brilliant cut은 다이아몬드 세공 방식 중 가장 유명한 형태로, 빛을 받은 다이아몬드의 반짝거림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다이아몬드를 58면체의 다각으로 연마하는 방식이다. Ⓒ 5.42ct oval cut Burmese ruby. Photo by Robert Weldon/GIA. Ⓒ Photo by Michael Kelly on Unsplash 한편, 보석을 세공해서 만든 장신구는 오래 전부터 잡귀를 물리친다거나 착용자에게 건강과 재물,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여겨지기도 했다. 그래서 보석을 활용한 장신구는 고대 인류에 의해 종교적, 주술적인 목적으로도 이용됐으며, 왕권의 정통성을 상징하기도 했다. ©BVLGARI 우리는 더 이상 장신구를 착용하면 건강이나 재물운이 찾아온다고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보석은 개성을 드러내는 패션 아이템으로 사용되거나,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연인들이 선물하고, 탄생석으로 간직하는 등 미신적인 믿음 없이도 상징적인 의미를 간직한 채 우리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BVLGARI 보석 중 모스 경도 10에 달하며 지구상에서 가장 단단한 광물이라고 불리는 다이아몬드는 금속을 절단하거나 레이저를 투과하는 데 쓰이는 등, 공업용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다이아몬드 외에도 많은 종류의 보석이 첨단 기술의 한 축을 차지하며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Pixabay, Diamond-123338 Ⓒ Photo by Krystal Ng on Unsplash 보석이 보여주는 신비한 빛깔과 그 희소성에 우리는 끊임없이 매료되어왔고, 의미를 부여하며 귀중히 여기거나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품어왔다. 그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라고 보아도 무색하지 않을 것이다.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인간 본능의 결정체, 보석이다.

시계

이른 아침잠에서 깨어나면 우리는 가장 먼저 스마트폰의 시계를 본다. 고작 몇 분의 차이로 아침의 출근길은 전쟁터가 되기도 한다. 정신없이 오전 업무를 보다가 시계를 보니 두 바늘은 하늘을 향해 치솟아있다. 많은 직장인들이 허기를 달래려 삼삼오오 모여 인근 식당으로 향한다. 다시 바쁘게 거래처 미팅에, 보고서 작성. 일에 파묻혀있다가 또 시계를 보니 퇴근 시간을 훌쩍 넘겼다. 창밖엔 어느새 해가 저물어 있고 우리는 집으로 향한다. 내일 아침에도 일어나 스마트폰의 시계를 보기 위해. 우리가 하루에도 수백 번씩 들여다보는 시계는, 시계를 들여다보는 그 순간이 하루 24시간 중 얼만큼이나 지나간 때인지를 알려준다. (Ⓒ STUDIO SEBASTIAN HERKNER) 태양과 달과 별자리 자체가 자연의 거대한 시계이기 때문에 시간은 우리가 지구 위에 출현하기 훨씬 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다고 볼 수 있지만, 그것을 측정하기 시작한 것은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나서부터였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을 기록하려던 시도는 차치하고, 하루 중 특정 순간을 파악하고자 했던 인간의 시도는 기원전 3,500년경, 이집트에서 시작됐다. 이집트인들은 태양의 위치가 하루 종일 달라진다는 것과, 이로 인해 땅 위의 그림자도 기울기를 달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때문에 해가 움직이며 막대기나 오벨리스크가 드리우는 그림자의 위치를 통해 하루를 작은 단위로 나누기 시작했다. 이집트인들은 달력의 역법에 근거해 하루를 12시간으로 나누는 등 시간의 개념과 발전에 많은 공헌을 했다. 이들이 측정한 시간의 개념은 천문학과 기계공학의 발달과 함께 크고 작은 변화를 거쳐 오늘날까지도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다. 이외에도 이집트인들은 시간의 측정을 해에만 의존하지 않기 위해 물을 담은 용기에서 물이 빠져나갈 때의 수위 변화로 시간의 흐름을 측정했다. 덕분에 이집트인들은 해가 떠 있을 때에도, 캄캄한 밤에도 시간을 알 수 있었다. 문명의 시간개념에 대한 발전은 이집트인들이 이룬 토대 위에 쌓여졌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널리 알려진 기계시계는 14세기 초, 유럽 등지에서 동력을 사용해 시간을 측정하면서 발전했다. 프랑스의 찰스 5세는 무거운 추와 기어장치를 가졌으며, 높이가 3m 정도 되는 대형 시계를 제작한 바 있다. 이는 현존하는 기계식 시계 중 가장 오래된 시계다. 시간을 측정하는 기술이 발달하며 유럽 대도시의 중심부에는 시계탑, 천문시계 등이 생겨났다. 그러나 당시에는 시계를 개인이 소유하기에 부담이 컸기 때문에 도시 전체가 시간을 공유했다고 볼 수 있다. (Ⓒ NORM ARCHITECTS) 추에 의한 진자 운동도 어느 순간 중력에 의해 느려진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의 기술로 만든 추시계는 시간이 흐르며 점점 정확성을 잃는다는 단점이 있었다. 1927년 미국 벨 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크리스탈 발진기를 응용해서 시계장치를 만들었고, 1970년대 일본에서 상용화된 이래 정확하고 내구성이 좋으며 저렴한 방식의 쿼츠(QUARTZ: 석영, 수정) 시계가 만들어졌다. (ⒸNORMANN COPENHAGEN, KIBARDIN) 현대의 시계는 시각을 표시하는 방법에 따라 아날로그 시계와 디지털 시계로 나뉘고, 작동 원리에 따라 기계식 시계와 쿼츠 시계로 나뉜다. (Ⓒ FORM US WITH LOVE) 대도시의 중심부에나 있던 시계가 생활필수품이 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손목 위를 휘감게 됐다. 단순히 시간을 가늠하던 기계는 이제 개인의 개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여러 디자이너들, 유명 브랜드들은 앞다투어 시계 디자인을 선보여왔고, 여기에 첨단 기술이 더해져 건강상태를 체크해주는 시계라던지, 스마트폰과 연동된 스마트워치가 인기를 끌고 있다. (Ⓒ APPLE INC.) 땅바닥에 꽂혀 그림자를 드리우던 막대기부터 지금 당신의 손목 위에서 수신된 문자메시지를 읽어주는 스마트워치까지. 우리는 시계를 참 많이 들여다보고 사랑했으며 발전시켜왔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이해하고 정의 내리려는 인간의 욕구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 YONOH STUDIO) 오늘도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모두 똑같은 만큼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24시간은 누구에게는 충분하고 누구에게는 부족하기도 하다.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이 없다’며 한탄하는 당신의 손목시계도, ‘하루가 일 년 같다’며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는 당신의 침대맡 자명종 시계도, 모든 시계는 일정한 간격으로 묵묵히 시간의 흐름만을 알려주고 있다. (Ⓒ PHOTO BY GADES PHOTOGRAPHY ON UNSPLASH) 온 세상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과, 그 시간을 보여주는 오브제. 시계다.

