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리오

 

 

 

종이는 우리와 많은 순간을 함께 했다. 어릴 적 낙서에서부터 종이 비행기, 수업시간 몰래 주고 받던 쪽지, 기록을 위한 매체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흰 종이 안에 많은 것을 담았고 남겼다. 아티스트의 아이디어 노트는 창작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오는 5월 27일까지 개최되는 展 은 우리의 일상을 담담히 적어 내려온 종이 본래의 속성에 집중했다. 순수 예술뿐 아니라 가구, 조명, 제품, 공간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10팀의 국내외 아티스트들이 종이를 활용한 작품을 선보이며 재료 자체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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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리차드 스위니(Richard Sweeney) 작가의 ‘고요한 새벽의 별 빛’으로 시작한다. 순백의 종이를 다양한 기법으로 접어 만든 8점의 소형 종이 조각들과 대형 설치작품을 소개하는 공간이다. 자연과 건축물의 형상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 된 작품으로 고요한 새벽녘의 별 빛처럼 공간 속에서 물결치듯 반짝이는 종이의 우아함을 드러낸다. 각 전시의 시작점에는 SNS 작가 ‘오밤 이정현’의 서정적인 글귀를 녹여 내어 관람객의 감수성을 두드린다. 이어지는 공간은 타히티퍼슨(Tabiti Pehrson) 작가의 ‘섬세한 손길이 만든 햇살’로 백색 종이에 반복적으로 새긴 기하학적이고 유기적인 무늬를 정교하게 도려내어 만든 2점의 설치 작품을 소개한다. 작가는 빛이 만들어 낸 그림자까지 작품으로 여겨, 섬세하게 커팅된 흰 종이를 투과하며 햇살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통해 가벼움과 무거움을 동시에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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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리에 오이(atelier oÏ) 작가의 ‘멈춰진 시간을 깨우는 바람’은 일본 기후현(岐阜県)의 전통지를 사용해 만든 대형 설치 작품을 소개한다. 사계절의 변화와 기후현의 아름다운 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공중에 모빌처럼 설치된 작품은 방문객의 움직임만으로도 쉽게 흔들린다. 순백의 종이를 투과하는 아름다운 빛과 그림자가 천장 가득 드리우며 나부끼는 그림자가 산들거리는 바람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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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풍경에 숨은 놀라움’은 가구, 조명, 패션, 제품 디자인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토라푸 아키텍츠(TORAFU ARCHITECTS), 줄 와이벨(Jule Waibel), 스튜디오 욥(Studio Job), 토드 분체(Tord Boontje)의 기발한 종이 작품이 전시된 공간이다. 캐비닛, 샹들리에, 책상에서부터 꽃병, 벽걸이 장식품과 같은 작은 오브제까지 실험적이고 실용적인 작품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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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공간은 ‘거리에서 만난 동화’로 짐앤주(Zim&Zou)의 페이퍼 아트 시리즈를 보여준다. 아날로그 문화에 대한 노스탤지어와 수공예적인 제작 과정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작은 오브제부터 대형 설치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한 동화 같은 장면을 볼 수 있다. ‘꽃잎에 스며든 설렘’은 완다 바르셀로나(Wanda Barcelona) 작가가 흐드러지게 핀 등나무 꽃의 형상에서 영감을 받아 4,000여 개의 종이 꽃송이들과 4,000여개의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로 구현한 초현실적인 정원이다. 무성하게 펼쳐진 수천 개의 등나무 꽃송이들은 화려한 색에서부터 점점 엷어져 백색으로 이어지는 그라데이션 효과를 연출하며 꽃잎에 스며든 설렘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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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물든 기억’은 개인적으로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공간이다. 마음 스튜디오(Maum Studio)가 종이를 활용해 갈대 숲을 재현했다. 연분홍 빛의 종이 갈대들이 사방을 에워싼 거울에 반사되어 갈대 숲이 끝없이 펼쳐지며 넘실대는 하늘 역시 무한하다. 여기에 웅장한 음악이 어우러지며 따뜻한 감성을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기사 고민주

사진 김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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