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정시계는 30년간 시계에 관련된 사업을 펼친 기업이다. 이번 사옥의 신축은 시간이라는 적층의 개념을 잘 담아낼 수 있는 전벽돌로 이루어진 덩어리의 분절이다. 원형의 큰 구조물은 2개의 지하층과 3개의 지상층을 연결하는 큰 고리이며, 진입부의 볼륨을 들어 올리기도, 사용층의 볼륨을 내려놓기도 하는 건물 내.외부의 중요한 디자인적, 구조적 요소를 담당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 이들이 만들어가는 장소와 기억에 대한 생각을 담아내고자 했다.



Q. 최초 디자인 컨셉은 어떤 의도였는지?

A. 특별한 컨셉이라기 보다는 기업의 아이덴티티가 충분히 표현되길 바랐던 클라이언트의 의견을 먼저 들었어요. 그래서 삼정시계라는 기업의 역사와 미래 같은 것들을 잘 담아낼 수 있는 건물로 만들고 싶었고요, 그래서 시간이라는 개념과 역사라는 측면에서 클라이언트와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조금씩 방향이나 어떤 큰 틀을 잡아갔죠. 시계를 전문으로 다루는 기업이니까, 시계에 대한 이야기도 담아내고 싶었고요.

Q. 클라이언트와는 어떤 대화를 주로 나누었나?

A. 기업이 벌써 30년 가까이 된 기업이라 그동안 이 기업이 쌓아온, 이 기업에 쌓여있는 역사가 있잖아요. 시간이라는 것이 그냥 흘러가 버리는 것이 아니고 쌓이고 쌓여서 결국에는 어떤 층위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삼정시계라는 기업이 30년이라는 시간을 그냥 흘려보낸 것이 아니라 삼정시계만의 시간이 쌓이고 쌓여서 어떤 층위를 만들어 냈고, 그런 것이 바로 기업의 아이덴티티나 개성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고요. 그런 이야기를 나눴어요. 기업의 쌓여온 시간과 역사, 그리고 시간이라는 것이 과거와 현재도 있지만, 미래도 있잖아요. 지난 시간을 바탕으로 또 어떤 기반으로 삼아서 앞으로 또 쌓여갈 시간, 기업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 같은 거죠.



Q. 그 이야기, 시간과 역사, 미래를 통한 기업과 공간의 아이덴티티는 어떻게 표현되었나?

A. 그런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서 제가 시도한 것들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지는 것은 아무래도 소재인 것 같아요. 워낙 또 요즘 들어 벽돌이 많이 쓰이기도 하지만, 시간이라는 것이 흐르고 마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거라고 생각해서, 벽돌을 한 장 한 장, 한 층 한 층 쌓았어요. 벽돌을 선택한 것은 그런 의미가 있었어요. 클라이언트도 좋아해 주셨고요. 그리고 미래를 표현하기 위해서, 미래지향적인 모습을 표현한 것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모르고 넘어갈 수 있는데, 건물 전체가 기둥 하나에 받쳐져 있어요. 구조적으로 아주 큰 원기둥이 지하에서 지상까지 각 층을 다 받치고 있는 거예요. 이런 것이 사실 기술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다양한 전문가들과 협력하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할 수 있었죠. 이런 것을 통해서 미래지향적이고 기술 지향적인 이미지와 기업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했죠.



Q. 시계에 대한 이야기는 어떤 것이었나?

A. 우리 주변에 보면 정말 많은 것들이, 어쩌면 거의 모든 것이 다 변했잖아요. 이제는 만년필을 쓰는 사람도 없고, 타자기를 쓰는 사람은 더더욱 그렇고요. 스마트폰, 그 전에는 휴대전화라는, 시계를 대체할 수 있는 좋은 것들이 많이 있는데, 시계는 변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자리에 있어요. 시계처럼 너무 눈에 띄지 않고,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화려하지 않고, 정직하고 반듯한, 담백한 공간이 되기를 바랐어요. 조용하고 묵묵해서 잘 인식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분명히 그 자리에서 꾸준히 살아있고, 시간을 쌓아가는 그런 시계의 이미지죠. 그래서 과장되거나 화려하지 않도록 최대한 간결하고 담백하게 비워내려고 했어요. 디자인을 했지만 언뜻 디자인을 하지 않은 것 같은, 담백한 느낌을 줬죠. 또 시계라는 것이 항상 첨단기술, 하이테크 그런 이미지를 갖고 있잖아요. 그런 부분도 살리려고 노력했어요. 앞서말씀드렸던 원기둥으로 건물을 받치는 구조가 기술적으로나 또 의미의 영역에서 그런 이미지를 표현한 부분이기도 하고요.