필기구

ⒸPhoto by Trey Gibson on Unsplash 역사는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그 기록’이라는 의미다. 유사 이래로 우리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를 겪었고, 그리고 그와 관련된 인물들을 만났다. 우리가 오늘날 이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은 그 모든 일들에 대한 기록이 아직까지 남아있기 때문이다. ⒸCARAND'ACHE 기록(記錄: 후일에 남길 목적으로 어떤 사실을 적음)은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이라고 한다. 혹자는 기록이라는 행위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문명은 지금의 절반 수준도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라고도 한다. 시각적 기호를 고안해낸 이후부터 자신의 발견과 지혜를 기록해 후세에 남겨온 인류. 선대의 지혜를 통해 후손들은 문명을 발전시켜 왔고, 문명의 발전과 함께 필기구도 변화해왔다. ⒸNORMANN COPENHAGEN 초기의 필기구는 염료를 통해 표면에 글자를 남기는 형태가 아닌 표면 위에 글자를 새기는 방식의 도구였다. 중국의 갑골문자를 예로 들자면, 고대 중국인들은 거북이의 등껍질에 갑골문을 새기는 형태로 기록을 남겼다. 한편 고대 수메르인들과 바빌로니아인들은 얇은 점토판에 스타일러스 펜으로 글자를 새기고, 이 점토판을 구워 보관했다. 이러한 방식은 물론 여러 불편한 점이 있었다. 글자가 새겨진 점토판은 무겁고 부서지기 쉽다는 단점이 있다. 때문에 각 문명은 좀 더 편한 방식으로 기록하고, 이 기록물을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MARKET m* ⒸMARKET m* 이집트인들은 기원전 4세기 무렵부터 갈대 펜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된다. 몸통의 빈 공간에 약간의 잉크를 머금을 수 있었던 갈대 펜은 주로 파피루스 위에 그 기록을 남겼다. 이 시기부터 기록물 표면 위에 염료를 남기는 방식의 필기가 시작되었으나, 갈대 펜 역시 그 끝이 금세 마모되어 자주 갈아주어야 했고, 파피루스를 찢는다는 불편이 있었다. ⒸMONTBLANC 깃펜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도록 쓰인 필기도구로 추정되며, 거위, 백조, 칠면조 등 대형 조류의 날개깃을 이용했다. 깃펜이 역사 속에서 최초로 언급된 것은 7세기경, Seville의 성 이시도르의 기록에 의해서다. 잉크를 보유하는 능력이 탁월했고 섬세한 모세혈관 작용으로 정교한 필기가 가능했던 깃펜은 역사 속 수많은 명문(名文)을 남기며 19세기 만년필이 발명되기 전까지 서구권의 역사와 기록을 담당했다. ⒸMONTBLANC ⒸMONTBLANC 깃펜과 철 펜 등은 잉크병에 펜촉을 찍어, 잉크를 머금게 하는 방식으로 쓰였다. 이 방식은 충분한 양의 잉크를 머금을 수가 없어서 필사 중에도 수차례 잉크를 보충해주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종이 표면에 잉크 얼룩을 남기는 일도 잦았다. 펜 자체에 잉크를 머금게 하기 위한 별도의 저장공간이 필요해지면서 만년필이 최초로 등장했다. 만년필은 바디에 잉크 저장고가 달려있어 더 오랜 기간 필기를 이어갈 수 있는 필기도구다. 1884년 미국의 L.E. Waterman이 모세관 작용을 이용한 만년필을 보급했다. ⒸPhoto by Clark Young on Unsplash 우리가 지금도 흔히 쓰는 볼펜은 1888년, John J. Loud에 의해 발명되었으며, László Bíró에 의해 1938년 개량되어 세계에 보급됐다. 당신이 지금 읽고 있는 이 글에서부터, 인류가 이룬 모든 지성과 발전은 그 기록을 후대에 남기려 했던 선조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그리고 필기도구는 역사 속 어느 장면에서도 그들이 남기고자 했던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받아 적었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와 동행해온 오브제, 필기구다.

