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시장>은 막을 내렸고 덕수와 그의 삶을 담은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 있다. 부산에 있는 국제시장과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여전히 숨 쉬고 있다. 온 국민의 사랑을 받은 영화 <국제시장>을 보며 국제시장의 진짜 모습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영화 <국제시장>과 영화의 배경인 국제시장을 잊을 수 없는 이들을 위해 부산으로 떠나보자.




 
부산역에 서서 시카고를 생각하다.
 
한국에 도시가 서울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부산이 너무 멀다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한국에는 크고 유명한 도시가 많다. 특히 부산은 외국인들에게는 서울만큼이나 유명한 도시이다. 외국의 한국 여행안내 책자에선 서울만큼이나 부산을 비중 있게 다루곤 한다. 우리가 시카고와 샌프란시스코를 지방도시라 생각하거나 촌동네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미국이라고 생각하듯이 외국인들은 서울 못지않게 부산을 곧 한국이라 여긴다. 그런데 우리는 어쩌면 부산을 너무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워싱턴DC에서 시카고까지는 약 1,000km가 떨어져 있다. 그에 비하면 서울과 부산은 그 절반도 안 되는 거리에 있으니 정말 가깝지 않은가? 부산은 멀지 않다. • 부산역 광장의 사진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틀림없이. 어떤 이유에서든 부산에 오는 사람들은 꼭 한 번씩 사진을 찍게 되는 곳이다. 특히 기차를 타고 부산에 도착했다면, 거의 틀림없다. 다들 비슷비슷한 사진을 찍어야만 하는 뻔 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 흔함과 진부함을 알면서도 왠지 그렇게 되는 무언가가 있다. 흔하고 진부한 것 같지만 어쩐지 외면할 수 없는 곳, 부산은 그런 곳이다.
 





 
이방인의 기억을 나르는 부산의 전철
 
부산에서 전철을 타는 건 특별한 경험이다. 부산의 전철은 30년의 역사만큼 쌓인 이야기도 많고 그만큼 간직하고 있는 오랜 풍경도 많다. 이제 서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종이로 된 전철표도 그중 하나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영영 볼 수 없게 된 종이 전철표가 전국에서 유일하게 부산에만 남아있다. 이 종이 전철표 한 장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을까. 마음 깊이 묻어둔 풍경, 그 시절로 가는 표가 있다면 분명 이렇게 생겼으리라. ‘삑’하고 찍히는 교통카드로는 갈 수 없는 곳이 있다.
 
이 종이표가 특별한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종이표를 써본 사람은 알겠지만, 전철역에서 나올 때는 개찰구에서 표가 다시 나오지 않는다. 돌아오지 않는 종이표에 메모를 남겨두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표와 함께 메모도 돌아오지 않았다. 어떤 메모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오래된 일이지만, 망연자실하던 내 마음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다. 돌아오지 않는 것도 있지만 남아있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부산 전철엔 종이표가 남아있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내 지난 이야기도 남아있다. 낯선 장소에서 오래된 기억을 발견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닌지라 괜히 부산이 애틋해졌다.
 






자갈치 시장은 손이 곱지 않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을 잡고 시장에 가면 어머니는 꼭 생선을 한두 마리씩 사고는 하셨다. 어머니께서 생선가게 주인아주머니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나면 아주머니가 커다란 도마 위에 생선을 올려놓고 도마만큼이나 커다란 칼로 생선을 툭툭 ‘끊어’주곤 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렇게 가게 주인과 얘기를 나누고 생선을 툭툭 ‘끊어’주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된 것이. 아마 우리 집이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난 이후였을지도 어쩌면 집 근처에 대형마트가 생긴 이후일지도 모르겠다.
 
자갈치 시장엔 여전히 생선을 ‘끊어’ 파는 사람들이 있다.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보았더니 생선이 아니라 생선과 칼을 잡은 고무장갑이 먼저 보였다. 그 고무장갑 안에 어떤 손이 들어있을지 궁금했던 것은 여기저기 카메라를 들이대던 어린 관광객의 하얗고 고운 손이 인상 깊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문득 놀라웠던 것은 이곳이 나와 같은 관광객들에게는 그저 구경거리이고 관광지일 테지만 누군가에는 삶의 터전이고 생업의 전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이다. 다시 둘러본 시장에는 손님보다 관광객이 많았고 검은색 비닐봉지보다 검은색 카메라를 든 손이 더 많았다. 카메라를 든 손은 하나같이 하얗고 고왔다. 카메라가 아닌 칼과 생선을 쥔 저 손이 거치리라 쉽게 짐작한 것은 검은색 비닐봉지를 든 다른 손들이 다들 거칠었기 때문이다. 생선과 칼, 비닐봉지가 들린 시장의 손은 곱지 않았다, 우리 어머니들만큼이나.
 






