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리오

 

 

 

신사동 가로수길의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 플래그십 스토어가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전 공간이 ‘Entropy(엔트로피)’라는 심미한 주제로 무형의 현상을 젠틀몬스터만의 감성으로 형상화했다면 이번에는 좀더 직관적인 주제로 젠틀몬스터만의 유쾌한 기발함을 보여준다. 언제나 예상치 못했던 표현력으로 우리의 허를 찔렀던 젠틀몬스터의 이번 테마는 흰 까마귀(The White Crow)다.

 
 
 
 
 
 
©김리오
 
 
 
 
 
 

공간 내 1층에서 5층, 그리고 지하 1층을 따라 순차적으로 이야기의 흐름이 진행된다. 신사 플래그쉽 스토어에 들어서면 까마귀가 전봇대에 앉아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내부에는 겁에 질려 공격적으로 울어대는 까마귀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운다. 여기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까마귀가 살고 있던 숲에 외계인이 침략한다. 외계인의 침략에 까마귀들은 혼비백산해 도시로 도망가고 지금의 도심 전봇대 위에서 무서움에 떨며 앉아있다.

 
 
 
 
 
 
 

©김리오

©김리오

 

 

 

 

 

2층으로 올라가면 까마귀를 몰아내고 곳간을 점령한 촉수괴물을 만날 수 있다. 촉수괴물은 촉수를 쉼 없이 움직이며 우리를 위협한다. 이어지는 3층 공간에서는 외계인들이 도시를 점차 점령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무너진 벽돌 사이사이로 8명의 외계인들이 무너져가는 도시를 바라보고 있다. 4층에는 숲 안에 외계인이 타고 온 우주선 3대가 놓여 있다. 외계인의 위협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던 까마귀들 중 한 마리는 숲에 알을 두고 온 걸 떠올린다. 그리고 도망치던 발길을 돌려 알을 구하러 간다, 외계인이 타고 온 우주선을 타고.

 

 

 

 




©김리오

©김리오

©김리오

 

 

 

 

지하 1층에 들어서면 까마귀의 영웅담이 재생되는 공간 맞은편으로 굳게 닫혀있는 문이 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비장한 기운이 느껴지는 음악이 시작되면서 화려한 조명 아래 까마귀가 각을 맞춰 움직인다. 얼핏 까마귀의 영웅담을 기념하는 것 같기도, 이야기의 엔딩을 장식하는 장면 같기도 하다.

 

 

 

어릴 적, 엄마가 불을 끄고 재우려 하면, 항상 재밌는 얘기를 해달라고 조르곤 했었다. 그러면 그녀는 자신이 어릴 적 겪었던 무서운 일이나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왜 그 이야기를 믿었지?’라고 생각할 만큼 허술한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오늘 젠틀몬스터가 들려준 흰 까마귀의 영웅담 역시 어쩌면 엄마의 이야기만큼이나 유치하다. 그래서 한번 더 귀 기울이게 된다. 공간을 오르다 보면 그들이 촘촘하게 짜놓은 스토리에 우리는 또 한 번 흰 까마귀의 영웅담에 빠지게 된다.

 

 

 

 


©김리오

 

 

기사 고민주

사진 김리오

 

 

 

저작권자 ⓒ Deco Journal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