 


Q. 담백하고 균일한 느낌의 공간과 시간.시계라는 이미지가 잘 어울린다. 어려운 부분은 없었나?

A. 어렵다기보다는 고민을 많이 했던 부분이 있어요. 일단은, 계단 난간의 디테일이나, 화장실 세면대처럼 구석구석 사소한 곳까지 격자형 구조가 반복되는데, 이런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구조를 통해서 균일하고 반듯한 이미지, 은은하고 정직한 이미지를 표현하려고 했는데, 반면에 공간이 너무 반듯하고, 정직하게 클래식하기만 하면, 지루할 수가 있잖아요. 그래서 중간중간, 구석구석에 파격과 위트를 줬죠. 계단실 천장에는 포인트로 컬러를 줘서 오피스 공간의 딱딱함을 일정 부분 해소하고, 위트를 느낄 수 있도록 했고요. 건물의 입구를 마치 다리를 건너듯이 표현해서 즐거움과 새로운 느낌을 주려고 하기도 했어요. 지하를 지하 같지 않도록 표현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했고요. 또, 창 옆에 달린 판이라고 할까요, 디스크 같은 것들도 잔잔함 속에서 위트를 줄 수 있는 장치에요.



Q. 그렇지 않아도 묻고 싶었다. 창 옆에 있는 구조물이 인상적인데, 어떤 장치인가?

A. 창문들 옆에 금속으로 된 판을 하나씩 설치했어요. 목적이라고 한다면, 단순함 속에서 미묘한 다양함을 주려고 한 것인데요. 창문들이 다 똑같은 위치에 똑같은 방향으로 있잖아요. 그래서 창문을 보면, 어딜 가나 똑같은 방향으로 난 똑같은 모양, 똑같은 크기의 창이기 때문에, 원래는 어느 창문을 봐도 거의 비슷한 조망이 보여요. 그런데 그 옆에 반사가 되는 판을 설치하면, 똑같은 창을 바라보지만 내가 어디에 서 있고, 어떤 창을 보느냐에 따라 조망이 달라져요. 창으로 햇빛이 들어올 때면 그 해가 들어오는 모양, 그림자 같은 것들이 완전히 같지 않고 미묘하게 조금씩 다르죠. 단순함으로 표현되는 다양함이라고 할까요. 그런 느낌, 그런 요소를 공간에 주려고 했어요.



Q. 작업을 통해 추구하는 가치나 방향은 어떤 것이 있는지?

A. 많은 공간을 만들어왔지만, 제가 항상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말하자면, 내부 중심적이에요. 내부에서 바라보는 이미지가 어떤지,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공간을 통해 풀어내고 소화해내는지를 먼저 고려하고, 그다음에 그런 내부의 요소와 상황이 반영되는 것이 건물의 형태라고 생각하고요. 건물의 형태는 웬만하면 단순하고 담백한 것을 선호해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그리고 만들고 싶은 좋은 공간이에요. 멋있거나 화려한 그런 것은 아니어도 좋은 공간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예를 들면, 창문의 모양이나 크기, 방향 그런 것들도 외부에서 조형적으로 어떻게 보이는지도 중요하지만, 내부의 환경을 만드는 데에 많은 영향을 줘요. 주택 같은 경우는 창문으로 공기가 원활히 순환할 수 있도록 그리고 빛이 어떻게, 얼마나 들어오는지를 생각하면서 만들어야 하잖아요. 그런 점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외부에서 보여지는 모양만을 생각한다거나 혹은 뷰, 전망만을 생각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것이 설계를 하면서는 어떤 순간적인 강렬한 인상을 줄 수는 있겠지만, 주택에서 실제로 거주하고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분들을 생각한다면, 그것도 물론 나름의 의미와 가치가 있지만,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스스로 경각심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조심하려고 해요.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가?

A. 저는 저 스스로를 예술가라기보다는 한 명의 직업인이고 어떤 테크니컬한, 기술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처음에는 저도 미적인 요소에 집중하거나 저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이 있었어요. 지금은 이제 그런 것을 덜어내고 실제 사는 사람, 사용하는 사람을 위한 공간, 사람이 살기 좋은 공간을 만들려고 노력해요. 앞으로도 이런 생각을 지켜갈 것 같아요. 담백하고 솔직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려고 해요. 디자이너를 위한 공간이 아닌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기사 노일영
저작권자 ⓒ Deco Journal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