식기 Ⅱ

2016 corporation ⓒ Arita 식기는 음식을 담는 그릇을 말한다. 음식을 만드는 데에 쓰는 기구와 먹는 데에 쓰는 기구 또한 식기라고 한다. 한식, 일식, 중식, 양식 등 요리의 양식에 따라 식기의 종류가 다르며, 흙을 구워 만든 도자기, 나무를 깎아 만든 목기, 금속을 두드려 만든 금속기, 값싸고 간편한 플라스틱 등으로 만들어진다. 식기는 인류의 의식주와 함께 발전해왔다. STROM COLLECTION ⓒ RAAWII 요리가 유행이 된 것은 이미 오래전 얘기다. 티비를 포함한 여러 매체에서 많은 방송인이 쉽고 다양한 레시피를 선보임에 따라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다. 음식은 단순히 먹는 것이 아니라 즐길 수 있는 행위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음식을 만드는 일은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 온전히 시간을 쓰는 것이다. 마음은 요리와 함께 완성된다. FLATFORM BOWL-1 ⓒ GOODTHING FRANK TRAY-1 ⓒ GOODTHING 주방은 요리하기 위해 구성된 공간이다. 신석기 시대에는 주로 집 한가운데 주방이 있었다. 난방과 조리를 동시에 하기 위함으로, 구성원이 모두 모여 함께 식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주방은 문명이 진화함에 따라 생활 공간과 분리되었다. 늘어난 조리기구와 중요해진 위생 덕분에 공간을 달리 한 것이다. 현대 사회에 이른 지금은 주방의 개념이 모호해지고 있다. 환기 등 청결하게 주방을 유지할 수 있는 기술이 늘었으며, 모든 이들이 당연하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SI KIANG ⓒ RAYNAUD TABLEWARE ⓒ Hübsch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양식기는 언제부터 만들어졌을까? 막연하게 중세시대를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유럽의 많은 나라는 무려 16세기까지 맨손으로 음식을 먹었다. 음식은 커다란 그릇에 담겨 각 계급에 맞게 배치되었다. 당시 귀족 중에는 평생 채소를 먹은 적 없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고기를 귀하게 여겼다. 고기를 자르는 일은 매우 중요해 보통 집안의 가장이 맡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손질된 음식을 받아먹기 때문에 따로 커트러리가 필요하지 않았다. GENERAL SERIES-1 ⓒ GOODTHING 식기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를 거쳐 장식적이고, 세련되게 변화했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음식 예절은 프랑스에서 시작된 게 많지만, 레스토랑의 풀코스는 아니다. 추운 날씨 때문에 중세의 서빙 방식이 맞지 않았던 러시아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는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왕실에서 쫓겨난 요리사들이 레스토랑을 차리며 알려지게 되었다. 스푼과 포크, 나이프 등 여러 식기로 식사를 하는 행위가 비로소 정착하기 시작했다. TABLEWARE-1 ⓒ Hübsch 세계화는 여러 문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만들었다. 인간은 도구와 함께 발전해왔다.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식기가 달라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주방 속 식기는 더욱 다양하고 정교해졌다. 음식을 먹는 행위는 치유의 과정이다. 신경 쓸 일이 많은 오늘, 좋은 식기로 나만의 푸드테라피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식기 Ⅰ

