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chael Craig-Martin_Photo by Caroline True,2014
전시회에 입장함과 동시에 한 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작품을 마주한다. 우리는 글과 함께 작품을 감상하며 '이게 무슨 의미일까?'라는 어려운 고민에 잠기게 된다. 선반 위 물컵과 종이 한 장을 놓고 물컵이 아닌 참나무라니? 이 무슨 엉뚱한 소리인가. 미니멀 아트 이후에 대두한 현대미술의 한 경향인 개념미술에서는 완성된 작품 자체보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나 아이디어만으로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개념미술을 난해하게 느끼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작품을 보는 이들이 생각하고 해석함으로써 완성되는 개념미술에서, 우리는 ‘작품이 무슨 의미를 가졌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림에 숨겨놓은 상징이나 이야기 따위는 없다. 내 작품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아쇠, 각자의 스토리를 만들라!”는 작가의 말처럼 전시를 통해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 나가 보자.

개념미술의 선구자로 꼽히는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Michael Craig-Martin, b.1941)의 전시가 8월 28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전세계 최초 대규모 회고전으로 작가의 1970년대 초기작부터 2021년 최신작까지 총 150여 점의 작품들로 채워졌으며, 개념미술의 상징적인 작품인 ‘참나무(An Oak Tree, 1973)’ 가 아시아 최초로 공개된다. 전시는 총 6개의 테마로 구성되며, 특별히 한국 전시를 위해 제작되는 디지털 포트레이트, 스페셜 판화 및 로비를 가득 채울 월 페인팅 작품 역시 이번 전시의 스페셜 한 볼거리다. 또한 유엔씨(UNC)가 야심차게 준비한 전시로 150여 점의 원화가 주는 감동, 82세 거장의 아트 인생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의미있는 전시가 될 것이다.

 

EXPLORATION

예술의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작업은 예술의 본질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예일대 재학 시절, 1960년대 성행했던 미술사의 일환인 다다이즘, 미니멀리즘, 팝 아트와 같은 현대미술사를 섭렵하게 된다. 마르셀 뒤샹에게 바톤을 이어받아 사물과 이미지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며 얻어낸 해답은 작가의 작품 세계의 근간인 개념미술사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참나무를 시발점으로, 검은색 선으로 간결하게 표현한 초기 작품들을 통해 관람자는 회화적 형식이나 기교보다 물체의 본질에 집중했던 그의 예술적 탐구의 길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LANGUAGE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 도구, 글자 작가에게 알파벳은 언어가 아닌 오브제다. 구조물을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짓듯, 그에게 알파벳은 이미지를 쌓는 견고한 구조물로써 다른 이미지들을 쌓을 수 있는 구조물에 불과하다. 작품 속 알파벳이 조합된 단어와 사물의 이미지는 전혀 연관성이 없으며, 이미지들은 단어에 내포된 사회적 정보를 배반하고 있다. 따라서 작품에 대한 해석은 관람자의 몫이다. 작품에 드러난 글자와 이미지는 서로 호응하지 않고 각각 관람자와 관계를 맺으며 보는 이의 눈과 상상을 자극한다. 제목 또한 ‘무제(untitled)’인 경우가 많으며 이로 인한 해석은 관람자 내부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ORDINARINESS

일상을 보는 낯선 시선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작품은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보다 ‘인공적인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초원의 풍경보다 생활 속에서 흔히 쓰이는 공산품을 작품 속 오브제로 즐겨 활용하는 그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는 사물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주변의 흔하고 평범한 물건의 성질을 이해하는 것이 삶의 본질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작가는 이런 삶 속의 물건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일상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으며, 궁극적인 행복의 열쇠는 결국 자신의 일상 한 모퉁이에 있다는 것을 작품을 통해 미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PLAY

자유롭게 넘나드는 예술적 유희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 설치, 디지털 아트, 판화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폭 넓은 작가이다. 표현하는 매체의 종류는 가지각색이지만, 작품들 속에 담겨있는 아이디어는 모두 하나다. 그것은 표현의 대상인 오브제에 그 어떤 서사도 부여하지 않고 오롯이 ‘이미지’로만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여기서 더 나아가 본질적이고 정해져 있지 않은, 무한한 의미에 대해 관람자에게 되묻는 것을 즐긴다. 이런 작업들은 하나의 예술적 놀이가 되며, 그런 그에게 장르의 한계는 없다.

FRAGMENT

축약으로 건네는 상상력의 확장 마틴은 일상의 평범한 오브제를 주로 작품에 담아낸다. 오브제의 모습을 단순하면서도 정확하게 그리는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맥락, 그림자, 세부 정보를 제거한 후 사물의 부분을 파편처럼 떼어내 표현하곤 한다. 그는 이를 클로즈업(Close-up)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경계(Fragment)라고 말한다. 프레임 밖으로 일부가 잘려나간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작품에 드러나지 않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상상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오브제의 일부만 보고 전체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며, 이러한 호기심은 작품과 작가의 의도에 한 걸음 더 다가올 수 있도록 한다.

COMBINATION

익숙하지 않은 관계가 주는 연관성 작가는 연관이 없는 일상 생활 속 오브제를 차용해 특유의 작품 속 구도를 만들어 낸다. 그의 작품 속에는 원근법이 적용된 물건도 존재하고, 간혹 비현실적인 크기로 키우거나 줄여서 표현한 물건도 있다. 이렇게 생겨나는 오브제 간의 공간은 단순한 간격이 아닌 관람자의 일상 속 경험을 일깨워 물체 간의 공감각으로 확장된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각 사물에 스토리텔링의 가능성을 부여하고 서로 대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울러작가는 본인의 작업을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닌 ‘2차원의 조각’이라고 표현한다.

INFO. 글.사진 임 정 훈 기자

전시명:《영국 현대미술의 거장 :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展

전시 기간: 8월 28일까지

전시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F

전시 시간: 10시부터 19시까지(18시 입장 마감)

문의: 02-733-2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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