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년 전 준공된 이대역 인근의 한 대형 복합상가 건물은 다른 매장과의 차별화, 지역적 특성화의 잇따른 실패로 수년간 방치되어있었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곳으로 잊혀져 가던 이곳은 한 클라이언트의 눈에 띄게 된다. 클라이언트는 종합 디자인 스튜디오 디자인투모로우에 ‘이곳을 일반적인 상공간과 차별화된, 지역의 Hot place로 새로이 거듭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라는 의뢰를 해왔다. 허혁 소장을 중심으로 한 디자인투모로우의 디자인팀은 짧은 마감 기간 동안 브랜딩 디자인, 공간 디자인 작업을 동시에 진행해 Urban Lifestyle Platform – Urban Alice 어반앨리스를 클라이언트에게 선사했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상업 시설인 만큼, 단순한 카페를 넘어 다양한 활동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꾸미고자 했던 어반앨리스는 층에 따라 세 가지 컨셉으로 제각각 아름다운 인테리어 디자인을 뽐내고 있다. 1층은 Musée, 미술관을 컨셉으로 디자인한 공간이다. 여느 미술관처럼 공간 자체에 힘을 싣기보다 전시되는 작품들과 작품을 감상하며 교류하는 고객들에 Focusing이 맞춰지도록 노력했다. 1층은 공간 곳곳에 은근하게 디스플레이된 식물들이나 연한 파스텔 톤의 가구들, 그리고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글라스 파티션과 유리 테이블, 투명 플라스틱 의자 등으로 Musée의 인테리어 디자인에 대한 디자인투모로우의 접근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디자인투모로우는 공간의 정의, 타겟 및 포지셔닝을 한 번에 아우를 만한 브랜드 네임으로 ‘Urban Alice 어반앨리스’를 선택했다. 영국의 수학자이자 문학가 Lewis Carroll의 작품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the wonderland)’ 속 캐릭터 ‘앨리스’야 말로 메인 타겟이 되는 20대 여대생들에게 친숙하면서도 스토리텔링의 전개가 자연스럽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평범한 일상 속의 한 소녀가 환상적인 일들을 겪는 이야기로, 단순한 동화가 아닌 당대의 풍자와 상징, 비유 등의 패러디와 위트를 유쾌하게 풀어내 오늘날까지도 사랑 받고 있는 명작이다.

 
집 앞 나무 밑에 식탁이 차려져 있고 3월토끼와 모자장수가 함께 차를 마시고 있었다. 겨울잠쥐는 중간에 앉아 자고 있었는데 둘은 쿠션이라도 되는 듯 겨울잠쥐 위에 팔을 괴고는 그 너머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제7장 미치광이 다과회 (A mad tea party) 中
 
이상한 나라를 떠돌며 모험하던 앨리스는 정원에 차려진 티 테이블에서 동물들과 티타임을 가진다. 다소 황당하고도 환상적인 이 장면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연출들이 시도됐다. 전체적으로 알록달록 사랑스러운 파스텔 톤의 가구들과 새장을 형상화한 행잉 체어, 익살맞은 형태의 가구들과 아늑한 파빌리온(Pavilion)들로 채워 넣어 재미있고 몽환적인 숲 속같은 공간으로 꾸며졌다. 디자인투모로우는 타겟이 되는 고객들이 이대 상권이라는 도심 속, 앨리스처럼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며 지식을 교류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색다른 플랫폼을 제공하고 싶었다.



숲속 비밀 정원, Forêt를 모티브로 디자인된 2층은 식사와 베이커리, 음료가 준비되어 있고 때에 따라 다양한 이벤트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는 소품,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 가구 등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컨셉에 녹아든 2층은, 보타닉(Botanic) 인테리어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4개의 파빌리온(Pavillion)이 전체를 둘러싸고 있다. 중앙에는 마치 열려있는 듯, 또는 닫혀있는 듯 이중적인 느낌의 온실 속 식음료 공간 ‘오랑쥬리(Orangerie)’가 도심 속 앨리스들을 맞이한다. 2층에는 Forêt 컨셉의 판타지적인 공간 외에도 코어 어트렉션이라 할 수 있는 대형 파우더룸을 슬라이딩 월로 숨겨두었다.



거울로 감춰져 있는 파우더룸은 숲속 같은 2층 외부와 전혀 다른 New Classic 컨셉의 공간으로, 흑백의 대비, 벽과 천장의 거울이 주는 착시와 반사, 다소 과장된 듯한 아름다움이 주는 재치와 익살, 해외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의 가구들이 뿜어내는 화려함으로 여성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수학자이기도 했던 작가 Lewis Carroll은 다양한 수학적 장치와 언어유희 기술을 통해 풍자와 비꼼(Sarcasm)을 작품 속에 심어 놓았는데, 디자인투모로우의 허혁 소장 역시 이 공간을 ‘아는 사람들은 아는’ 해학적 요소들로 채워 넣었다. 파우더룸과 여자 화장실로 이어지는 공간에는 대조를 통한 현대 여성들의 모순, ‘현실 속의 나’와 ‘상상 속의 또 다른 나’, 그리고 ‘여성으로서 사회에서 아름다움을 기대받는 나’와 ‘타인의 시선에 구애 받지않는 나의 모습’ 등이 공간 안으로 녹아들어 역설처럼 교차한다.
 
 
상권은 대학가인 만큼 답답한 교내 도서관을 떠나 자유롭게 공부하며 지식을 나누고 재생산하는 공간이 필요했다. 인근의 지식인들은 지적 교류를 나눌 수 있는 공간에 대한 목마름이 항상 있었던 것이다. 이에 디자인투모로우는 Den(소굴, 비밀의 장소[아지트])을 키워드로 Library 테마의 3층 공간을 만들었다. 허혁 디자이너는 Urban Alice의 3층 Library가 지성을 추구하는 지식인들의 '지적 소굴'이 되기를 바랐다.
 
 
전체적으로 티크 톤의 원목 소재를 많이 활용하고 테라조 바닥과 루버, 커피 향을 풍기는 가구들로 공간의 차분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3층 중앙의 우측 켠에는 작은 세미나, 발표회, 또는 토크콘서트 등이 가능한 똘레랑스 홀(Tolerance hall)을 구획했고, 이곳 역시 2층처럼 슬라이딩 월을 통해 공간을 개방/확장할 수 있는 유연함을 가져왔다. 이외에도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편안히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해 디지털 라커룸, 그룹 스터디를 위한 세미나 룸을 한 켠에 마련해놓기도 했다. 세미나 룸에는 각각 역사적인 여성 위인들의 이름을 붙였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지적 교류를 나눌 수 있는 3층 공간은 똘레랑스 홀이나 단체 테이블 외에도 홀로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개인용 좌석을 넓은 공간에 할애했다. 상공간으로써는 자칫 엄숙해 보이기도 하는 개인공부 공간은 학업에 최적화된 은은한 조명으로 마치 뉴욕 공립도서관이나 프랑스 리슐리외 도서관, 혹은 영화 ‘해리포터’ 속 호그와트의 도서관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디자인투모로우의 허혁 소장은 2개월간의 디자인 강행군으로 엄청난 피로 속에서도 공간의 완성도를 위한 여러 가지 욕심을 끝내 버리지 않았다. 고객층에 대한 깊은 연구와 ‘그들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공간이란 어떠한 곳인가’라는 질문의 대답으로 ‘space’가 아닌 ‘platform’으로써, 공급자와 소비자 간의 양방향 문화를 생산, 교류하는 공간 Urban Alice 어반앨리스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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