2016 corporation ⓒ Arita 식기는 음식을 담는 그릇을 말한다. 음식을 만드는 데에 쓰는 기구와 먹는 데에 쓰는 기구 또한 식기라고 한다. 한식, 일식, 중식, 양식 등 요리의 양식에 따라 식기의 종류가 다르며, 흙을 구워 만든 도자기, 나무를 깎아 만든 목기, 금속을 두드려 만든 금속기, 값싸고 간편한 플라스틱 등으로 만들어진다. 식기는 인류의 의식주와 함께 발전해왔다. Sonora ⓒ DOIY Cadaques ⓒ DOIY 당신은 공간이 다른 삶을 부여할 수 있음을 알 것이다. 그곳의 좋은 향, 알맞은 온도, 분위기는 우리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공간 속 작은 오브제는 사소할 수록 디테일에 큰 힘을 발휘한다. 타인의 식사를 챙기는 것으로 우리의 안부 묻기는 시작된다. 밥을 먹는 일에는 시간과 돈, 마음이 필요하다. 그야말로 잘 살고 있냐는 물음이다. 좋은 식사는 건강한 재료와 알맞은 타이밍, 그리고 정갈한 식기로 이루어진다. 식탁을 풍성하게 만드는 도구, 식기를 소개한다. Retro selection ⓒ BOWLBOWL 한국의 식기는 수렵과 어로의 식생활 양식을 개발했던 신석기 시대부터 발견할 수 있다. 농경 생활이 시작되며, 음식물의 저장과 조리를 위해 식기가 필요해졌다. 이때 만든 식기가 빗살무늬토기다. 빗살무늬의 빗살은 열을 확산시켜 고르게 굽기 위해 기하학적인 무늬를 그어놓은 것이다. 당시의 사람들은 식수를 쉽게 구하기 위해 물 근처에 살았다. 비교적 무른 땅 위에 뾰족한 빗살무늬토기를 꽂아 다양한 음식을 저장했다. Ellipse Plate ⓒ Ateliersoo Gold Edition Plate S1 ⓒ ateliersoo 청동기시대에 이르러 빗살무늬토기는 민무늬토기로 변화했다. 민무늬토기는 납작한 바닥과 손잡이가 특징이다. 이와 함께 나무로 만든 목기와 칠기류 등이 존재했다. 나무를 깎아서 만든 목기는 가장 먼저 쓰인 것으로 추정되지만, 습기에 약하고 내구성이 약해 유물이 남아있지 않다. 칠기는 기물에 옻칠을 한 것으로, 정교한 무늬를 새기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식기는 삼국시대로 들어서며 사회제도와 주 . 부식의 정착으로 다양해졌다. 상류층이 등장함에 따라 고급스러운 금은기 . 도금기가 등장했다. 또한 주식뿐 아니라 반찬을 담는 고배, 각종 조미료를 담는 기명 등이 있었다. 통일신라는 유약을 사용해 그릇의 질을 높였다. 이는 고려시대에 이르러 재료가 더욱 다양해지고 아름다운 형태를 갖추게 했다. Vintage selection ⓒ BOWLBOWL 한국인 중 ‘고려청자’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고려의 식기는 철기, 금은기, 자기, 놋그릇 등이 있었는데, 단연 청자기는 고려시대를 대표했다고 볼 수 있다. 청자란 비취색의 자기를 뜻한다. 당시 송나라에서는 비취색을 보고 비색이라고 칭하며 빛깔을 신비롭게 여겼다. 또한 고려는 기물에 홈을 파서 다른 재료를 넣어 굽는 상감 기법을 활용해 독창적인 청자를 만들어냈다. Origin selection ⓒ BOWLBOWL 조선시대의 식기는 유기와 백자를 주축으로 발전했다. 조선의 백자는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일본에 전파되어 새로운 문화를 일으켰다. 조선 후기에는 서양문물의 도입과 함께 양은이 식기의 재료로 등장했다. 서양풍의 그릇이 유행함에 따라 전통적인 식기의 생산이 줄게 되었다. 김리오 기자

