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씨지엠(le sixieme)이 디자인하는 주택들은 눈에 띄는 이름이 없다. 이번 MAISON 390도 그렇다. 단순히 390번지이기 때문에 집을 뜻하는 프랑스어 단어 maison에 번지수를 더한 것이 프로젝트명이 되었다. 이것은 르씨지엠과 구만재 디자이너가 주거공간 작업을 대하는 태도라고도 볼 수 있다. 건축가는 사용자에게 최적의 공간을 제공할 뿐, 주택에 이름을 지으면서 사용자가 공간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지, 혹은 그가 앞으로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가져야 할지 참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기도 하다. 그리고 MAISON 390은 단순한 그 이름처럼, 우리가 흔히 ‘집’을 생각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대로 정갈하고 심플하게 양평의 외딴 계곡 가에 그려졌다. 390번지의 이 집은 얼핏 보면 다소 심심한 외관이라 치부될 수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르씨지엠이 의도한 섬세한 건축적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기에 앞서, 구만재 디자이너와 르씨지엠은 ‘외부에서 보여지는 집의 모습이 실제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풍성한 삶을 가져다주는가?’라는 자문을 해보았다. 물론 상업 공간의 외관이나, 여러 주택이 즐비한 도시 한 켠의 주택에서는 눈에 띄거나 주변의 다른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는 외관도 매우 중요한 요소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번 MAISON 390은 조금 달랐다. 양평의 숲과 계곡이 품고 있는 이 주택은 고요한 자연 속에 자리해 화려한 겉치장보다 아침 시간대의 햇빛,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 눈이 내리는 풍경이나 빗소리 등 사이트가 주는 모든 것들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환경이 더욱 중요했다.
 
 
        
 
아름다운 풍경과 마주한 집을 지어야 한다면 어느 건축가든 한 가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시선을 벽으로 막고 최적의 풍경을 제공하는 위치를 찾아 거기에 작은 창을 내면서 ‘사이트가 주는 아름다움이 극대화된 경치’만을 클라이언트에게 골라줄 것인지, 혹은 모든 뷰를 열어두고 홍수처럼 제공하며 사용자가 접하는 경치를 직접 고르도록 선택권을 줄 것인지. MAISON 390은 후자를 택했다. 주택의 3면은 전면 유리 창호로 막힘 없이 시원한 뷰를 제공한다. 물론 내부공간은 자연을 즐기는 데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을만큼 섬세한 기법과 르씨지엠의 노하우로 꾸며냈다. 외부에서 봤을 때 뾰족하게 솟아있던 지붕은 내부에서는 둥근 엣지를 가진다. 레일 커튼과 함께 숨겨진 간접조명은 지붕의 이 곡선을 따라 은근하고 자연스럽게 공간을 밝힌다.
 
 
MAISON 390은 단층짜리 주택이지만 길고 넓게 설계했다. 천고를 높이고 벽체의 사용을 최소화했다. 내부의 어느 곳에서도 깊이감과 극도의 개방감을 주고 싶어서, 그리고 주거 공간 내부에 각각의 용도를 가진 공간들을 벽으로 나누며 쓰임을 한정시키고 싶지 않아서 이런 구조가 완성됐다. 이에 따라 주택 내부는 거실 옆에 다이닝이, 그 옆에 주방이, 곧바로 유리문을 열고 나가면 처마 밑 테이블 공간이 위치한 유기적인 동선을 가진다. 물론 침실처럼 개인적인 일부 공간들은 천정을 막아 천고를 낮추고 벽을 조성했다.
 
        
 
침실 위 천장을 막은 공간에는 다락을 지었다. 지붕과 가까워 천고가 낮고,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포근하고 아늑한 분위기는 다락만이 가진 매력이다. MAISON 390의 다락은 벽체가 아닌 난간과 같은 형태로 구성됐는데, 덕분에 전체 공간의 깊이감과 개방감은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다락에 있는 동안에는 단절된 듯 한적하게 있을 수 있는 독특한 공간 경험을 제공한다.
 
        
 
처음에 390번지에 주택을 지을 때, 르씨지엠은 프로젝트에 단순하게 접근하고자 했다. 좋은 기단 위에 자연을 끌어안을 수 있는 내부 공간, 그 위에 상징적이지만 그만큼 정갈한 형태의 뾰족한 박공 지붕. 그러나 그 디테일은 클라이언트의 생활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수 있는 요소들로 채우자고. 사이트가 가진 매력이 충만했기에 건축가로서 뽐내듯 화려한 집을 짓기보다 클라이언트에게 자연 속에서 온전히 누릴 수 있는 비일상적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다. MAISON 390은 사시사철 해가 뜰 무렵부터 해 질 녘까지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주택이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처마가 긴 390번지의 테라스에 앉아 지붕을 타고 흐르는 빗물을 바라보는 것. 디자이너가 클라이언트에게 주고 싶었던 것은 바로 그런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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