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부모님 집에서 쓰던 촌스러운 유리잔, 외할머니댁에서 본듯한 오래된 자개장과 장발의 외삼촌이 애지중지하던 LP 플레이어. 최근 몇 년간 유독 향수를 자극하는 복고 스타일이 유행이었다. 그리고 마케팅과 비즈니스 전문가들은 이제 단순한 복고 스타일을 뛰어넘은 ‘뉴트로’가 2019년의 메가트렌드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뉴트로(Newtro)’란 ‘새롭다’를 뜻하는 New와 ‘복고풍의’라는 뜻을 가진 Retrospective(Retro)의 합성어로, 오래된 스타일을 새롭게 즐기는 문화, 방식을 의미한다. 작년 말, 전설적이던 밴드 Queen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Bohemian Rhapsody’의 대흥행 이후 대한민국은 지금 ‘가치 있던 오래된 것들의 재발견’을 주요 키워드로 패션, 영화, 음악, 인테리어와 가전 등 문화산업 전체에 뉴트로가 자리 잡고 있다.
 
오래전 열광하던 무언가가 있었는가? 혹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유행이었다는 무언가에 꽂혀본 적은? 젊은 세대들에게는 새롭고 기성세대들에게는 향수를 자극하면서도 오리지널리티를 간직한 뉴트로 열풍, 아이엑스디자인에서 소개한다.
 
1. Newtro style gaming devices & music players
취미도 복고로 즐긴다, 뉴트로 스타일 게임 디바이스와 사운드 시스템
 
(Ⓒ LOVE HULTÉN)
 
- LOVE HULTÉN
www.lovehulten.com
Instagram: @lovehulten
 
어릴 적 ‘전자오락’ 깨나 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만한 추억이 있다. 친구가 선심 쓰듯 구경시켜주던 게임보이, 패미컴, 그리고 문방구 앞 옹기종기 모여 앉아 동전을 탕진하던 오락기까지. 세월이 흐르고 흘러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 된 게임기지만, 30년 만에 재출시된 추억의 슈퍼패미컴 미니가 200만대 이상 판매됐다는 소식이 들려오는가 하면, 아직도 그 시절의 추억을 잊지 못하고 하나둘씩 ‘유물’을 사 모으는 사람들이 생겨, 당시 몇만 원 하던 제품들이 수백만 원으로 오르는 등 프리미엄이 붙기도 한다. 물론 당시를 경험해보지 못한 젊은 세대에게는 구기술의 한계나 동시대적 감성의 공유가 어렵다는 점이 있지만, 그들이 접해본 적 없는 신선함과 과거의 ‘명작’을 체험할 수 있다는 장점 또한 분명 존재한다. 오래된 기기를 새롭게 재해석한 ‘뉴트로’스타일의 게이밍 디바이스는 어느 세대에게든 매력적인 아이템이라고 볼 수 있다.
 
(Ⓒ LOVE HULTÉN)
 
(ⒸGPO Retro)
 
- GPO Retro
www.gporetro.com
Instagram: @gporetro
 
이번에는 전 세계 인류가 사랑하는 취미, 음악감상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요즘의 우리는 스마트폰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활용해 편안히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음원 다운로드 서비스가 보급되기 전, 우리는 CD와 카세트 테이프,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래전에는 바이닐(Vinyl), LP라 불리는 레코드판으로 우리가 좋아하던 가수의 노래를 들었다. 음반의 크기, 음질과 보급률 등에 밀려 어느새 국내에서는 ‘골동품’ 취급을 받던 LP는 20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생산중단 되기도 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새로운 LP 공장이 다시 문을 열거나 해외 LP 음반의 수입 유통이 원활해지면서 편안함보다도 음악의 소장, 보관에 더욱 상징적인 의미를 두는 이들이 조금씩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GPO Retro)
 
- GPO IS A CLASSIC BRITISH BRAND; THE STYLISH RETRO DESIGNS ARE COMBINED WITH 21ST CENTURY TECHNOLOGY. -
 
그리고 최근 들어 과거의 명반이 다시 유행을 타면서 LP와 LP 플레이어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렇게 음반 시장의 소비 형태가 변화하며, 레트로한 디자인은 간직한 채 USB 녹음, Bluetooth 페어링 등 기술적 진화를 거친 음향기기, ‘뉴트로’ LP 플레이어들이 음악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에게 음악을 즐기는 또 다른 옵션을 제공하고 있다.
 