Fan Candle holder ⓒ BREAKTIME KIT 초는 심지를 삽입한 등화용 연료를 뜻한다. 초창기에는 동물성ㆍ식물성 유지로 이루어졌으나, 현재는 밀랍이나 파라핀 등 적당한 온도에서 녹는 가연성 고체를 성형해서 만든다. 전구가 보급되기 전에 생필품으로서 역할을 했다. 현재는 분위기와 방향, 종교적인 이유로 쓰인다. metallic deco candle ⓒ HASTABLE 공간은 기억을 지닌다. 정전이 났을 때 서랍 깊숙이 넣어 두었던 초를 꺼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캄캄하던 저녁 속 촛불 하나에 의지해 서로를 바라보던 기억, 마치 생일날 케이크에 꽂힌 초 같아서 왠지 모르게 들떴던 시간. 전기가 다시 들어오면 우리는 다시 각자 할 일을 하겠지만, 불이 지닌 따뜻함은 잊기 어렵다. Note Design Studio POV Circle Tealight Candleholder ⓒ MENU 초기의 초는 심지가 없었다. 기원전 3000년경, 이집트와 크레타의 초는 동물성, 또는 식물성 유지를 녹여 정제한 기름에 갈대의 속을 적셔 만들어졌다. 심지를 넣은 양초가 개발된 것은 기원전 1세기경 로마인에 의해서다. 동물성 기름인 수지에 면이나 종이 소재의 심지를 넣어 제작했다. 심지에 불을 붙이면 초가 녹아 심지의 끝에서 기화한다. Erik Olovsson Cube Candle Holder ⓒ MENU 초기의 초는 심지가 없었다. 기원전 3000년경, 이집트와 크레타의 초는 동물성, 또는 식물성 유지를 녹여 정제한 기름에 갈대의 속을 적셔 만들어졌다. 심지를 넣은 양초가 개발된 것은 기원전 1세기경 로마인에 의해서다. 동물성 기름인 수지에 면이나 종이 소재의 심지를 넣어 제작했다. 심지에 불을 붙이면 초가 녹아 심지의 끝에서 기화한다. parrot candle holder ⓒ haoshi design 19세기, 가장 대중적인 초의 원료인 파라핀이 등장한다. 파라핀은 원유에서 석유를 증류한 뒤 남는 기름에 함유되어 있는데, 이를 냉각한 뒤 압력을 가해 여과하면 얻어진다. 비교적 구하기 쉽고, 향의 발산력이 좋기 때문에 가장 대중적으로 쓰인다. 이외에도 식물성 재료로 만든 소이 왁스와 팜 왁스, 합성물인 젤 왁스가 있다. 콩기름에서 추출한 소이 왁스는 식물성 오일로 보다 친환경적이다. 사용할 수 있는 오일이 제한적이고, 색을 넣는데 까다로워 다루기 어렵다. 팜 왁스는 야자수에서 얻은 재료로 다른 식물성 왁스처럼 뒤처리가 쉽고 오염 걱정이 적다. 굳어지는 과정에서 눈꽃 모양의 결정체를 이룬다. 젤 왁스는 폴리마와 미네랄오일의 합성물이다. 이름처럼 촉감이 무르고 투명하다는 특징 덕에 주로 장식용으로 쓰인다. RICHARM Candle Holder ⓒ moemcollection 초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필라는 기둥이란 뜻으로, 둘레보다 높이가 긴 초를 말한다. 티라이트는 작은 알루미늄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컵에 왁스를 부어 만든 초다. 크기가 작은 만큼 연소 시간이 짧지만, 끝까지 태울 수 있어 경제적이다. 용기에 들어있는 초는 컨테이너형이며, 향을 오래 보존할 수 있다. 가늘고 긴 초인 테이퍼는 보통 촛대 위에 세워서 활용한다. 몰드를 이용해 만들 수 있으며, 촛농에 심지를 여러 번 담그는 디핑기법도 자주 사용한다. Street Cat Bread Hoon-chi ⓒ DILETTANT Street Cat Stretching Hoon-chi ⓒ DILETTANT 초는 먼 옛날부터 광원으로서 역할을 맡아왔다. 전기가 보편화된 현재는 공간에 무드를 만들기 위해 쓰거나,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주로 활용한다. 매년 맞는 생일, 결혼식에 올리는 화촉, 나의 권리를 주장할 때까지. 인류는 중요한 날에 촛불을 붙인다. 공간 안의 초는 생활의 질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집안의 냄새를 잡아주며, 좋은 향으로 채우는 것이다. 김리오 기자