향수가 지독한 거리
 
시장을 둘러보니 여기저기 쪼그리고 앉아있는 어르신들이 보였다. 수첩을 정리하는 할머니도 계셨고 앉아서 생선을 자르는 아주머니, 담배를 피우는 분도 계셨고 핸드폰을 보는 분도 계셨다. 덕수의 어머니가 작은 방에 쪼그리고 앉아 바느질하던 모습이 기억났다. “막순이 얘기하면 맘이 찢어지지만……. 엄마는 그래야 하니까…….” 엄마는 그래야 한다고 담담히 말하던 덕수의 어머니와 여기저기 앉아있는 누군가의 어머니들이 겹쳐 보였다. 별일 아니겠지만, 아마 그들은 즐겁거나 아무렇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 있겠지만, 괜히 마음이 찡한 것은 언젠가 엄마는 그래야 한다며 슬픔을 꾹 누르고 살았을 우리의 어머니들이 여기 시장에 너무 많아서 일 것이다, 덕수네 어머니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자갈치시장에선 바닷냄새가 났다. 바닷냄새라고는 하지만 해수욕장에서 나는 냄새와는 사뭇 다른 냄새다. 여기선 좀 더 진하고 원초적인, 건강한 냄새가 났다. 이곳은 영화 <국제시장>에서 덕수가 한때 일하던 곳이다. 독일로 떠나기 전, 성긴 피부의 덕수는 이곳 자갈치 시장에 잘 어울렸다. 순수하고 건강한 그에게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곳이 있을까. 어쩌면 이 바닷냄새는 덕수의 냄새일지도 모르겠다. 바닷가라서, 부산사람이라서 또는 남자라서 나는 냄새가 아닌, 순수하고 건강한 사내이기에 나는 냄새. 지금 자갈치 시장을 터전으로 삼은 이들에게도 같은 냄새가 난다. 순수하고 건강한 냄새, 내 손을 잡고 시장을 돌던 어머니의 냄새, 어머니와 흥정하던 시장 아주머니의 냄새. 이곳엔 향수가 진하다.
 




 

국경을 횡단하는 사다리
 
자갈치시장에서 국제시장을 가려면 BIFF광장을 지나야 한다. BIFF광장으로 가는 길은 횡단보도 하나로 나뉘어있다. 자갈치시장 쪽 횡단보도에 서서 길 건너 BIFF광장 쪽을 보니 화려하고 번화한 모습에 갑작스레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영화에서 독일을 다녀온 덕수는 마침내 국제시장에 있는 꽃분이네를 인수한다. 그의 인생에 가장 드라마틱한 상승이 이루어진 순간이 아니었을까. 자갈치시장에서 상자를 만들어 나르던 덕수가 국제시장 꽃분이네의 사장님이 되는 동안, 이국의 갱도에서 보낸 그 긴 시간 동안, 그가 건넌 것은 결국 이 횡단보도 하나였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 걸음, 한 걸음 꽃분이네로 향하던 그의 길이 얼마나 고된 길이었을까, 길 건너 높이 솟은 건물들이 멀게만 느껴졌다. 발밑에 그려진 사다리 하나를 건너기 위해 목숨을 걸고 돈을 벌어야 했던 덕수를 생각하니 이 길을 밟는 내 걸음이 너무 가벼운 것은 아닐까, 괜한 자책이 들었다.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는 일이 마치 이국으로 건너가는 길인 것처럼, 높은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어색하고 무겁기만 했다.
 
길을 건너 BIFF광장에 들어서면 영화 속 달구가 만든 대영시네마가 있고 그 앞에 번화한 시가지와 수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번화함과 화려함만을 놓고 보면 사실 서울의 여느 거리와 다르지 않다. 번화하고 복잡한, 외국인과 내국인이 함께 북적이는 모습은 서울의 명동 거리와 구별하기 쉽지 않은 정도이다. 부산이 처음인 사람들은 이런 모습에 놀라곤 한다. 지방이라는 생각에 서울과 다른 무언가를 기대했던 사람들이 적잖이 실망하는 일도 흔하다. 그래서일까, 일상과 다른 무언가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일상과 다를 바 없는 다른 이들의 일상에 쉬이 지쳐버리는 것은. 일상에서의 탈출을 위해 부산을 찾는 이들에게 부산은 어쩌면 친절한 도시가 아닐 것이다. 자갈치 시장에서 느꼈듯, 부산 또한 많은 이들의 일상으로 가득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서울을 떠나 서울로 돌아가는 길목에 있는 부산이지만, 덕수에겐 북국의 갱도와 남국의 전쟁터에서도 언제나 돌아가야만 할 곳, 집이 바로 부산이니 말이다.





