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좋아, 동네 한 바퀴
 
창 사이로 부는 바람이 좋다. 딱히 약속은 없지만 일단 나가보기로 한다. 지하철 개찰구를 지나 기둥에 붙여진 노선도를 잠시 바라보다 이내 2호선에 몸을 실었다. 도착한 곳은 홍대입구역 3번 출구. 홍대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연남동은 골목 사이가 다정하다. 때로는 시장이, 때로는 오래된 가게가 그리고 핫플레이스가 오묘한 공존을 이루고 있다. 한때는 내가 잠시 살았던 동네이기도 하다. 최근 서울의 센트럴파크라고 불리는 ‘연트럴파크’가 생기며 더 많은 이들이 찾고, 많은 것들이 생겨나고 있다. 어릴 적 풀 사이 나무 사이에 숨겨져 있던 하얀색의 종이처럼 골목골목에는 미지의 공간이 길목 한 귀퉁이에 놓여있다.
 
홈 패브릭 소품샵 - 잼머의 집
 
02-2256-7720
www.jammer.co.kr
Instagram: @IAM_JAMMER
 
연트럴파크에서 조금 벗어나 건물 뒷골목으로 들어서면 초록색의 대문을 발견할 수 있다. 대문 왼편으로 돌계단이 정갈하게 놓여있는데, 그 끝에는 2층의 오래된 주택이 있다. 정원 한 켠에 ‘잼머의 집’이라고 씌여진 목재 간판이 놓여있는 이곳은 홈 패브릭 소품샵이자 정수인 대표가 거주하는 집이다. 토란잎이 무성한 입구를 지나 문을 열고 들어서면 고주택의 아늑함과 편안함이 느껴지는 공간이 눈앞에 펼쳐진다.

 
잼머의 집은 1층의 쇼룸과 2층 대표의 집으로 이루어져 있다. 쇼룸은 복도를 따라 침실, 드레스룸, 주방 그리고 욕실로 이어진다. 침대에, 옷걸이에, 테이블에 놓여있는 패브릭 소품은 모두 잼머의 집에서 자체 디자인한 것으로 내부의 낡은 격자무늬 천장과 지구본을 연상시키는 엔틱한 조명, 커다란 창가 너머로 보이는 목가적인 풍경과 어우러지며 잼머만의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영화 미술팀에서 일했던 정수인 대표는 요리하기 전 두르는 앞치마가 아닌 입을 수 있는 옷 같은 앞치마를 만들기를 원했다. 감각적인 디자인의 잼머표 앞치마는 요리하거나 집안일을 할 때만이 아닌 평소 일상복 위의 포인트으로도 활용 가능하다. 아이들이 입을 수 있도록 디자인된 앞치마 역시 앙증맞은 디자인으로 쉽게 지나칠 수 없다. 쇼룸은 스튜디오로도 사용 가능해 촬영이나 파티 공간으로 두루 이용할 수 있다.
 
 
 
영국·독일 수입 필름카메라 쇼룸 - 엘리카메라
 
Facebook: #allycameras
Instagram: @allycameras
02-336-0403
www.allycameras.com
 
 
엘리카메라는 영국·독일 수입 필름카메라 쇼룸으로 강혜원 대표가 10년 동안 수집한 컬렉션이 전시 되어있다. 일반적인 쇼룸과는 달리 현장 판매가 아닌 100%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어 주문 시 영국·독일에서 수입해 판매하고 있다. 카메라를 받기까지 2~3달씩 걸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엘리 카메라 구매자에게 참을성은 필수 덕목이다. 현재는 온라인 예약을 중단하고 방문 예약만을 받고 있다.

 
강혜원 대표는 친구들 사이에서 ‘성·덕’이라고 불린다. 이른바 ‘성공한 덕후’. 처음엔 카메라 디자인이 예뻐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영국 유학 생활 당시 굉장히 많은 컬렉션을 보유하면서, 귀국 후 카메라를 모두 집안에 두기엔 무리가 있었다. 2대씩 있는 컬렉션들 중 일부를 중고사이트에 팔기 시작했다. 카메라는 올리자마자 바로 판매. 그렇게 ‘완판녀 엘리’라는 영예로운 별명을 얻게 되고 쇼핑몰을 시작하게 되었다. 카메라들은 지금은 생산을 하지 않는 희귀 제품으로 그녀는 판매보다 체험 프로그램에 집중하고 싶었다. 이에 쉽게 접할 수 없는, 국내에서는 생소한 체험 카메라로 구성해 교육부터 출사, 카메라 렌탈, 필름, 자유촬영시간을 주어 본인이 찍은 첫롤 사진을 현상해 직접 보내주기도 한다. 체험비는 깜짝 놀랄 정도로 저렴해 부담 없이 엔틱한 카메라를 경험해 볼 수 있다. 그녀는 옛날 필름사진집을 볼 수 있는 엘리브러리(엘리카메라+라이브러리)도 준비 중에 있다. 엘리브러리는 연희동에 조만간 오픈할 예정이다.
 
 
 
반 지하의 희곡, 냉정과 열정 사이 - DOING NOTHING

Instagram: @space.dn
 
처음엔 그저 공방이 갖고 싶었다. 그러다 친구와의 약속으로 들르게 된 연남동 골목길에서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했고, 그곳에 작업공간을 마련했다. 우연히 SNS 에 올린 공방 사진이 퍼지고 개인공간임을 몰랐던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왔다. 일부러 찾아준 사람들을 그냥 돌려보내기 미안해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를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편하게 둘러보고 가도록 했다. 그것이 지금의 Doing Nothing(이하 두잉낫띵)이 있게 된 계기다. 그 후 2달 뒤에 카페를 정식 오픈 했기 때문이다.

 
두잉낫띵에 들어서기 전, 입구 옆 팻말에는 이와 같은 말이 쓰여 있다. ‘… 편안한 카페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어느 순간에는 연극 같기를, 또 모든 분들이 연극 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연극을 전공한 형과 바리스타인 동생이 함께 운영하는 곳이란 짤막한 설명도 함께 씌여져 있다. 두 대표는 공간 안에 연극을 담고 싶었다. 사람들이 희곡을 좀 더 가깝게 느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배우가 연출한 무대와 선곡. 18평 남짓한 반 지하 공간은 그렇게 무대로 탈바꿈된다.



두잉낫띵은 때때로 바뀐다. ‘말할 수 없는 비밀’, ‘장화, 홍련’에 이어 이번 두잉낫띵의 무대는 ‘냉정과 열정 사이’다. 컨셉이 바뀌기 전 SNS에 미리 공지했던 이전과는 달리 앞으로는 따로 공지 없이 바뀔 예정이다. 공지 후 순식간에 소모되어버리는 공간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두잉낫띵에서는 극의 주인공이 되어 무대 위 순간을 만끽해주시길 바란다. 인증샷으로 스쳐 보내기엔 너무 아까운 무대이지 않은가.

기사 고민주
사진 김리오
 

 

저작권자 ⓒ Deco Journal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