Seashell vase ⓒ Los Objetos Decorativos 병은 용기를 나타낸다. 일반적으로 몸통과 밑바닥, 입으로 이루어지며, 목이 몸통보다 좁혀진 형상을 갖는다. 입은 왕관 캡이나 스크루 캡 등으로 밀봉한다. 보통 유리나 플라스틱, 도기로 만들어진다. 병에 담긴 대상에 따라 물병, 꽃병 등으로 불린다. Inked Clay Collection ⓒ Los Objetos Decorativos 당신에게 병이란 단어가 주어진다면, 어떠한 이미지를 연상시킬 수 있는가? 시원한 음료가 담긴 투명한 병이나 생명을 앓게 하는 병이 떠오를 것이다. 이번에 소개할 오브제는 전자다. 처음부터 투명하진 않았던, 병에 대해 알아가 보자. Tricolore ⓒ Sebastian Herkner 병은 헤아리기 힘든 과거부터 존재해왔다. 정확한 기원은 분명치 않지만, 오늘날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병은 이집트의 투트모세 3세가 사용한 향수병이다. 지금과 달리 불투명했던 이 유리병은 금속 봉의 끝에 진흙을 굳혀 병의 모양을 만들었고, 이것을 중형으로 해 용해된 유리 속에 담그거나 유리를 칠해 만들었다. 투명한 유리병은 기원전 1세기경 로마에서 블로잉 기법이 발명되어 탄생했다. 블로잉은 철 파이프의 앞 끝에 유리를 말아 올린 뒤 반대편 끝에서 입으로 바람을 불어 풍선처럼 부풀리는 기법이다. 일일이 입으로 불어 만들던 유리병은 1903년 미국의 M.오웬스가 전자동 제병기를 발명해 대량생산시대로 들어가게 된다. MO S16 H6 ⓒCOMING B 병은 수용한 물체에 따라 이름이 달리 불린다. 무언가가 찬 유리병을 보면 어쩐지 아름다우면서도 깨질 것 같아 조심스럽다. 유려하면서도 견고한 병이 있다면? 플라스틱병은 이를 채워줄 방안이다. 플라스틱병은 유리처럼 투명하며 가볍고 변형이 적어 쓰임이 많다. MO S15 ⓒWHISKY_NEVEUGILLES Les Brode es ⓒCharlotteJuillard 플라스틱 공업은 공기로 부풀게 하는 블로몰딩으로 만든다. 내구성이 필요한 용기에는 경질 폴리에틸렌을, 식품 용기로는 연질 폴리에틸렌을 이용한다. 블로몰딩으로 만든 플라스틱병은 경제적으로 효율성이 높고, 어떠한 형태를 가진 병이든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 이처럼 플라스틱병은 장점이 많아 막대한 생산과 소비를 이끌어 냈다. MO S16 H5A ⓒEVA SOLO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 눈에 애정이 담겨있다고 말한다. 소중한 물건엔 정성이 담겨있다고, 공간엔 기억이 담겨있다고 한다. ‘담다’라는 말에는 마음이 나타난다. 병에 담긴 것은 대부분 스스로 형태를 유지할 수 없다. 유약한 물체에게 아름다운 형태를 선사하는 오브제, 병이다. 김리오 기자

종이

Unstationary ⓒ Ontwerpduo 종이란 식물성 섬유를 나무에서 분리한 뒤, 물 속에서 짓이겨 발이나 망으로 떠서 건조한 얇은 섬유 조직을 말한다. 어원은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라는 풀이다. 파피루스는 단순히 식물의 내피를 가공해 만든 것으로 종이의 기원은 아니다. 종이의 기본 원료는 셀룰로오스이며, 모든 종이에 공통으로 들어가 있다. 면, 아마, 닥, 뽕나무, 짚, 대나무 등 다양한 원료가 제지로 사용된다. JH5 ⓒFormakami 누군가는 종이의 시대가 갔다고 말한다. 실제로 페이퍼리스의 흐름은 시작된 지 오래되었고, 2013년 이후 종이 생산•소비량은 점점 줄어만 가는 추세다. 이는 환경 오염과 비용절감, 효율성의 이유일 것이다. 종이는 정말 환경 오염의 주범일까? 종이의 사용을 멈추지 않는다면 까만 지구에 살게되는 것일까? 사실 우리는 이미 종이를 ‘잘’ 활용해왔다. Airvase ⓒ Torafu Architects 대부분의 종이는 천연 원시림이 아닌 별도의 농장에서 자라는 나무로 만들어진다. 어느 열대림의 우거진 나무가 우수수 밀려 나가는 영상을 한 번쯤 본 적 있을 것이다. 사실 많은 열대림은 농경지를 조성하기 위해 사라진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마존 지역의 산림 또한 약 70%가 대규모 상업 농지로 쓰이기 위해 변한 것이다. 한국은 종이 생산량 세계 5위, 재활용률 세계 1위인 국가다. 특히 재활용률은 90% 수준으로, 대부분의 종이가 사용 후에도 여러 번 쓰인다. 종이는 매립되더라도 분해 속도가 매우 빠르며, 유해 물질이 없기 때문에 토양을 오염시키지 않는 장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생산과정에서 신재생에너지 사용 확대를 통해 기존 47%에 달하던 화석연료 사용량을 11%로 줄여 환경 오염을 최소화한다. Kurage ⓒ Nichetto Studio 종이가 없었을 때의 인류는 나무, 암석, 도자기, 양피지 등에 문자를 표기했으나, 이는 대부분 무겁고 부피가 크며 처리 과정이 복잡하고 값이 비쌌다. 중국 왕실에서는 주로 비단에 글을 쓰곤 했는데, 한두 번 쓰고 비단을 버리는 것이 큰 부담이었던 왕실 재정 담당 환관 채륜은 미숙하던 종이제조법을 체계화해서 종이의 대량생산을 이끌어냈다. 종이의 기원은 이보다 150년 정도 거슬러 올라가 있으며, 주로 마포와 마승 등 넝마를 원료로 만들었다. 중국의 제지 기술은 고구려의 영토가 남만주 일대까지 확장되었을 때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조지사화]에서는 백제에 불교를 전한 마라난타가 제지 기술을 갖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송사]에서 신라의 백무지, 우지, 학청지 같은 종이들이 생산되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다. Timber ⓒ Paperpop 서기 751년, 고구려 유민 출신 고선지는 당나라 군사를 이끌어 이슬람군과 탈라스에서 전투를 벌이다 많은 부하들을 적의 포로로 빼앗겼다. 포로들은 사마르칸드로 잡혀가 제지 기술을 전파하게 된다. 사마르칸드의 제지 기술은 793년 바그다드로, 960년 이집트로, 1100년 모로코로, 1151년 스페인으로, 1420년 인도에까지 확산되었다. 그러나 서양 문물이 수입되는 19세기, 중국 제지술은 정교한 기계와 새로운 연료로 변모되어 다시 동양으로 역수입되기 시작했다. Unstationary ⓒ Ontwerpduo 가장 가까이 있는 인쇄 종이부터 펄프 또는 폐지를 배합해 만든 판지까지, 종이는 2000년간 여러 형태로 우리 곁을 지켜왔다. 일본의 건축가 반 시게루는 종이를 이용해 건축물을 짓는다. 그는 종이를 ‘진화된 나무’라고 부르며 자연재해를 입은 주민들을 위해 임시 주택과 교회를 건설해준다. 이재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아름다운 건축물로 마음의 치유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렇게 지어진 건축물은 단기간에 건설과 해체가 가능해 긴급상황에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Unstationary ⓒ Ontwerpduo 세계적인 가구 제조 기업 이케아는 한국의 두 매장을 포함해 세계 35개국에 약 260여 개의 매장이 있다. 모던하고 트렌디한 디자인, 저렴한 가격 덕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케아의 가구는 골판지를 빼고 논하기 어렵다. 책상, 침대, 탁자 등 일부 제품에 벌집 구조로 엮은 종이를 넣어 만드는 것이다. 또, 간편한 운반을 위해 포장과 배송에도 골판지를 사용하며 효율성을 높였다. 김리오 기자