어머니의 밥상과 아내의 자리
 
국제시장은 특별한 인사말 하나 없이 뭉근히 우리를 반긴다. BIFF광장의 많은 볼거리를 보며 사람들 사이를 정신없이 걷다 보면 문득 변해버린 풍경을 느끼게 된다. 국제시장에 들어선 것이다. 국제시장이 우리를 맞는 법은 그렇게 말없이 늦게야 들어온 자식에게 조용히 밥상을 내는 어머니를 닮았다. 자갈치시장에서 BIFF광장으로 들어서며 느꼈던 경계와 월경의 기분을 느낄 새도 없이 들어선 국제시장.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광장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시장인지 알 수 없는 경계의 부재와 어머니의 손금처럼 깊이 팬 골목들이 국제시장의 시작이고 끝이다. 헤아릴 수 없는 어머니의 그 마음처럼. 쉽지만 복잡하고, 어렵지만 단순하다.
 
덕수가 처음 가족과 함께 피난을 떠나던 순간부터 더는 아버지를 기다릴 힘이 남지 않게 된 날까지 국제시장은 늘 그곳에 있었다. 누구에게나 제 생보다 긴 시간은 영원인 것처럼 그에게 국제시장은 영원이었으리라. 그래서였을까, 언제나 덕수가 부산으로 돌아간 것은. 독일에서 또 베트남에서 돌아왔을 때도 그의 귀국길은 부산으로 향했다. 반드시 돌아가야 하는 이유가 있는 곳, 부산이 그랬다. 덕수를 기다리던 어머니의 자리가 어느덧 부인인 영자의 자리로 바뀌는 동안에도, 독일로 또 베트남으로 떠났던 덕수가 결국엔 돌아와 다시 아버지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국제시장은 늘 거기 있었다. 누구에게나 기다림은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에게 반드시 돌아가야 하는 이유가 된다는 것은 반드시 기다려야 하는 약속과 함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힘든 약속을 덕수는 그리고 어머니와 아내 영자는 평생을 지켰다, 이 국제시장에서, 이 부산에서.
 




정상에 오르는 방법과 헤아릴 수 없는 유산
 
용두산 공원에는 산을 오르는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산을 오르는 것은 꼭 우리의 압축성장과 닮았다. 안전하게 산에 오르려면 산을 둥글게 둘러 올라야 하지만 빨리 오르기 위해선 직진으로 올라야 한다. 더 위험하고 더 힘들지만 빠르게 오르려면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네 어르신들의 삶이 그랬다. 안전하고 편하게 살기보다 힘들고 위험해도 빨리 잘 사는 세상을 자식에게 남기고자 택한 어쩌면 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은 성공이라는 산을 처음부터 끝까지 꿋꿋하게 직진해 올라야 했다. 그네들이 힘겹게 산에 오르며 남겨준 유산 덕에 편하고 빠르게 산에 오를 수 있게 되었으니 고맙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러나 용두산에 오르는 길이 우리네 부모님들의 역경과 유산을 그저 관람하는 길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에겐 그들의 사정이 우리와 달랐음을 인정하고 공감하고 고마워해야 할 의무가 있다.
 
덕수가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는 동안 많은 것이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꽃분이네에서 만나자던 아버지와의 약속과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고집스레 지켜온 꽃분이네만은 눈부시리만치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도 끝내 변하지 않고 남았다. 꽃분이네를 지켜온 덕수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왜 그리도 바보같이 꽃분이네를 포기할 수 없었을까. 아마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가 평생 포기하지 않고 지켜낸 것은 꽃분이네가 아니라 가족이었음을. 가족, 오직 가족뿐이었던 덕수의 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인자, 못 오시겄지.’ 황혼의 길녘에서 노인은 오랜 고집을 꺾는다. 덕수가 마침내 꽃분이네를 팔기로 했을 때, 그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헤아리기엔 너무도 아득한 회한이리라. 장성한 자식들의 성화에 못내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무너뜨릴 때 그가 남몰래 뱉은 말 한마디가 마음에 길게 남는다.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낯선 기억이 머물 자리
 
용두산 공원을 나와 내려가는 길에, 푸르게 난 새잎보다 그 아래 쌓인 낙엽과 깨진 돌멩이가 더 눈에 들어왔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뿐만 아니라 영화에서 부산은 늘 과거의 모습으로 나왔다. <친구>에서도, <범죄와의 전쟁>에서도 그랬고 또 다른 영화들에서도 그랬던 것 같다. 지금은 고층건물이 즐비한 현대적인 도시인데도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부산이 늘 예전의 모습인 것은 어쩌면 저 낙엽과 돌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새 건물이 들어서기 위해선 헌 건물이 사라져야 하고 새잎이 나기 위해선 헌 잎이 떨어져야 한다. 서울은 그랬다. 낯선 건물과 이름들이 들어서며 익숙했던 것들이 사라져 갔다. 하지만 부산에는 아직 남은 것들이 많다. 떨어진 낙엽조차 머물 자리 없는 서울에선 찾을 수 없는, 낙엽이 쌓이고 깨진 돌이 남을 자리가, 우리의 기억이 머물 자리가 부산엔 아직 많이 남아있다. 여전히 그리고 끝내 부산이 아름다운 것은 우리네 묵은 기억이 쌓인 까닭이리라. 


 
기사 노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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