2. Nostalgic styles meet high-tech Kitchen appliances
최신 기술과 복고의 만남. 가전업계에 부는 뉴트로의 바람
 
(Ⓒ Delonghi)
 
- De'Longhi's unique combination of quality, innovation and design has made the company a world leader in domestic appliances. -
 
- Delonghi
 
분명히 새로운 제품인데 왠지 모르게 친숙하다. 뉴트로가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분야 중 하나는 가전제품 디자인 분야일 것이다. 어찌 보면 가장 시대를 앞서가야 하고 앞다퉈 당대 최신 기술을 적용해야 하는 가전 업계지만, ‘감성’과 ‘디자인’, ‘가심비’를 중시하는 최근 소비자들의 기호를 반영해 1950년대 스타일의 주방 가전 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www.delonghi.com/ko-kr
 
(Ⓒ Smeg)
 
- Smeg
www.smegkorea.com
Instagram: @smegkorea
 
베이글, 해동, 재가열 등 다양한 모드를 지원하는 토스터기나 속도 조절이 가능한 핸드 믹서처럼 단순히 과거 제품의 디자인만 그대로 재현한 것이 아닌, 향수를 자극하는 디자인에 기능 면에서 최신 제품의 편리함은 그대로 갖춘 뉴트로 스타일 주방 가전 제품들은 이미 몇년 전부터 집들이 선물 1위를 차지하거나 주방의 포인트 소품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인테리어나 홈 스타일링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셀프 인테리어로 유명한 SNS스타들의 집, 특히 꾸미기 어려운 주방 한켠에서 도도히 자태를 뽐내는 몇몇 뉴트로 스타일의 가전제품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살림의 민낯이 드러나는 주방이라고 해서 무조건 감추기만 할 필요는 없다. 감각적인 복고 스타일의 제품으로 주방을 채워보자. 편리한 기능까지 더해져 요리하는 시간이 즐거워질 것이다.
 
 
3. Present you the seven good fortunes, small place for the neighbor
주택가 한 켠, 레트로 스타일을 새롭게 해석한 뉴트로 카페. 칠복상회(七福商會)
 
-칠복상회
Instagram: @chilboksanghoe
 
 
 
수유역 뒤편의 한적한 골목길. 전파사와 세탁소, 빌라들 사이로 작고 예쁜 주택 한 채가 서 있다. 얼핏 보면 가정집인 줄 알고 지나칠 수 있는 이곳은, 사실 아는 이들만 아는 ‘칠복상회(七福商會)’ 커피집이다. 짙은 초록색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좁은 마당 사이로 자갈이 깔리고 그 위로 투박한 콘크리트 진입로. 길을 따라 빨간 기와가 얹힌 실내로 들어서면 감각적인 인테리어 디자인과 가구들 사이로 어딘지 모르게 얼핏 얼핏 묻어나는 그리움이 있다.
 
 
 
 
칠복상회는 과거의 감성과 현대의 감각이 공존하는 곳이다. 어두운 목재 바닥과 짙은 초록의 벽지, 그리고 서까래와 대들보가 그대로 노출된 천장은 규모가 크진 않지만, 어릴 적 나의 모든 어리광을 품어줄 것만 같던 할머니 댁을 떠올리게 한다. 가정집을 개조한 이곳은 어둡지만 아늑한 분위기로 볕이 좋은 날이면 깊은 창으로 드는 햇빛, 비가 오면 처마 밑으로 흐르는 빗물과 한겨울이면 정갈한 마당 위로 소복소복 쌓이는 흰 눈을 바라볼 수 있다. 칠복상회(七福商會)라는, 커피집치고 다소 독특한 이 이름은 36년 전 부모님께서 운영하시던 재래시장의 작은 건어물 가게를 근간으로 채규원 대표가 100년을 잇는 칠복상회를 만들고자 물려받았다. 오래전부터 동네 시장에서 이웃들과 인심, 정을 나누던 칠복상회는 이제 그들에게 맛있는 커피와 디저트, 사랑방을 나누는 이름이 됐다.
 
 
4. Newtro style furniture that reinterpreted Nostalgic sense into contemporary style
변하지 않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새롭게 재해석한 뉴트로 스타일 가구
 
(Ⓒ Chals Furniture)
 
- Chals Furniture
www.chals.co.kr
Instagram: @chalsfurniture
 
이미 빈티지 가구, 중고 가구 시장은 활성화되어 있고 개중에는 유명 디자이너의 오래된 작품이 ‘마스터피스’로 취급받으며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다. 그러나 분야를 막론하고 영향을 끼치는 ‘뉴트로’는 가구, 홈퍼니싱 업계에도 새로운 수요를 낳고 있다. 아날로그적 감성과 트렌디한 감각이 더해진 리빙 아이템, 사람들은 그들이 입고, 먹고 마시고, 보고 듣는 모든 것들에서 그러하듯, 생활하며 사용하는 가구에서도 ‘뉴트로’한 아이템에 주목하고 있다.
 
(Ⓒ Chals Furniture)
 
‘옛것’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소재들로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정들을 주는 뉴트로 스타일의 가구들은 일반 가정집에서부터 카페, 레스토랑, 잡화점 등 많은 공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가구라는 것이 원래 관리만 잘해주면 대를 이어 쓸 수 있는 물건이기도 하고, ‘친정어머니가 물려주신 가구’처럼 상징적인 의미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인테리어 트렌드와 미적 감수성이 풍부한 최근의 주 소비층은 단순히 구제, 복고풍 가구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과거의 제품에서 디자인적으로 유의미한 요소들을 부활시키면서도 촌스럽거나 불편한 요소들을 감각적으로 재해석한 새로운 가구, 뉴트로 스타일 가구를 찾게 된 것이다.
 
저작권자 ⓒ Deco Journal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