철&스테인리스 Ⅱ

Krenit bowl ⓒ Normann Copenhagen 철은 원소 기호 Fe, 원자 번호 26번인 원소다. 순수한 금속의 상태로 산출되는 일은 극히 드물며, 수백 개의 광물에서 다른 원소와 결합한 상태로 발견된다. 탄소 함유량에 따라 연철, 선철, 강철, 합금강 등으로 구분한다. 가공성이 뛰어나고, 충격에 강하기 때문에 널리 쓰인다. ⓒKGID,11 Entre Deux 1 세계 여러 나라에서 만들어진 강철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발전했다. 지금까지의 철이 그래왔듯이, 강철 또한 손쉽게 얻어지지 않았다. 다루기 까다로워 소량에도 비싼 가격이 책정되었다. 19세기 중반, 강철을 대량생산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던 영국 제철업자 헨리 베서머는 용광로에 덩어리째 남겨진 선철을 발견하게 된다. 베서머는 용광로에 산소가 많이 들어갈수록 선철 덩어리가 많이 남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덩어리는 아주 단단해 망치로 내려쳐도 선철처럼 깨지지 않고, 연철처럼 무르지 않았다. 지금까지 다룬 철과 다름을 느껴 성분을 분석한 베서머는 강철 덩어리라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 강철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MOJ18 Elettra ⓒFedericaBiasi Mingardo 선철을 녹여 산소를 주입하고, 탄소를 제거하면 강철이 만들어진다. 이발명은 강철의 대량 생산에 혁명을 일으켰다. 이전까지의 강철 제작 과정은 최소 며칠씩 걸렸으나, 베서머의 방법은 불과 30분이면 충분했다. 제작 시간이 줄어드니 연료가 적게 소모되는 것은 물론이었다. 빠르고 경제적인 제강법이 발명되며, 강철은 대량 생산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MOJ18 Elettra ⓒFedericaBiasi Mingardo Verreum Vetroidi ⓒ Nichetto Studio 공간이 주는 힘을 느껴본 적 있는가? 에펠탑에 갔을 때의 일이다. 정교하게 빛나는 에펠탑과 주변으로 빙글빙글 도는 사람들. 소매치기에게 모든 것을 뺏기고 난 후의 나는 허망했지만, 에펠탑이 가진 활기는 나조차 들뜨게 했다. 어쩌면 세계 곳곳에 있는 랜드마크는 보이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NEW OLD DIVIDERⓒMAISON&OBJET ASIA PACIFIC 앞서 말한 에펠탑과 자유의 여신상,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부르즈 할리파까지, 세계의 유명한 랜드마크는 단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현대 건축의 뼈대, 강철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건축에서의 철은 철골과 철근의 형태로 쓰인다. 철골은 구조물의 주체 구조를 형성하는 부재를 말한다. 철근은 철근 콘크리트에 쓰이는 보강근으로, 콘크리트와 최고의 궁합을 자랑하는 부재다. 콘크리트는 불에 약한 철을 보호해준다. 뿐만 아니라 충분한 강도를 갖고 있어 철을 도와 구조재의 역할도 충분히 이뤄낸다. 이렇듯 철은 우리의 공간을 안전하고 아늑한 곳으로 만들어준다. The Grand Reopening ⓒ Normann Copenhagen Amp Chandelier ⓒ Normann Copenhagen 스테인리스강은 강철에 니켈, 크롬 등을 섞어서 발명됐다. 철의 내식성 부족을 개선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스테인리스강은 금속의 비율에 따라 크게 오스테나이트와 페라이트로 나눠진다. 스테인리스강은 부식과 녹에 저항성을 갖고 있으며, 저렴하고 유지비가 적기 때문에 주로 공업용 기계나 파이프 등을 만드는 데 쓰인다. 최근에는 항공기 부품이나 의료용 기구에까지 쓰임새가 넓어지고 있다. 김리오 기자

철&스테인리스Ⅰ

Daily Fiction ⓒ Normann Copenhagen 철은 원소 기호 Fe, 원자 번호 26번인 원소다. 순수한 금속의 상태로 산출되는 일은 극히 드물며, 수백 개의 광물에서 다른 원소와 결합한 상태로 발견된다. 탄소 함유량에 따라 연철, 선철, 강철, 합금강 등으로 구분한다. 가공성이 뛰어나고, 충격에 강하기 때문에 널리 쓰인다. Nocto ⓒ Normann Copenhagen 우리에게 익숙한 철의 시작은 어디일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석기 시대를 지나, 청동기 시대를 거쳐 철기 시대에 이르렀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 철은 지구가 생기기도 전에 생겨난 원소다. 지구는 철을 비롯해 산소와 규소, 마그네슘, 니켈 등으로 이루어졌다. Scissors ⓒ Normann Copenhagen Scissors ⓒ Normann Copenhagen 이 중 중량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철이다. 지구는 지각과 맨틀, 외핵, 내핵으로 이루어졌다. 가장 겉 부분을 감싸는 지각에는 약 5%의 철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맨틀과 외핵, 내핵은 어떨까? 아직까지 인류가 가진 기술로는 맨틀까지도 진입이 어려운 상태이기 때문에 정확한 구성 요소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진과 운석을 분석해 추정한 결과로는 지구의 35%, 특히 내핵과 외핵 대부분은 철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MOJ18 PetiteCollection Mingardo vase & mirror ⓒ Federica Biasi 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를 가르는 것은 불이다. 인류는 진흙으로 만든 그릇을 약 700도에 이르는 불에 구워 토기를 만들어냈다. 이전의 그릇보다 더욱 단단해진 토기 덕분에 인류는 온도가 높아지면 물체가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토기를 더 높은 온도에 굽자 구리가 생겨나고, 구리를 제련하자 청동이 생겨난 것은 모두 우연이었다. 청동기 시대를 넘어 철기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 또한 우연이다. 청동기는 가마 아랫부분을 구멍 내 구리와 주석을 넣고 온도를 높여 만든다. 여기서 온도가 더욱 높아져 1,500도를 넘어서면, 철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전까지 인류에게 철은 하늘에서 떨어진 운철뿐이었다. 필요할 때 언제나 얻을 수 있는 철이 아니었으나, 철을 생산하며 좀 더 많은 사람에게 가까워진 것이다. Alessi CIRCUS ballerina /strongman /thejester ⓒ Marcel Wanders 사실 초기의 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단단하지 않았다. 온도를 충분히 높이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원소가 섞여 있는 산화철 덩어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기술자들은 좋은 품질의 철을 만들기 위해 수없이 철을 제련하기 시작했다. 불에 달군 철을 망치로 때리기를 반복하니 순수한 철이 나왔다. 탄소 함량이 0.1% 이하로, 이를 연철이라 부른다. ALPHABETA ⓒ Nichetto Studio 연철은 무기나 농기구를 제작할 수 없을 정도로 무르다. 이를 고심하던 중국의 대장장이들은 풀무를 개발해 더욱 강한 바람을 일으켰다. 풀무는 일정한 바람을 불어 넣을 수 있는 도구다. 강한 바람은 커다란 불을 불렀고, 액체 상태의 철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이것을 선철이라 하며, 선철을 녹여 거푸집에 부은 것을 주철이라 칭한다. 선철의 탄소 함량은 2%에서 4% 정도다. Palette Desk ⓒ Jaime Hayon 철에 대한 이야기에서 탄소 함량이 왜 중요한 것일까? 철은 탄소 함유량에 따라 성질을 결정할 수 있다. 강도가 강해진 선철은 쓰이는 곳이 더욱 많게 되었다. 농기구뿐 아니라 무기에도 쓰인 선철은 자연스럽게 생산량이 늘어났으나, 너무 단단해 충격을 받으면 쉽게 부러지기 일쑤였다. 인류는 자연스럽게 연철과 선철의 중간 지점을 찾게 된다. 강철이 등장한 것이다. 김리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